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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이야기] 수행은 육진〈六塵〉 물들지 않는 반야바라밀 얻는 것

기자명 법보신문

선현은 수보리 존자의 또 다른 이름
세존은 삼계 초월한 가장 존귀한 분
무상보리로 중생심을 항복 받아야

 
종광 스님은 매월 음력 1일·15일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에서 대중 스님들과 신도들을 대상으로 금강경을 강의하고 있다.

2. 수보리가 법을 물음(善現起請分)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수보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손히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보살들을 잘 보호해 주시며 보살들을 잘 격려해 주십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佛言)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보살들을 잘 보호해 주며 보살들을 잘 격려해 준다.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이와 같이 살아야 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設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設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예, 세존이시여! 라고 하며 수보리는 즐거이 듣고자 하였습니다.(唯然世尊 願樂欲聞)”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은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께 법을 청하는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는 제자 가운데 공(空)의 뜻을 가장 잘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해공제일(解空第一) 수보리 존자라고도 불립니다. 수보리는 범어 수부티(subhuti)를 음사한 것인데 선현(善現)이라고 번역되기에 선현기청분이라고 한 것입니다. 선현은 수보리 존자가 태어날 때 여러 가지 상서로운 조짐들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부모님들이 곳간에 가득 채워놓은 곡식이 전부 사라져 버리는 일들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선현입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있던 수보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땅에 대고 합장하고 공손히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時 長老須菩提 在大衆中 卽從座起 偏袒右肩 右膝著地 合掌恭敬 而白佛言)

육조 스님의 설명을 들어봅시다. 무엇을 일러 장로(長老)라고 합니까. 본문에서 장로 수보리 했으니 장로라는 말의 뜻은 도대체 무엇이냐 하는 말인데, 장로는 덕이 높고 나이가 많음으로 해서 장로라고 합니다.

제자가 부처님께 법을 청할 때는 오종(五種)의 위의(威儀)를 갖춰야 합니다. 다섯 가지 예의를 말하는데 첫째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이요, 둘째는 의복을 단정히 하는 것이요, 셋째는 편단우견(偏袒右肩)하고 우슬착지(右膝著地)하는 것입니다.

가사 착용한 스님들을 보면 편단우견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편단우견입니다. 양쪽 어깨가 다 덮여 있는 것은 통견(通肩)이라고 하는데 평소에는 통견의 상태에 있다가 질문을 할 때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것이 편단우견입니다.

이것은 부처님 당시의 예법입니다. 우슬착지(右膝著地)는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법을 청할 때는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넷째는 합장하고 얼굴을 우러러봐서 눈을 잠시도 떼지 않아야 하며 다섯째는 일심(一心)으로 공경하여 묻고 싶은 말을 여쭈어야 합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보살들을 잘 보호해 주시며 보살들을 잘 격려해 주십니다. 세존이시여!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까?”(希有世尊 如來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世尊 善男子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云何住 云何降伏其心)

희유(稀有)는 경이롭다는 말입니다. 그 말에는 대략 세 가지 뜻이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능히 전륜성왕(轉輪聖王)의 자리를 버렸으니 희유한 일이고, 둘째는 몸이 장육(丈六)자마금용(紫磨金容)에 32상(相) 80종호(種好)를 갖춰 삼계에 비길 자가 없기 때문이고, 셋째는 팔만사천법문을 머금기도 하고 토하기도 하며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등 삼신(三身)을 원만히 구족했으니, 위와 같이 세 가지 특성을 두루 갖췄기에 경이롭다고 한 것입니다. 세존(世尊)은 지혜가 삼계를 초월해서 능히 미칠 수 있는 자가 없으며, 덕이 높고 위없어서 일체가 다 공경하는 까닭에 세상(世)에서 가장 존귀한 분(尊)라는 뜻입니다.

호념(護念)은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법으로 모든 보살을 보호하고 염려해주는 것이요, 부촉(咐囑)은 부처님께서 반야바라밀법으로 모든 보살에게 당부하시는 것입니다. 부연하면 선호념(善護念)은 배우는 사람들로 하여금 반야의 지혜로써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키고 보호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금강경을 열심히 공부하면 금강의 지혜로써 내 몸과 마음을 잘 보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증애(憎愛)심을 일으키지 말고, 즉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 말고, 육진(六塵)에 물들어 생사고해(生死苦海)에 떨어지지 않는 반야바라밀의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그래야 스스로의 몸과 마음을 잘 보호 할 수 있습니다. 감각기관을 좇아 좋은 소리를 들으면 기뻐하고 나쁜 소리를 들으면 슬퍼하는, 이런 일비일희(一悲一喜)를 하지 말라, 그런 말입니다.

