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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나를 존재케 하는 모든 생명이 부처

세상의 것은 온통 그물의 그물코처럼 연결돼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 내면과 외면, 물질과 정신이 결코 따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서로 의지하고 영향을 주는 관계로 맺어져 있습니다. 나와 너, 아내와 남편, 남자와 여자,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미와 추, 성과 속. 이 모든 것이 상호의존적입니다. 동전의 양면 같은 그런 관계입니다.

대승불교의 핵심은 간략하게 요약하자면 여실지견(如實知見)과 여실지견행(如實知見行)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여실지견이란 무엇입니까.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말입니다. 사물이나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보고 이해하는 것을 불교에서는 지혜라고 합니다. 팔정도(八正道)의 관점으로 보자면 정견(正見)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관념이나 생각의 색안경을 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부처님께서는 전도몽상(顚倒夢想)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망상(妄想)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참 많은 망상들이 존재합니다. 경쟁력이 있어야 하고 꼭 1등을 해야 합니다. 물론 부자에 대한 로망도 있지요. 1등만이 희망인 세상입니다. 그러면 1등은, 부자는 행복할까요. 내용을 깊이 들여다보면 참 나쁜 거짓말입니다. 아니 위험한 거짓말입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에 속아 처지를 비관하고 목숨까지 버리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습니다.

부자를 예로 들어봅시다. 스스로를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부자라고 할 때 스스로 부자라고 인정해야 부자입니다. 그러나 스스로 부자라고 말하는 사람을 저는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이만하면 됐어 하고 말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사람들은 제가 볼 때 아주 큰 부자들은 아닙니다. 정말 많이 가진 사람들로부터 부자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나라로 보면 부자나라 하면 미국 아닙니까. 그러나 미국이 만약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하고 충분하다고 여겼다면 이라크 전쟁을 일으켰을까요. 이라크 전쟁은 더욱 부자가 되고 강자가되겠다는 행동입니다. 미국도 결코 스스로 부자라 여기지 않는 것이겠지요.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부자는 현실에서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욕심과 욕망이 한계가 없는데 어떻게 만족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행복이 있을 턱이 없지요. 계속해서 갈증만 더할 뿐입니다. 부처님은 이런 상황을 바로 전도몽상이라고 하셨습니다. 망상이 사람들을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회가 마치 부자타령을 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문제는 기도를 하고 참선한다고 해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를 정확히 봐야합니다. 실상을 제대로 알아야하지요. 그래서 여실지견(如實知見)입니다. 『반야심경』에는 조견오온개공도(照見五蘊皆空度)라는 말이 있습니다. 오온(五蘊)의 실상은 공(空)이고, 이를 사실대로 조견(照見), 즉 비추어보면 도일체고(度 一切苦厄), 즉 모든 고난으로부터 벗어나 해탈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물코처럼 얽혀 있는 세상

그러나 이렇게 진실을 보게 되면 그 진실에 맞게 행동해야 합니다. 바로 여실지견행(如實知見行)입니다. 우리의 전도몽상은 만물의 영장이라는 오만함 때문입니다. 군림하고 지배하려합니다. 기독교적 사유방식이기도 합니다.

내 생명은 내 안에 있다, 우리는 이렇게 알고 있습니다. 너의 생명은 너에게, 나의 생명은 나에게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도몽상입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따로 분리된 생명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지와 착각일 뿐입니다.

식물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밥이 없으면, 태양이 없으면, 달이 없으면 우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결국 지금 여기 내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다른 생명에 의지해서만 존재가 가능합니다. 그 관계가 끊어진다면 나도 존재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실상입니다. 나 또는 내 생명이라고 주장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연기무아(緣起無我)로 표현합니다. 색즉시공(色卽是空)의 존재입니다. 그런 까닭에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착각일 뿐입니다.

부모님이 나를 낳고 길러주셨습니다. 그래서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받들어 섬깁니다. 군림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를 낳고 길러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숲이 나를 낳고 길러주었습니다. 태양이, 물이 나를 길러주고 있지 않습니까. 어떤 존재, 어떤 생명도 나를 낳고 길러주지 않은 그런 생명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여실지견입니다. 불법의 법(法)은 길을 간다는 의미입니다. 가르침을 법이라고 합니다.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정형화한 것이 팔정도입니다. 화엄경에서는 보현행원으로 정리하고 있습니다.

