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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호의 생명을 위한 변명] 소피아의 5·18

기자명 법보신문

교육현장에선 생명존중 사라진지 오래
‘여중생 금붕어 학대 사건’ 원인 고찰을

전라도 광주에 가면 무등산을 품고 있는 어머니 산, 어등산이 있다. 깨끗한 황룡강이 어등산을 에둘러 극락강에 이르는데, 사람들은 이 물로 무등산 보리밥을 짓고, 나누며 살아왔다. 30주년을 맞는 5·18의 주먹밥 저항정신도 어등산의 넉넉한 품과 마르지 않는 젖줄 황룡강에서 비롯되었다. 이 어등산과 황룡강 자락에 지혜와 사랑을 좌표로 한 학교가 금년 봄에 문을 열었다. 이른바 중고등 철학대안학교인 지혜학교다.

이곳에 얼마 전 다섯 마리의 강아지를 출산한 소피아라는 개가 살고 있다. 원래 떠돌이였는데 이 학교에 둥지를 튼 이후, 그의 생애 가운데 봄날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학교의 정식 구성원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나름 안전한 둥지를 스스로 찾아 온 소피아의 생존방법을 들어보면, 옛날 전주에서 살다 죽은 완전한 떠돌이, 전추산(全秋山)이라는 단소의 명인이 생각난다. 자기 연주 대목에 좋은 데가 있으면 자기 스스로 단소를 입에서 떼고는 자기 입으로 ‘좋다’ 하면서 눈물을 닦던 그 사람. 소피아도 언제 죽음을 당할지 모르나 지금 그의 삶의 조건에 대하여 생존감각으로 ‘좋다’ 하면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지 모른다.

얼마 전 부천에서 여중생이 금붕어의 등에 나무젓가락을 꽂아 꼬치를 만든 다음, 라이터로 지지다가 발로 짓밟는 일명 금붕어 학대사건이라는 것이 있었다. 문제는 그 잔인함이었는데, 그 잔인함이 교육의 결과물이라는 사실과 생명존중교육이 현장에서 사라진 자리에 서열화 교육이 자리 잡은 탓이라는 사실을 학교가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결국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개별화되어 자기 학교, 자기 자리, 자기 자식, 자기 자신을 변명하고 지키려는 자기중심성에 지배당해, 본질은 사라지고 명예와 자존이라는 껍데기의 대항구조만 남아 내면, 타자, 다른 존재와의 소통 부재에 빠져있었던 것이다. 이런 철저한 개별화 현상이 금붕어의 등뼈에 나무를 꽂거나, 부처의 내장을 긁어내는 4대강 개발, 인간의 모피를 위해 동물의 껍질을 벗기는 일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는 것이다.

시인 김지하는 유럽의 한 호수의 오염된 물고기 등뼈가 휘인 고통을 한반도의 인간이 자기 등뼈의 고통으로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런 감수성이 너와 나 사이의 사회적 소통, 이른바 사회적 공공성을 회복하게 할 뿐 아니라 한걸음 더 나아가 우주를 너로 하고 인간 일반을 나로 해서 자연과 인간 사이에 생태적 소통 혹은 우주사회적 소통, 즉 우주적 공공성으로 드러나야 자기중심성으로부터 초탈된 우리를 보게 될 것이라 했다. 또 멀리 유럽의 호수로 갈 것도 없이 4대강 개발로 멸종의 위기에 처한 재두루미, 수달, 남생이, 단양 쑥부쟁이의 고통의 신음소리를 왜 듣지 못하는지 촛불화염으로라도 말하라고 호소한다.

인간과 인간 이외의 비인격적 존재 간 공동주체성을 논의하려면 이런 감수성을 깨워야 한다. 4대강 물이 마르는 침묵의 봄에 생애 가장 안전한 둥지를 스스로 만들어 낸 소피아가 개고기로 전락되는 일은 없기를 바라며, 5·18 30주년을 맞은 어등산 자락에서 황룡강을 거슬러 가며 4대강과 서해바다의 평화를 상상해 본다.

정호 동물보호단체 카라 전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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