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광 스님의 금강경 이야기]
[종광 스님의 금강경 이야기]
  • 법보신문
  • 승인 2010.04.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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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고한 지혜로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금구성언〈金口聖言〉

『금강경』은 조계종 소의경전으로 가장 널리 읽히는 경전이다. 본지는 매달 음력 초하루와 보름, 두 차례에 걸쳐 이뤄지고 있는 경주 기림사 주지 종광 스님의 금강경 강의를 지면을 통해 지상중계 한다. 학인 스님들을 위한 강의가 아닌 일반 불자를 위한 대중 강의인 까닭에 쉽고 평이함이 특징이다. 강의는 조계종 교육원에서 편역한 『표준 금강경』을 저본으로 했으며 해석은 육조 스님의 자애로운 설명을 참고로 했다.  편집자 주


수달장자가 기증한 사위국 기원정사에서 설법
아난존자, 부처님께 전해 들은 바 그대로 전달
“깨달음은 空함 알고 육진에 오염되지 않는 것”

1. 법회의 인연(法會因由分)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如是我聞) 어느 때 부처님께서 거룩한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그때 세존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대성에 들어가셨습니다.(爾時 世尊食時 著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금강경』의 본래 이름은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密經)입니다. 굳은 지혜로써 피안(彼岸)에 이르게 하는 경전이다 이런 뜻입니다. 조계종 교육원에서 펴낸 『표준 금강경』에는 확고한 지혜의 완성에 이르는 길로 풀이돼 있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우리에게 확고한 지혜로써 부처를 이루는 방법을 일러주신 경전입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습니다.(如是我聞)어느 때 부처님께서 거룩한 비구 천이백오십 명과 함께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습니다.(一時 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 與大比丘衆千二百五十人俱)”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즉 여시아문(如是我聞)입니다. 여기서 여(如)는 가리키는 뜻이고 시(時)는 결정 되어진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설하고 있는 내용들을 부처님께 들어서 단지 전하고 있음을 아난존자께서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여기서 나(我)라고 하는 말은 본성(本性)을 가리킵니다. 본성은 곧 나입니다. 안과 밖의 동작이 다 본성으로부터 비롯되어서 일체(一切)를 다 듣는 까닭으로 내가 들었다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일시(一時)는 스승과 제자가 만나서 집회, 즉 법회를 하는 때입니다. 부처님은 이 설법의 주인이 되신 분이니 재(在)라고 하는 것은 또한 처소를 밝힌 것입니다.

다음은 장소와 이를 기증한 사람들의 이름이 나옵니다. 사위국(舍衛國)은 파사익왕이 거처한 나라입니다. 기(祇)라고 하는 것은 파사익왕의 아들인 기타태자(祇陀太子)의 이름이며 수(樹)는 기타태자가 보시한 나무인 까닭에 기수(祇樹)라고 했습니다. 또 급고독(給孤獨)은 수달장자(須達長者)의 다른 이름인데, 수달장자가 외롭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하기를 즐겨하기에 붙여진 별칭을 한역한 것입니다. 본래는 기타태자의 소유인데 수달장자가 이를 사서 부처님께 보시했기에 두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이라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한 기수급고독원은 우리에게 기원정사(祇園精舍)로 더 잘 알려진 곳입니다. 기원정사는 부처님께서 가장 오래 머무셨던 도량입니다. 이곳에서 25안거를 하셨으니, 햇수로도 25년을 머문 셈입니다.

앞서 밝힌 대로 원래는 기타태자가 소유한 동산인데 수달장자가 사서 부처님께 보시한 것으로 여기서 기타태자의 숲은 범어로 제타와나(Jetavana)입니다. 이를 기원(祇圓)으로 한역해 기원정사라 하는데 또 다른 표현으로 기림(祇林)을 쓰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기원이나 기림이나 같은 의미입니다. 이런 까닭에 여기 경주 기림사는 인도의 기수급고독원과 남다른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경전으로 돌아가서 불(佛), 즉 부처님은 깨달음을 의미합니다. 깨달음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는 밖으로 깨닫는다는 것인데 모든 법이 공(空)함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는 안을 깨닫는 것인데 마음이 공적(空寂)한 줄 알아 육진(六塵)에 더렵혀지지 아니하는 것을 말합니다. 밖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지 않고 안으로는 삿되고 미(迷)한데 현혹되지 않는 까닭에 각(覺)이라고 합니다. 즉 부처님입니다.

