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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비불설 주장은 교만심 발로”

기자명 법보신문
  • 교학
  • 입력 2010.05.10 16:27
  • 댓글 0

김호성 교수, 불교출판협회서 주장
초기불교도 대승처럼 多佛의 종교
무아의 공심으로 대승경전 찬술해

90년대 이후 초기불교에 대한 연구가 본격화되면서 “대승불교는 불설(佛說)이 아니라 사적인 주의·주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또 많은 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대승비불설 주장이 독선과 오류라고 지적하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그 중 권오민 경상대 철학과 교수와 김호성 동국대 불교학부 교수가 대표적으로 권 교수는 문헌학과 역사학적인 관점에서, 김 교수는 철학적 해석학적인 관점에서 니까야와 아함이 대승경전과 마찬가지로 붓다의 ‘친설’일 수는 없지만 모두 ‘불설’이 될 수 있음을 체계적으로 규명하고 있다.

김호성〈사진〉  교수는 불교출판협회가 5월 4일 동국대 영상센터에서 개최한 ‘고전과 미래’ 특강에서 ‘초기경전과 대승경전의 화쟁론’이란 주제강연을 통해 이러한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모든 경전은 불설로 봐야 한다”며 “어느 경전은 친설이고 어느 경전은 비불설이라고 구분하는 것은 교판론에 떨어져서 타자를 배제하는 교만심의 발로가 아니라면 희론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교수는 ‘연기라는 것은 내가 만든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이 만든 것도 아니다’란 초기경전 구절을 인용한 뒤 일부 학자들이 최초의 ‘원음’을 불교의 기원으로 보고 그 저자로 붓다로 보고자 하지만 그것은 결코 니까야나 고타마 붓다일 수 없다고 반박했다. 초기경전에서 붓다 스스로 연기(=법)의 이치를 발견했을 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함과 니까야가 원음(진리)에 대한 해석이듯 대승경전도 동일하게 원음에 대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이다.

김 교수는 또 초기경전에 나타나는 ‘과거7불’의 존재를 소개하고, 이러한 ‘과거7불’ 사상은 고타마 붓다라는 일불(一佛)에서만 불교를 찾는 것이 바로 불교의 본의가 아님을 상징한다고 분석했다. 불교는 이미 대승 이전에도 많은 붓다의 존재를 인정하는 다불(多佛)의 종교라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학자가 “불교에는 오직 역사적 인간 붓다의 일불만이 있을 뿐이고, 그런 맥락에서 일불의 가르침인 니까야와 아함은 허구적 존재인 다불을 설하는 대승경전과 다르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곧 초기경전의 가르침과도 어긋난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이어 일각에서 “대승경전 찬술자들이 자신의 이름을 당당히 밝히지 않고 불설로 가탁함으로써 책의 권위를 높여 보다 넓게 퍼뜨리려 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전혀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의상대사가 화엄일승법계도를 완성하고 자신의 이름을 명시하지 않았던 것이나 후대 어느 찬술자가 의상대사의 이름으로 ‘백화도량발원문’을 썼던 것처럼 대승의 찬술자들이 불설로 가탁한 것은 정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무아(無我)와 연기사상에 충실하려 했던 ‘무아의 공심(公心)’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대승경전의 저작자들이 가졌던 생각 역시 이러한 이야기의 기원은 역시 붓다일 수밖에 없다고 여겨 ‘불설’이라고 했던 것”이라며 “여기에는 이 가르침을 전해주신 붓다에 대한 믿음과 존경의 마음이 배어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당시 논사들이 자신의 저서에 이름을 썼던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김 교수는 이와 관련 “대승경전의 저작자들은 붓다의 교설‘에 대해서’가 아니라 붓다‘의’ 입장에서, 즉 주체적으로 ‘불설’을 다시 한번 재현해 보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대승경전이 가공의 신화적 설화적 이야기로 점철돼 있어서 이성적 현실적인 초기경전보다 의지할 만하지 않다는 입장과 관련해서 “극락이나 아미타·지장·관음의 존재는 실로 초기경전의 교설에 반하는 것이 아니라 붓다가 우리에게 일러주셨던 우리 존재의 비(非)실재·법무아(法無我)라는 교설로 인해 건립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특히 “아공(我空)·법공(法空)으로 인해 그 세계는 실재하게 되고, 우리가 아공·법공이 되지 못하면 그 세계 역시 실재할 수 없게 된다”며 “우리가 극락이나 아미타·지장·관음의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환상, 환영, 허깨비, 마야, 그리고 공 속에서’ 존재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어떤 특정한 교설만을 불설로 인정할 경우 다른 수많은 교설들은 비불설이 될 수밖에 없다”며 “불교에는 대승과 소승이 있을 수 없으며 다만 포용성 있는 불교와 포용성 없는 불교가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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