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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말을 걸다] ⑩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

기자명 법보신문

마음 속 철조망 걷어낸 유년기의 우정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 영화 포스터.

“유년기는 이성의 어두운 시간이 자라기 전에 소리와 냄새와 시각에 의해 재단된다.”(영국 시인 존 베처먼)

유년기에 우정은 갑자기 타오르기도 하고 하루아침에 꺼져 버리기도 합니다. 결코 한결 같지는 않죠. 그러나 언제나 격렬합니다. 1940년대, 2차 세계 대전이 지구를 황폐화시킬 무렵 나치 장교 아빠를 둔 여덟 살 소년의 마음에 불편한 우정이 찾아옵니다. 바로 철조망 속 유대인 소년이지요.

영화 ‘줄무늬 잠옷을 입은 소년’은 나치 장교의 아들인 브루노가 아빠의 근무지 이동으로 따라간 곳에서 유대인 포로수용소를 바라본 모습을 그렸습니다. 겨우 여덟 살 소년의 눈에는 수용소가 농장으로, 그 속에 갇혀 지내는 유대인은 이상한 줄무늬 잠옷을 입은 농부일 뿐이지요. 무료한 일상을 보내던 브루노에게는 공놀이와 장기를 두며 마음을 나눌 친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농장으로 향합니다. 그러나 브루노가 찾아간 농장에는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이 앞을 가로막습니다. 여기서 브루노는 줄무늬 잠옷을 입은 유대인 소년 슈무엘을 만납니다. 엄마에게는 그네를 탄다고 거짓말을 하고 틈만 나면 슈무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며 유대인에 대한 독일인들의 생각이 옳지 않다는 사실을 브루노는 알아갑니다.

이름이 있지만 번호로 존재하는 슈무엘. 이 여린 소년은 독일인들에게는 ‘악마’ ‘해충’ ‘나쁜 인종’ ‘문화의 적’ ‘수많은 독일인을 가난하게 만든 나쁜 놈들’입니다. 그러나 브루노에게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약속을 지키려 애쓰며, 보통의 아이들과 같은 걱정을 갖고, 웃음을 보이는 평범한 친구입니다. 역사가 만들어 놓은 마음 속 철조망을 두 소년은 우정으로 허물어 버리지요.

어른들의 호된 야단에 주눅 들어 슈무엘에게 상처를 준 브루노. 가슴앓이 끝에 다시 슈무엘을 찾아 친구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철조망 안에서 사라진 슈무엘의 아빠를 찾는 일이지요. 친구의 잠옷으로 옷을 갈아입은 브루노는 친구를 따라 들어간 ‘농장’의 참모습 앞에 몹시 놀랍니다. 아빠를 찾지 못해 허둥지둥 대는 두 소년. 야속하게도 머리 위로 비가 쏟아집니다. 그리고 ‘농장’의 굴뚝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고, 수없이 많은 잠옷들만 덩그러니 남습니다.

학살을 자행한 악명 높은 히틀러도 유대인들에게 왕따를 당했던 유년기의 상처가 학살의 원인이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모난 마음은 가끔 끔찍한 결말을 가져오기도 합니다. 누군가에게 모진 말을 건넨 적이 있지 않나요. “거위의 울음소리가 사자의 발톱보다 아픔을 느끼게 할 때가 있다”는 스페인 속담이 있습니다. 나에게 사소한 일이 남에게는 충격적인 일이 될 수 있습니다. 헤아림이란, 배려란 작은 관심에서 시작합니다.

오해와 편견으로 전류가 흐르는 철조망에 누군가를 가두고 미워하진 않았나요. 그 철조망 안에는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줄무늬 잠옷을 입은 한 친구가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화안애어(和顔愛語). 부드러운 얼굴과 고운 말은 상대방에게 향기를 심기 마련입니다. ‘사람’이 둥글어지면 ‘사랑’이 되지요. 네모가 동그라미가 되듯이 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먹는 순간 버려져 있던 어마어마한 긍정적 에너지가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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