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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신심명] 27. 마음의 묘용

기자명 법보신문

불법은 자연의 여여한 법 수용하는 것
공심-허심만이 보편성이라 할 수 있어

『신심명』의 구절로 되돌아간다. “한결같음은 본체가 현묘하여서 올연히 인연을 잊어 만법이 스스로 드러내는 것을 보면, 만법이 자연에로 다시 되돌아가는 것을 본다.” 승찬 대사가 말하는 불법은 자연의 여여한 법을 여여한 사실로 수용하는 인간의 지혜를 말한다. 어리석은 자는 그 자연의 여여한 법을 무시하고 인간이 주관적 인념에 얽힌 망상과 호오의 감정에 결박되어 자연과 세상을 한 결 같이 보지 못한다.

세상과 자연을 여여하게 보지 못하게 하는 즉 세상을 왜곡되게 읽게 하는 요인은 인간의 의식에 깃든 가지각색의 주관적 망상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인간의 의식이 사실을 사실대로 읽게 하는데 가장 근본적 장애물이다. 의식을 번다하게 키워서는 마음의 본디 도를 깨치는데 방해가 된다.

흔히 대학에서 익히는 학문을 많은 정보(information)의 소화라고 말한다. 그 수많은 정보들이 마음의 도를 깨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왜냐하면 근현대 학문이 거의 대개 의식학으로 시작해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을 떠난 의식이 아니고, 자연의 일물이 되기 위해 마음은 먼저 자연의 본능과 같은 계열에 서 있어야 한다. 자연의 모든 동식물들이 제각기 특이한 재주를 인간 지능의 전공처럼 지니고 있듯이, 인간은 인간의 본능적 특이성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인간에게 동식물과 같은 그런 특이한 본능은 없다. 인간에게 그런 본능들이 없지만, 모든 본능들을 다 포함하고 그것들을 능가하는 무한한 본성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그 무변광대한 본성을 우리는 공(空)이나 허(虛)라고 부른다. 그것이 불성이고 부처라고 말하기도 한다.

자아의 인연으로 뒤얽힌 마음은 결코 한결같을 수 없다. 자아의 변덕은 인간호오 감정의 변덕과 다르지 않다. 변치 않는 것으로 내 마음을 채우려고 해 봐야 일시적인 망상의 심리 결과일 뿐 변치 않아야 한다는 마음의 부담만 하나 더 늘어났을 뿐이다. 그러므로 의식의 사량심(思量心)에 너무 의존하는 것은 현명하게 도를 깨닫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결같음은 자연적 마음의 본성에 해당하지 사회적 의식의 행위일 수 없다. 자연적 마음의 본체가 한결같다는 것은 그 마음의 본체인 공심과 허심이 현묘하다는 것을 뜻한다.

우리가 앞장에서 보았듯이 오직 공심과 허심만이 보편성이라 일컬을 수 있다. 그 공심과 허심은 일체의 모든 사연을 다 떠나 있는 공동심과 다르지 않다. 송대의 유학자 정명도가 말한 공심이 바로 공공심(公共心)이라 말한 것은 결코 빈 소리가 아니다. 공공심은 일체의 존재자들[萬法]과 공동의 존재론적 연관성을 맺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존재론적 연관성은 사심이 있는 사적 인연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으로 한 개의 연관성이 모든 것들과의 존재론적 연관성을 대변한다는 것을 말한다.

예컨대 한강변 탄천의 풍수적 연관성은 탄천이 흘러 들어가는 일대의 지리적 환경만을 말하지 않고, 한강유역 일대의 만물이 드러나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 사회적 의식은 그 의식이 귀속하고 있는 사회적 이해관계를 반영하고 있으나, 자연적 마음의 본체는 사회적 사심에 얽힌 이해관계를 떠나 일체 자연의 모든 존재양식을 다 가능케 하는 근거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근거는 존재자처럼 기능을 맡고 있는 개념이 아니라, 무(無)로서 아무 것도 없지만 무한대의 힘을 지닌 것이어서 하이데거는 탈근거(Abyss)라 했고, 노자와 승찬 대조사는 현묘하다고 말했다. 

김형효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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