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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묵 스님의 풍경소리]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전 기도를 능사로 삼는 건 진실 외면
신중의 가호는 스스로 할 일 할때 생기는 법

통도사에는 정초에 보궁 7일기도를 올리고 난 후 3일 신중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강원에선 강주스님을 비롯한 대중 모두가 대중방에서 3일 동안 한철 회향기도를 올린다.

올해도 그 넓은 설법전을 꽉 채운 신도님들 가슴속엔 하나같이 이 기도를 통해 불보살님과 성중님들의 가피를 입어 올 한해 온 가족이 무탈하고 뜻하는 바 일들이 원만히 이루어지길 바라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었을 것이다. 정초엔 이처럼 거의 모든 절에서 한해의 무장무애를 기원하는 신중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이것이 가장 소박한 종교의 모습일 것이기에 굳이 뭐라고 할 것이 아니지만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가끔 열렬하게 기도하는 분을 보면 ‘저 분 때문에 부처님이 참 힘들겠다. 저렇듯 부처님에게 자신의 모든 짐을 떠넘기니. 모든 중생이 저렇듯 매달리면 천수천안이 있다 하신들 저 모든 바람을 채워주려면 어찌 다 감당해 내실 수 있을까. 저러다 우리 보살님들이 도저히 힘들어 못하겠다고 중생들에게 사퇴서를 보내오는 것은 아닐까?’하는 객쩍은 생각을 해 보곤 한다. 많은 분들이 스스로 풀어야 될 문제를 가지고 불전에 매달리고 자기 일은 방기한다.

어느 고3 어머니가 새벽부터 인근 영험난 기도처를 찾아 새벽기도를 하고 집에 가서 간단히 아침을 챙겨준 후 다시 통도사 보궁에 와서 사시기도와 오후 기도를 했는데 결과가 그리 신통치는 않자 어머니가 자식에게 ‘내가 그리도 열심히 기도를 올렸는데 이게 뭐냐’고 푸념하자 자식이 대뜸 ‘기도는 어머니 편하자고 한 것 아니세요. 정작 제게 어머니의 보살핌이 필요할 때 어머니는 절에 계시거나 피곤하시다고 주무시고 계셨잖아요. 저는 어머니의 기도 보다 어머니의 보살핌이 더 필요했다구요’라고 하며 어머니에게 대들었다고 한다.

송광사 강원 시절 광주 원각사에 학생회 지도법사 소임을 본 적이 있었다. 그 중에 한 여학생의 어머니가 인근 무등산에 있는 절에 아주 열심히 다니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학생에게 어머니가 그렇게 절에 열심히 다니시는 것이 어떠냐 했더니 바로 “싫다”고 했다. 중학교 때는 정말 절도 싫고 어머니도 싫었다고 했다.

어제는 저녁 예불을 모시러 가다가 대웅전에 어느 분이 절을 참 정성들여 하기에 유심히 보다 댓돌로 눈이 갔다. 그런데 단 두 켤레의 신발은 어지러이 이산가족이 되어있었다. 불전에 기도하는 것으로 책임을 면피하려 해서도 안 된다. 부처님 전에 머리를 조아리기 전에 우리 스스로를 챙겨야 한다.

정초에 이렇게 신중기도를 하지만 그 분들만이 신중이 아니라 내 주변 인연 모두가 신중이다. 우리 몸과 가족과 이웃 그리고 자연 환경 등이 바로 우리의 신중인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신중기도는 내 생활에서부터 시작인 것이다. 우리 각자가 주변의 인연들과 조화로운 삶을 이루고 청정한 삶을 지키려 애쓰며 마음에 부처님의 말씀을 담고 살아간다면 굳이 머리 조아리지 않아도 큰 소리로 명호를 부르지 않아도 신중님은 절로 우리를 보살필 것이다.

금강경에 이르길 “수보리야, 이 경의 사구게만이라도 설해 준다면, 마땅히 알라. 이곳은 일체 세간의 하늘 등 팔부신중·사람·아수라가 다 마땅히 부처님의 탑과 절같이 공경할 것인데 하물며 어떤 사람이 능히 받아 지니어 읽고 외는 것이겠느냐”라고 했다. 그러므로 자신이 책임져야 할 삶은 도외시하고 불전에 기도하는 것만을 능사로 삼는다면 이는 진실이 아닌 허위일 뿐이다. 불보살님에게 내 일을 떠맡기려 하지 말고 내가 불보살의 일을 떠맡으려 할 때 신중은 절로 그 사람을 가호하게 될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신중기도일 것이다.

정묵 스님 manib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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