모든 것이 공적하다고 한 사실을 잘 알게 된다는 말은 모든 것이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육진은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을 말하는데 감각기관이 외부에 현혹되지 않게 되는 것, 즉 육진에 끌려가지 않아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고 잘못된 길에 미혹 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이를 각(覺)이라고 하고 깨달음이라 하며 내외가 함께 깨달아짐으로 부처님이라고 합니다.

함께라는 의미의 여(與)는 부처님께서 비구들과 함께 금강반야(金剛般若)라는 무상도량(無上道場)에 머무른 까닭에 여(與)라고 한 것입니다. 대비구(大比丘)는 대아라한(大阿羅漢)을 이르는 말입니다. 비구는 범어(梵語)인데 이를 당나라(중국)말로 풀이하면 육적(六賊)을 깨뜨린 자로 번역됩니다. 육적. 육적은 무엇일까요. 우리의 감각 즉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가 색성향미촉법(眼耳鼻舌身意)을 좇아 다니지 않게 되는 것을 육적(六賊)을 파(破)한 자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범부들은 눈에 거슬리는 것을 보면 화를 내고 귀에 거슬리는 것을 들으면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이렇게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비구입니다. 그래서 이를 능파육적(能破六賊)이라 합니다. 능히 육적을 없앤다는 의미입니다.

중(衆)은 많다는 의미이며 1250인은 그 자리에 함께 한 비구들의 수를 말합니다. 또한 구(俱), 즉 함께 한다는 것은 평등법회에 함께 머물렀다는 의미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공양 때가 되어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들고 걸식하고자 사위대성에 들어가셨습니다.(爾時 世尊食時 著衣持鉢 入舍衛大城乞食 於其城中)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와 공양을 드신 후 가사와 발우를 거두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습니다.(次第乞已 還至本處 飯食訖 收衣鉢 洗足已 敷座而坐)”

이시(爾時), 즉 그때란 점심때를 말합니다. 공양 시간이 온 것으로 오전 9시 내외를 가리킵니다. 보통 점심을 11시경에 드시는데 미리 걸식을 떠나야 할 그 시간입니다. 오늘날 진시(辰時)를 가리키는 것이니 오전 9시입니다. 시간이 재시(齋時, 오전 9시~11시)에 가까워진 까닭에, 즉 점심 드실 시간이 다가와 탁발을 나가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가사를 입고 발우를 드셨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중생들을 위해 거룩한 모습을 보여주시려 하는 것이고 들어가셨다는 말은 성 밖에서 안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사위대성(舍衛大城)은 사위국 풍덕성(豊德城)을 말하는데 파사익왕이 거처하는 곳입니다.

또 걸식(乞食)은 부처님께서 능히 일체 중생에게 하심(下心)을 나타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얻어먹을 때는 자기를 낮춰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당신도 걸식을 하셨지만 비구들에게도 항상 걸식을 하게 하셨습니다.

차례라는 말은 빈부를 분별하지 않고 평등하게 교화하고 평등하게 걸식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걸식은 절대 일곱 집을 넘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칠가식(七家食)이라 하고 만약 일곱 집을 지나도록 공양물을 얻지 못하면 그날은 식사를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입니다.

본래 계시던 곳으로 돌아왔다는 말은 부처님께서 비구들을 철저히 규제하셔서 신도들의 초대가 있기 전에는 절대 신도들의 집에 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율장에 보면 이에 대한 여러 가지 규제가 잘 정리돼 있습니다.

발을 씻는다는 것은 부처님께서 범부와 수순함을 시연코자 발을 씻었다고 한 것인데 탁발할 때 맨발로 하기 때문에 탁발 이후에 발을 씻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지금도 남방 스님들은 맨발로 탁발을 합니다. 한편으로는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은 모습을 보여주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발을 씻으신 것입니다.

그러나 대승(大乘)의 가르침에서는 수족을 씻는 것을 깨끗함으로 삼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족을 씻는 것은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의 한 마음이 깨끗해지면 온갖 죄(罪)와 허물이 다 없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래께서는 설법을 하시고자 할 때 항상 전단좌(栴檀座)를 펴고 앉으셨기 때문에 이를 부좌이좌(敷座而坐)라 했습니다. 〈계속〉


종광 스님은

1968년 법주사에서 월산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1971년 해인사에서 고암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1991년 법주사 불교전문강원 강주, 조계종 11, 12, 13대 중앙종회 의원, 실상사 화엄학림 강주를 역임했다. 현재 조계종 14대 중앙종회의원이며 경주 기림사 주지, 학교법인 능인학원 이사장 소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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