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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수국사 주지 원담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무소유 삶이 수행의 참 모습”

세상은 보는 시각에 따라 동일한 것도 다르게 보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마다 업이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연 또한 이와 같아서 같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사람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얼마 전 법정 스님께서 입적하셨습니다. 사람에 따라 다양한 기억을 가지고 있겠지만 저는 법정 스님에 대한 남다른 기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은 비록 저와 짧은 인연이었지만 큰 가르침을 주신 스승입니다. 저는 법정 스님이 입적하시고 상좌가 아닌 스님 중에 가장 먼저 스님의 모습을 접했습니다. 총무원에서 소임을 맡고 있기에 다른 사람보다 먼저 가게 됐습니다만 돌아가신 모습은 제가 수십 년 전에 친견했던 그 모습 그대로셨습니다. 차 한 잔을 주시던 그 모습. 어찌 보면 약간은 꼬장꼬장하셨던 모습까지. 그래서 스님이 정말로 입적하신 것이 맞나 하는 생각에 한참을 들여다보았습니다.

“토굴서도 대중 있는 듯 정진해야”

1978년, 그러니까 지금부터 33년 전입니다. 제가 머리를 깎고 그 이듬해 송광사로 여름 산철을 나러 갔습니다. 여러분은 상상이 되지 않겠지만 그때는 저도 상당히 미소년 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었지요. 보통 선방은 한철을 살고 해제 때가 되면 비워줘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공부를 더 하고자 하는 욕심에 우기고 우겨서 작은 토굴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에 두 번 큰 절에 양식을 가지러 내려왔습니다. 내려온 김에 삭발도 하곤 했지요.

토굴에서 송광사로 내려오던 어느 날 불현듯 20분 정도를 걸어 불일암으로 향했습니다. 힘들게 올라 도량에 도착했는데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님이 어디 나가셨나보다 하고 부처님께 절을 하고 돌아서는데 그때 한 스님이 올라오시고 계셨습니다. 법정 스님입니다. 그때가 아마도 양력으로 9월 초순 정도 되었던 것 같은데, 스님은 걸망을 내려놓으시더니, 앞산을 지긋이 바라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산에 가을이 왔네. 산이 많이 퇴색이 되었네. 많이 바래졌어.” 표현이 참으로 시적이지요. 아마도 당신이 출타하실 때는 가을빛이 별로 없었나 봅니다.

그리고는 저를 보시더니 “젊은 수좌 와서 차 한 잔 하게”하며 부르셨습니다. 그날 저는 차를 마시면서 20~30분 정도 법정 스님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때 많은 말씀을 하신 것 같은데 제게 남아있는 기억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제가 토굴에서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하니까, 스님은 저의 이야기를 조용히 들으시더니 제 법명을 물어보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원담 수좌, 중노릇하는데 꼭 지켜야 하는 청규가 있다네. 이것은 자신의 청규라고도 하는데, 옛 어른들의 말씀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네. 토굴에 살 때는 대중과 함께 사는 것처럼 살고 대중과 함께 살 때는 토굴에서 혼자 정진하듯이 살아야 중 생활 잘 하는 거여.”

물론 절 집안에서 흔히 하는 말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려 혼이 났습니다. 토굴에서 열심히 수행을 했지만 가끔은 잠을 이기지 못해 대자로 누워 잤던 기억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선방에서는 졸음이 오면 그냥 앉아서 자야 합니다. 아니, 오히려 누가 잠이 들면 주변에서 경책을 해서 깨웁니다. 토굴에서도 이런 원칙이 지켜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그런데 법정 스님이 제 속을 들여다보듯이 말씀하시니 가슴이 철렁했던 거지요. 말씀을 듣고 난 후에 토굴에서의 수행을 더욱 다잡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리고 그 짧은 만남과 가르침은 평생 동안 저의 삶의 지침이 되고 있습니다.