실상을 확인하면 전도몽상을 버리고 떠나야 합니다. 전도몽상을 버리면 곧 구경열반(究竟涅槃)입니다. 지고지순의 행복이란 말입니다. 구경열반은 완전한 행복의 경지, 상태, 세계로 표현합니다. 일생을 걸고 용맹정진 해도 전도몽상을 버리지 못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참선이나 기도의 문제가 아닙니다. 불교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도 본질이 아닙니다. 전도몽상을 깨느냐 못 깨느냐가 관건입니다.

보현행원의 첫 번째 실천이 바로 예경제불원(禮敬諸佛願)입니다. 모든 부처에게 예를 갖춰 경배, 존경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불(諸佛)입니다. 이 의미가 무엇일까요. 제불은 여기 내 생명을 존재하게 하는 모든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경제불은 모든 생명을 예배한다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스승은 누구일까요. 중생입니다. 중생이 없으면 부처도 없습니다. 세상에는 독자적으로 완전한 존재는 없습니다. 화엄경의 가르침은 한 마디로 삼세간상호장엄(三世間相互莊嚴)입니다. 삼세간의 세 가지 세간은 하나는 중생들, 하나는 불보살들, 다른 하나는 자연세간입니다. 이 세 가지가 서로서로 존재의 의미를 갖게 해준다는 말입니다. 중생이 있음으로 부처가 존재합니다. 자연세계가 있음으로 중생과 부처가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확고부동해야 합니다. 다른 모든 생명이 내 생명이고 부처라는 사실을 알고 또한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내 생명의 존재의 이유임을 알아야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깨어있는 힘이고 선정이며 늘 평정을 잃지 않음입니다.

전도몽상 깨려면 실상 바로 봐야

그렇다면 이런 보현행원을 실천해야할 현장은 어딜까요. 또 주체와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 현장은 자기가 두발을 딛고 있는 현실입니다. 집이든 직장이든 어디든, 그것을 실천할 사람은 자기 자신입니다. 아무도 대신할 사람은 없습니다. 죽을 힘 다해서 실천하는 것이 정진입니다. 하고 또 하는 것입니다. 대상은 내가 만나는 그대들입니다. 사람이든 자연이든, 마음에 드는 사람이건 안 드는 사람이건, 기호(嗜好)를 따지면 호오(好惡)를 계산하면 보현행원은 실패입니다. 이런 보현행원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실천해 봅시다. 친구와 가족, 남편, 아내, 부모, 직장동료들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그들이 나에게는 부처 같은 존재임을 알아야합니다. 내 생명을 낳고 길러준 존재입니다. 이것을 보는 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저절로 해답이 나옵니다.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면 스스로 뿌듯해지고 또한 기쁨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도 당연히 즐거워하겠지요. 이런 관계들이 이뤄지면 결국 삶은 전도몽상이 깨져나가고 열반의 법열이 현존하게 됩니다. 즉 평화롭고 행복한 삶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연습게임은 열심히 합니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아무 반응이 없는 법당의 불상에는 지극정성으로 절하고 기도하고 염불하고 참선하면서 우리 옆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진짜 부처님은 소홀히 합니다. 보현행원의 생활화, 대중화가 돼야 합니다. 그것이 인드라망생명공동체의 본래 목적이고 수행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명심하고 열심히 한다면 삶의 해답이 절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정리=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이 법문은 4월 18일 서울 인드라망교육도량에서 진행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4월 정기법회에서 설한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 도법 스님의 설법을 요약 게재한 내용입니다.


도법 스님은

현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다. 18세에 금산사로 출가해 해인사 강원을 거쳐 봉암사와 송광사 등 제방선원에서 10여 년간 수행했다. 1995년 실상사 주지 소임을 맡아 귀농학교, 대안학교, 환경운동 등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운동을 펼쳤다. 2004년 3월 1일 주지 소임을 내려놓고 지리산 노고단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시작해, 2008년 12월 14일 회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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