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팔경 茶순례] ① 군산은침(君山銀針)을 찾아서
[소상팔경 茶순례] ① 군산은침(君山銀針)을 찾아서
  • 법보신문
  • 승인 2010.03.08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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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차 이름 여전한데 옛 기품은 어디갔나
 
군산은침차를 만들던 어차원. 최근 청대의 어차원을 복원하였다.

동아시아 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소장은 1월 20일부터 1월 28일까지 중국 차 문화의 발생지인 호남성 지역을 순례했다. 박 소장은 중국 최고의 명차로 손꼽히는 은침차의 고향을 비롯해 차를 음식과 약으로 활용하던 고대 차문화의 흔적, 그리고 차와 관련된 유적과 유물을 통해 중국 차 문화의 역사와 현주소를 진단하고 돌아왔다. 본지는 박 소장의 꼼꼼한 현지 기록을 ‘소상팔경 차 순례’라는 제목으로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자욱한 안개 탓인가. 예정대로라면 벌써 장사에 도착, 영주로 향할 시간이지만 연착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몇 번째 같은 말을 반복한다. 웅성대던 사람들도 풀이 꺾인 듯, 삼삼오오 짝을 지어 웃음꽃을 피운다. 와유의 이상향, 소상팔경(瀟湘八景)의 승경지를 찾아가는 길이 그리 간단한 일만은 아닌가 보다.

예정 시간을 훌쩍 넘겨 도착한 장사공항, 으슬으슬한 한기가 살 속으로 파고든다. 중국인 현지 가이드 말로는 영상 10도가 넘는 날씨라지만 뼛속까지 스며드는 냉기를 감당하기 어렵다. 서둘러 배낭을 수습한 후, 첫 기착지인 영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영주에 있는 유자묘로 가는 길, 창 밖에는 안개비가 내린다. 하늘과 땅이 뒤섞인 듯, 몽환적 풍경들은 안개가 만들어낸 강남의 정취이다. 영주(永州)는 호남성의 작은 도시로 소수와 상수가 합류하는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에는 순임금이 붕어했던 구의산과 유종원(773~819)의 사당인 유자묘(柳子廟)가 있다. 유자묘의 원래 이름은 유사마사(柳司馬祠)로, 북송 인종3년 (1056)에 처음 건립되었다가 태평의 난에 불탔다. 이후, 청 덕종3년(1877)에 다시 복원되었다. 사당의 건물은 우람한 풍모를 뽐낸다. 처마 끝의 급격한 곡선이나 화려한 은색 단청이 청대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드러내고 있다.

 
군산은침차를 우린 모습.

정치적으로 불우했던 유종원이 좌천되어 선정을 펴던 곳, 여기에 사당을 건립한 것이다. 그는 한유(768~824)와 함께 당대를 대표했던 인물로 질박한 그의 문재는 천고에 빛난다. 평소 그의 『포사자설(捕蛇者說)』이나 『종수곽탁타전(種樹郭橐駝傳)』을 읽고 담박한 그의 뜻을 흠모 했던 이는 사당 앞에 서서 한 자루 향을 올렸다. 한 줄기로 솟아오른 향연, 허공으로 흩어지고, 정학(正學)의 굳센 기상, 편액에만 남았다. 사당으로 이르는 계단, 태극을 형상한 돌 사이로 연두 빛 이끼가 비에 젖어 또렷하다.

소상팔경은 호남성의 동정호와 남쪽 영릉부근, 소강(瀟江)과 상강(湘江)이 합수되는 지역의 여덟 승경지를 말한다. 영주에는 팔경 중, 청량사의 연사모종(煙寺暮鐘)과 북평도의 소상야우(瀟湘夜雨)가 있다. 소상에는 순임금의 부인이요, 요임금의 딸인 아영과 여영의 고사가 깃든 곳으로, 초나라 굴원(BC343?~277?)이 지은 초사(楚辭)에 처음 등장한다. 굴원이 몸을 던진 멱라수(汨羅水), 순임금을 그리며 눈물짓던 아영과 여영도 소상에 묻혔다. 소상의 물이 모이는 동정호는 어느 시기를 막론하고 시인묵객들이 동경했던 승경지로, 이들에게는 마음의 고향 같은 곳이다.

‘구가(九歌)’는 원래 원상(沅湘)지역의 민가에서 유행했던 종교적인 가무(歌舞)인데 이 노래에서 상군(湘君), 상부인(湘夫人)은 상수를 지키는 신이었다. 하지만 상군을 순임금으로, 상부인을 두 비로 해석하여 역사적인 의미를 더했다. 동쪽 동정호의 군산에는 두 비가 흘린 눈물이 반죽(斑竹)이 되었다는 고사가 유명하다. 한 군락의 푸른 대나무에는 얼룩얼룩한 반점이 있어 애절한 두 여인의 눈물과 대나무의 곧은 절개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부부의 정절을 드러내기에 더없이 좋은 소재가 되었다.