법정 스님을 직접 뵌 인연은 이것이 유일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로 저는 책을 통해 법정 스님을 꾸준히 친견했습니다. 법정 스님은 법회도 안 하시고 행사에도 나가지 않으시는 분이라 직접 뵙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글을 통해 많은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스님의 향기는 고집스러우면서도 담백하고 따뜻하고 자비롭습니다. 무엇보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참 다양한 책들이 있지만 안과 밖이 다른 책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나 법정 스님의 글 속에는 제가 불일암에서 만났던 그 분의 모습이 거짓 없이 맑고 투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토굴에서 수행하며 몇 달 간 지켜본 법정 스님은 참으로 소박하고 정갈하며 다정다감하신 분이었습니다. 잠자리는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고 방은 늘 깨끗했습니다. 스님 오시기 전에 부엌 아궁이를 살포시 들여다봤을 때 정말 옛 어머니의 손길이 닿은 것처럼 아니 그 보다 훨씬 깨끗했습니다. 당시 법정 스님은 저에게 국수도 만들어 주셨는데, 잔치국수처럼 간단하게 국수를 말고 간장을 넣은 국수는 스님을 닮아 굉장히 단아하고 정갈했습니다.
스님은 특히 경전의 가르침을 쉽게 풀어 지금 이 시대에 커다란 울림을 주는 그런 탁월한 능력을 지니셨습니다. 무엇보다 스님의 글은 세월이 더해질수록 자비로움이 더욱 더 더해집니다. 초기의 글에는 당신 스스로에 대한 엄격함, 송곳 하나 둘 곳 없을 정도로 날카로운 수행자의 기품이 묻어납니다. 그러나 연세가 들어가실수록 주변을 바라보는 살가운 시선이 늘어납니다.

특히 60세 이후에 쓰신 글에는 사람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따뜻하고 자애로운 마음이 넘쳐흐릅니다. 스님은 한밤중 창문으로 들어오는 달빛 하나도, 산사 옆에 핀 조그마한 벚꽃 하나에도 늘 따뜻하고 열린 눈으로 그 존재의 가치를 존중해 주었습니다. 글을 통해 드러나는 스님의 삶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의 치열함에서 점차 따뜻하고 너그럽게 변해가는 모습이 바로 수행의 모습입니다. 열려가는 그 모습은 연꽃이 아름답게 피어나는 모습이며 보살의 삶이 점차 몸으로 체화되는 과정입니다.
이제 막 수행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처음부터 보살의 삶을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수행을 하면 할수록 보살과 부처님의 마음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절에 오래 다니고 수행을 열심히 하는데도 오히려 아만만 쌓이는 사람들이 있어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법정 스님의 삶은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법정 스님은 스스로 답을 찾기 위해 출가했고 또 본인 스스로 수행자의 모습을 지키기 위해 애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 폭이 굉장히 넓어지셨습니다. 꽃피는 모습을 보고 쓴 스님의 글을 보면 그 현장에 있지 않아도 그 문장을 통해 꽃이 피는 느낌을 알 수 있습니다. 꽃에 마음을 담아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보살의 삶 보여주신 큰 스승

법정 스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길상사를 찾아갔을 때, 스님의 법체는 대나무 발 평상 위에 당신 평소 수하시던 가사를 덮은 채로 계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사실 종단에서는 스님의 격에 맞게 장의 절차를 준비하려고 했었습니다. 그러나 스님의 맑은 뜻을 존중해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간소하게 진행 됐습니다. 법정 스님께서는 죽으면 바로 화장해서 당신 살았던 토굴에 재로 뿌려 달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간소하게 3일장만 하고 스님을 보내드렸습니다.

여러분, 법정 스님과 직접 인연을 맺지 못했다하더라도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각자 느껴지는 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 또한 인연입니다. 그 마음들을 모아 큰스님의 극락왕생 기원합시다. 그리고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오셔서 우리를 제도해 주시기를 간곡히 기도합시다. 우리도 또한 더욱 열심히 정진하고 수행해 훌륭하고 여법한 불자들이 되어 스님과의 만남을 기약해야겠지요.

정리=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3월 16일 수국사 대웅전에서 봉행된 2월 초하루 법회에서 원담 스님이 설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내용입니다.


원담 스님은

법주사에서 무상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77년 이두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8년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조계총림 선원, 해인총림 선원, 불국사 선원, 법주사 총지선원 등에서 정진했으며 서울 옥천암 주지, 조계사 주지, 청주 불교방송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수국사 주지 및 총무원 기획실장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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