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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내안의 불성 바로 봄이 운명 바꾸는 참된 수행

오늘은 ‘운명을 바꾸는 법’을 말씀드릴까 합니다. 여러분, 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요. 참으로 어려운 것은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이지 않은 무언가 획기적인 다른 수단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말이 쉽지 이런 절묘한 방법이 과연 있기는 한 것일까요. 불교에는 이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오늘 주제가 운명이니, 바꾸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되는 운명을 바꾸는 방법이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잘 아시겠지만 바로 수행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수행에는 참으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부처님 명호를 열심히 부르는 수행이 있습니다. 기도라고도 하고 염불이라고 합니다. 관세음보살을 염송하거나 아니면 석가모니불, 지장보살을 찾기도 합니다. 또 다른 수행법으로는 간경을 있습니다. 경전을 읽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참구하는 것입니다. 또 화두 참선을 통해 깨달음의 길로 곧장 나아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수행을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요. 부처님의 명호를 일념으로 찾는 이유 말입니다. 바로 우리의 운명을 송두리째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의 경전을 열심히 읽고 참구하는 것 또한 타고난 운명을 개선하고 궁극적으로 완전히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다른 종교에서도 같은 말을 합니다. 절대자를 믿고 따르는 것으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합니다. 구원이지요. 신의 은총입니다. 마치 공부 열심히 하는 아이에게 선생님이 선물을 주는 형식입니다. 그러나 불교는 결코 어떤 절대자의 능력을 믿고 따른 것으로, 그러니까 구원을 통해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념으로 불보살의 명호를 부르고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그분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그분의 삶을 닮아가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럼으로써 운명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바라문이라는 수행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역시 요즘 기독교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절대자를 믿었습니다. 흔히 범신(梵神)이라고 합니다. 범신 또한 우주를 창조하고 천지조화를 이루고 길흉화복(吉凶禍福)을 마음대로 합니다. 그런데 바라문들은 절대자를 믿는 것으로 그치지는 않았습니다. 그 절대자와 하나가 되는 것을 갈구했습니다. 믿고 따르는 것을 넘어 하나가 되고자 갈구하는 것, 이때부터는 수행의 영역입니다.

우리 또한 부처님과 내가 하나가 되는 것을 모든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참선이나 간경, 어느 수행도 결코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복을 얻기 위해서, 병고의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뭔가 얻고 싶은 것이 있을 때 기도를 합니다. 경전을 읽는 사람 또한 지식의 알음알이로 끝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연 이래서 운명이 바뀔 수 있을까요.

수행의 근본은 부처 닮는 서원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참선을 하는 목적이 어디에 있습니까. 부처님을 부르고 화엄성중을 찾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결국은 아무것도 없는 상태, 진리의 당체로 탁 들어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놓아버려야 합니다. 분별을 끊어버리고 삼독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참선을 하던지, 염불을 하던지, 간경을 하던지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는 경계, 내가 마멸되고 사라지는 현상. 이 모든 것은 일심(一心)으로 정진했을 때 가능합니다.

따라서 수행을 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복을 받기위해 기도를 하기도 하고 병을 고치기 위해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불자들은 기도할 때 가르쳐 준 목표에 따라 기도를 합니다. 물론 기도를 통해 복을 받을 수도 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도의 목표는 깨달음이어야 합니다. 내가 나를 바로 알 수 있게 해 달라.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기도든 예불이든 염불이든 간경이든 모두 방편입니다. 방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관세음보살이든 지장보살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표가 중요합니다. 깨달음,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경전에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빛을 돌이켜 자신을 비추는 것을 말합니다. 경전을 읽기는 읽되 자기를 보는 것입니다. 자기를 보는 경전 독송이어야 합니다. 모든 경전은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됩니다. 내가 이와 같이 들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이 여시아문을 무엇이 이와 같이 인가. 내가 들었다는데 내가 누구인고. 이렇게 바로 자신에게 묻는 것이 수행입니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을 꿰뚫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를 바라보는 가슴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그 어떤 신출귀몰한 존재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고 열반의 세계로 안내한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수행의 주체고 운명의 주인이고 행복의 디딤돌입니다.
불교는 자신 이외의 다른 절대자를 믿지 않습니다. 신을 믿지 않습니다. 결국은 내가 주인공입니다. 현재의 과학적인 성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신의 인간을 지배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우주를 지배하는 시대가 오고하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천하의 어떤 존재도 그대를 능멸할 존재는 없다고 했습니다. 부처님은 이미 답을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답을 따라서 검증만 하면 됩니다.

부처님은 『화엄경』에서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이라 했습니다. 미진 속에서 우주의 실체를 본다고 했습니다. 인체를 해부하지 않아도 조직세포 하나만 떼어 보면 몸의 상태를 알고 병을 진단할 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변에 벌어지는 일을 비롯해 이 우주까지도 나로부터 비롯됐습니다. 옳고 그름, 행복과 불행, 잘 살고 못하는 것, 모든 것의 원인이 나에게 있습니다. 이론적으로 머릿속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이런 진리를 처절한 몸부림과 냉혹한 시련을 통해 온 몸으로 체득해야 합니다.

경전에 비추어 자신을 돌아봐야

운명이 기구하다면 운명을 바꿉시다. 박복하고 어리석다면 박복하고 어리석음을 바꿉시다. 열심히 기도하고 수행하고 염불하면 바꿀 수 있습니다. 운명은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운명에서 운(運)은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명(命)은 생명 또는 생활을 의미합니다. 내 생명과 생활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내 삶은 변화시킬 수 있고, 실제로 현재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습니다.

운명이 박복(薄福)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지금 잘 사는 것이 영원하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지금 영리하다고 해서 다음 생에도 영리하게 태어날 수는 없습니다.

운명은 바뀌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둔하다면 처절한 몸부림으로 지혜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비록 현재의 처지가 어렵다하더라도 일념으로 노력하면 그 어두운 터널을 벗어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왜이래, 하고 집어 던져봐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누가 잘 살게 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잘 살고 못살고는 내 한 생각 놓는 것에 달려 있습니다. 내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나에게 있습니다. 부처님도 내 운명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못합니다.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조언자일 뿐입니다.

그렇고 보면 우리는 지금 이 순간 무척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나 공부를 할 수 있고 무엇보다 운명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누구에게 예속되거나 노예가 되지 않고 오로지 내 스스로의 노력에 의해 우주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운명은 바꿀 수 있습니다. 노력에 의해 박복을 잠재우고 행복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노력에 의해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될 수 있습니다.
운명을 바꾸는 것은 내 안의 불성을 바로 보는 것입니다. 스스로 부처였음을 자각하고 중

생의 굴레를 벗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내 운명은 그 누가 도와주지 않습니다. 내 스스로 바꿔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은 운명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버리고 바로 내 마음을 똑바로 보는 순간을 체득해야 합니다. 수행을 통해서 그 세계를 맛보게 되면 우리는 영원히 참다운 세계에서 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정리=주영미 기자 ez001@beopbo.com

이 법문은 3월 22일 부산불교교육원에서 봉행된 여래사불교대학 도심포교 전진 대법회에서 설한 부산 해인정사 주지 수진 스님의 설법을 요약 게재한 내용입니다.


수진 스님은

현재 해인정사 주지. 1971년 부산 마하사에서 문성 스님을 은사로 출가. 범어사 강원을 졸업했다. 조계종 11대 중앙종회 의원, 조계종 교육위원, 교재편찬위원, 전국승가대학 협의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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