스스로 마음 가운데 바름을 염두에 두고 생각 생각을 바르게 해서 삿된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해 자성여래를 잘 염려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선부촉(善咐囑)은 앞의 청정한 생각이 뒤의 깨끗한 생각으로 틈이 없이 이어지게 해서 결국 구경(究竟)의 해탈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중생과 그 자리에 있던 대중들에게 가르쳐 보여서 항상 이렇게 행하게 하는 까닭에 선부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살(菩薩)은 도(道)의 마음을 지닌 중생이라는 뜻의 도심중생(道心衆生) 혹은 깨달은 중생이라는 뜻으로 각유정(覺有情)이라고 합니다. 준동함령(蠢動含靈)에 이르기까지, 그러니까 미세한 벌레들까지도 공경하고 사랑해서 가볍게 여기는 아만(我慢)을 드러내지 않는 까닭에 도심(道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선남자(善男子)란 말은 평탄한 마음, 청정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일체 공덕을 성취해서 나아가는 곳마다 걸림이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선여인(善女人)은 정혜(正慧)심이니, 바른 지혜의 마음으로 능히 일체의 유위무위(有爲無爲) 공덕을 내는 사람을 이르는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가 질문을 하되 “일체 보리심을 발한 사람은 어떻게 머물러야 하며 어떻게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합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중생의 마음은 조급해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이런 까닭에 마치 창문 틈으로 보이는 먼지와 같이 조용히 머물러 있지 못하고 태풍이 몰아치는 것처럼 생각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짐으로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아야 하는지를 여쭌 것입니다. 우리의 미세한 마음은 한 순간에도 900번 생멸한다고 합니다. 쉼 없이 움직입니다.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느냐 그런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佛言) 훌륭하고 훌륭하다. 수보리여! 그대의 말과 같이 여래는 보살들을 잘 보호해 주며 보살들을 잘 격려해 준다. 그대는 자세히 들어라.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선남자 선여인은 이와 같이 살아야 하며 이와 같이 그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善哉善哉 須菩提 如汝所設 如來 善護念諸菩薩 善付囑諸菩薩 汝今諦聽 當爲汝設 善男子 善女人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應如是住 如是降伏其心)

부처님께서는 수보리에 대해 선재(善哉)라며 칭찬을 하고 계십니다. 부처의 마음을 잘 얻었으며 또한 그 뜻을 잘 알았다, 그런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일심으로 정묵(靜)케 했습니다. 잠시 입정(入靜)에 드는 것이 바로 정묵입니다.

다음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多羅三三菩提)입니다. 가장 높고 밝은 깨달음이라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아(阿)는 무(無), 뇩다(多)는 상(上), 삼(三)은 정(正), 먁은 변(), 보리(菩提)는 지(智)로 한역됩니다. 뜻 그대로 무상정변지(無上正智)라는 말인데 위없는 올바른 지혜입니다. 여기서 무(無)는 더러움과 물듦이 없다는 뜻이고, 상(上)은 삼계에 비할 바가 없음을, 정(正)은 정견(正見)을, 변()은 일체 지혜를 의미합니다. 여기서 지혜라는 하는 것은 일체의 유정(有情)이 다 불성이 있음을 알아서 수행하면 누구나 다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부처(佛)는 깨끗하고 위없는 반야바라밀을 뜻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일체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수행하고자 할 때에는 마땅히 무상보리(無上菩提)의 길을 알아야 하며 무상청정반야바라밀(無上淸淨般若波羅蜜) 법을 알아서 이것으로써 그 마음을 항복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안에 내재돼 있는 부처님을 잘 보호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으로는 다른 사람의 잘못을 보거나 욕하지 말고, 밖으로는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야 합니다. 소리나 보이고 느껴지는 것을 쫓아다니면서 기뻐하고 슬퍼하고 노여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안에 있는 부처를 잘 보호할 수 있게 된다, 그런 말씀입니다.

“예, 세존이시여! 라고 하며 수보리는 즐거이 듣고자 하였습니다.”(唯然世尊 願樂欲聞)

유연세존(唯然世尊)할 때 유연은 응낙하는 말이고, 원요(願樂)는 널리 설법을 해서 중하근기로 하여금 깨달음 얻게 하고자 하심인데 요(樂)는 깊고 깊은 법 듣기를 기뻐한다는 의미입니다. 또 욕문(欲聞)은 것은 부처님 말씀을 듣는 것을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이 하겠다는 간절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계속〉

종광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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