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洗心淸心]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
[洗心淸心] 칼로 일어선 자 칼로 망한다
  • 법보신문
  • 승인 2010.05.1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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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시작한 봄의 향연이 숨을 멈추었다가 5월의 신록으로 갑자기 피어나는 것이 아니라 봄꽃에서 연둣빛 고운 새잎으로 바꾸고 5월의 푸르름을 뽐내게 되는데 유독 4월만을 따로 잔인한 달이라고 한 시인의 정의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해 왔다. 계절의 여왕이라는 찬탄을 받는 5월의 정의도 지난 4일 진주 성전암 방화일지를 보면 수정이 불가피 할 것 같다.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워서 사찰 장엄에 여념이 없는 하오에 전해진 성전암 방화 사건은 다시 한 번 우리들을 깊은 허탈감에 빠지게 했다. 뉴스에서 4년 전 주지스님과의 말다툼으로 인해 앙심을 품고 방화를 저질렀다고 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온전히 기독교 광신자에 의한 무모한 방화였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이번 방화를 마치 주지스님 개인이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 냥 편집되어 보도되는 것을 우리들이 직시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에서 우리불교의 입지와 스님들의 위상은 점점 줄어들고 말 것이다. 단편적 뉴스의 편집이 더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고 생각된다.

4년 전 불교에 대한 더없는 혐오감을 드러내면서 사찰로 난입해서 이를 말리는 과정에서 비롯한 말다툼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불교와 사찰, 스님에 대한 비난을 넘어 극단적인 혐오감을 드러내면서 갈등을 일으켜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구나 그러한 비난과 혐오의 원인은 자신이 가진 기독교에 대한 지나친 우월감과 교리적 편협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지난번 북한의 핵실험을 비난하는 한국교회언론회의 발표문을 보면 ‘칼로 일어선 자는 칼로 망한다’는 성경의 교훈이 북한에도 예외가 아닐 것이라며 비난하고 있다. 어떻게 성경의 가르침 가운데 자신들에게 불리한 이야기는 타인들에게만 적용되고 자신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성경은 누구를 위한 가르침의 책이란 말인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사찰에 대해 방화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멈추지 않는 것은 스스로 성경의 교훈을 부정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예로부터 실수로 불을 낸 아이를 꾸짖으면 안 된다고 한다. 화재를 일으킨 아이는 스스로 극단적인 공포감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잘못 꾸짖으면 정신적으로 강한 충격을 받을 수 있어서이다.
사회적인 범죄에 해당하는 방화를 스스럼없이 자행하는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많은 생각에 잠기게 하는 시간이다. 특히나 이번 방화는 예전 그 어디의 사례와도 다른 양상을 띠고 있어 우리들의 자각과 사회적 공동 대응이 시급하다.

종교적 편향성으로 인한 잘못된 가치관에 기인 한 점은 지금까지의 방화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방화범들이 자신을 숨기고 몰래 불을 지르고 달아나는 수법을 사용해왔다. 하지만 이번 방화는 너무나 노골적이었다는데서 경악을 금치 못한다. 방화를 제재하는 사람에게 죽이겠다고 협박하면서 대웅전에 불을 질렀다는 사실을 우리들은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말 섬뜩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 목전에서 발생하고 있다.

아무리 숨을 고르고 평정을 유지하려고 노력해보지만 쉽게 호흡이 다듬어지질 않는다. 어쩌면 무한의 용서와 이해력이 자산이라고 생각하며 살고자 하지만 5월은 우리들에게 부처님을 모셔 영광과 기쁨을 전해주면서 이토록 힘겨운 소식을 함께 데리고 오는지 참으로 잔인한 현실의 달인 것만 같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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