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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을 걸다] ⑧ ‘작은 연못’

기자명 법보신문

이제 우리가 기억할 차례입니다

 
영화 ‘작은 연못’의 한 장면.

“아무나 죽어서 꽃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살아서 가슴 안에 한 송이 꽃이라도 피운 적이 없는 사람은 그저 죽어서 한줌 흙이 되는 것으로도 감지덕지 할 일이다”(이외수,『청춘불패』)

“당신은 노근리 사건을 아시나요?” 이 질문에서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울까요. 21세기를 사는 우리는 감각적 욕망과 미래에 펼쳐질 편리한 세상만을 꿈꾸고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은 쉽게 잊거나 외면하고 잊고 살아갑니다. 특히 불편한 과거이거나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이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피난길에서 이유 모를 무차별 공격에 스러져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주민들에게도 전쟁의 참혹함은 길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영화 ‘작은 연못’은 그렇게 출발합니다. 사건이 발생한지 무려 60년 만입니다.

한국전쟁 초 1950년 7월, 한반도 허리쯤에 위치한 산골짜기 대문 바위골. 그 곳에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도 모른 체 논과 밭을 일구며 마을 어른들에게 “진지 잡수셨어유?”라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이 그 해 여름을 나고 있었습니다. 전국 노래 경연대회에 열을 올리는 짱이와 친구들, 한가로이 마을 어귀에서 바둑을 두는 어른들, 막 사랑의 감정을 키우는 학생들이 저마다 생의 한가운데 서 있다 횡액을 맞습니다.

미군은 주민들을 강제로 피난시킵니다. 주민들은 미군이 보호해줄 것이란 막연한 믿음으로 7월 땡볕 아래 소풍처럼 남하합니다. 그러나 미군은 갑자기 어떤 피난민도 전선을 통과시키지 말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노근리 사람들은 피난 도중 죽음의 공포에서 몸서리칩니다. 그들은 이유도 모른 체 하나 둘 쓰러집니다. 7.62mm 총알의 무게는 24g. 초속 1km로 3일 밤낮 노근리 주민들의 머리 위로 가슴팍에, 온몸 구석구석에 쏟아져 박힌 총알은 약 12만개입니다. 무게로는 약 2650kg이지요. 그렇게 미군의 폭격에 177여 명이 죽고 20여 명이 실종되고 51명이 온몸에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그 해 가을. 살아남은 주민들은 대문 바위골로 하나 둘 돌아옵니다. 해마다 가을이 돌아오듯.

‘작은 연못’은 제작부터 상영까지 영화인과 관객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영화를 위해 송강호, 문소리, 문성근 등 배우 142명이 출연료를 받지 않았고 229명의 스텝은 현물을 투자했습니다. 지난 3월 22일 울산을 시작으로 전국 8개 지역에서의 시민사회단체 시사회와 영화 홈페이지를 통해 동시에 진행한 필름구매 캠페인이 3,734명의 참여 속에 4월 7일 자정 종료되었습니다. 노근리 사건을 기억하려는 마음들이 하나 둘 모인 덕입니다.

죽어 흙 한 줌 되는 것도 감지덕지 하지만 가슴 속에 꽃이라도 한 송이 피워야 할 일입니다. 작은 연못에 바다보다 큰마음들이 모이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가 기억할 차례입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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