한편 영주 지역에서는 단오절에 종자(粽子) 떡을 먹는다. 이 풍습은 굴원을 기리는 고사에서 연유되었다. 굴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했던 초나라 사람들이 죽통에 쌀을 담아 강물에 던져서 교룡에게 굴원의 시체를 해치지 말아달라는 기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댓잎이나 갈대 잎에 찹쌀, 대추 등을 싸서 찐 떡으로, 흔히 볼 수 있다. 악양루는 악양시의 악양고성 서문 위에 있는 누각으로 강남의 삼대 명루 중 하나이다. 신선이 된 여동빈(呂洞賓)이 누각에 올라 취중에 동정호를 바라보며 시를 지었다는 얘기가 전한다.

아침에는 악양에서 노닐다가 저녁에는 창오에서 노니는데 소매 속에 청사(靑蛇)는 성질이 거칠다네.세 번이나 악양에서 취했었지만 아는 이 없어 낭랑히 시를 읊으며 동정호 위를 지나간다.
(朝遊岳陽暮蒼梧 袖裏靑蛇膽氣粗 三醉岳陽人不識 郞吟飛過洞庭湖)

이 시는 『전당시』에 실린 여동빈의 시이다. 악양루의 삼취(三醉) 고사는 이 시에서 유래되어 후일 문객들의 시와 그림의 소재가 되었다. 은일(隱逸)했던 여동빈은 술과 신선의 상징이며 검의 달인인 검선(劍仙)으로 추앙된다. 여동빈의 무애한 삶은 탈속한 삶을 누리려는 문인들에게는 동경의 대상이다.

이러한 아름다운 얘기가 깃든 악양루의 난간에 오르니 두보(712~770)의 ‘등악양루’와 범중엄(范仲淹, 989~1052)의 ‘악양루기’가 아래층의 중앙과 2층의 누각 중앙에 장식되었다. 범중엄의 ‘악양루기’는 송대 등자경이 이 누각을 증수한 후, 법증엄을 초빙해 글을 짓게 한 후, 세상에 더욱 알려졌다고 전한다. 이 누각에 올라 시를 남긴 이는 장구령(673~740)이나 맹호연(689~740), 이백(701~762), 백거이(772~846), 이상은(812~858) 등이 있는데, 이들은 악양루에 올라 천고에 길이 남을 시를 지었다.

누각에 서서 안개 속에 흐르는 강물을 바라본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옛날이나 지금에도 여전히 흐르지만 난간에 기대어 어지러운 세상을 한탄했던 두보은 어디로 갔는가. 두보의 ‘등악양루’가 안전(眼前)에 가득하여 한 줄 한줄 따라 가다가 “친한 친구에겐 편지 한 장 없고, 늙고 병든 나는 외로운 배에 남아 있네. 관산의 북쪽에는 아직도 전쟁 중이라 난간에 기대서니 눈물이 흐른다.(親朋無一字 老病有孤舟 戎馬關山北 憑軒涕泗流)”라는 대목에선 눈을 돌렸다. 아, 지금이라고 두보 같은 이가 없겠는가. 한 무리의 떠들썩한 소리에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강물은 여전히 유유히 흐른다.

 
순임금의 두 부인이 흘린 눈물이 묻어 있다는 반죽(斑竹).

군산은 동정호의 동쪽에 위치한다. 『박물지』 「지리고」에 “동정호 가운데 있는 군산은 요임금과 두 딸인 아영과 여영이 살았다…”라고 하였고, 『형주도경』에는 “상수의 신, 상군이 이곳에서 논다. 그래서 군산이라 부른다.”라 하니 군산은 상수의 신과 요임금의 숨결이 남아 있는 유적지이다. 더구나 이곳은 동정호의 중산(中山)으로, 마치 수면에 떠 있는 비취와 같다고 하는 경승지로, 이곳에는 군산은침을 생산하던 어차원이 있다.

수려한 풍광이 인상적인 이곳은 “명산에 명차가 나온다.”는 말이 실감나는 곳이다. 여기에서 생산되었던 군산은침차는 황차의 일종으로, 군산차, 혹은 황령모(黃翎毛), 연심(蓮心)이라고 불렀다. 실제 군산차는 당대부터 공품차를 생산했던 지역으로 알려졌고 송대에는 백학차(白鶴茶)와 같은 명차가 생산되었다. 이는 백모(白毛)가 차 싹을 감싸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뾰쪽한 은침처럼 만드는 제다법은 청대에 더욱 유행되었다.

건륭황제가 특별히 이 차를 좋아하여 이곳에 어차원이 만들어졌는데 차를 만들 때면 조정의 관리가 특별히 파견되어 승려들을 동원하여 차를 따고 만들게 하였다. 이로부터 군산차는 천하의 명차로 칭송되었다.

지금도 군산 어차원에서는 차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문화 혁명기를 거치는 동안 이미 명품 차의 품격을 잃어버린 것이 오늘날 중국차의 현실이다. 아름다운 동정호의 비취 같은 군산, 군산은침차의 옛 명성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옛 차의 기품은 옛날 얘기로만 남아 있다. 다례가 호객을 위한 수단이 된 현장에서 어차원의 장황한 허식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박동춘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소장


박동춘 소장은

1953년 충북 진천생인 박 소장은 청명 임창순 선생에게 한학을 사사 받고 초의 스님의 종법손인 응송 스님(1893~1990)에게 초의 스님의 제다법을 전수받았다. 성균관대학교 유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동국대 대학원 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 현재 동아시아 차문화 연구소 소장으로 세계인들의 차문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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