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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신심명] 32. 기도의 힘

기자명 법보신문

번뇌 있는 곳에 부처님의 지혜 솟아나
기도는 부처님과 내가 합일하는 경지

부처가 산속의 수행자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의 대중 속에서도 나타난다는 믿음 자체는 중생의 번뇌가 짙은 곳에 또한 부처의 해맑음이 솟아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서산대사가 ‘불용구진(不用求眞=애써 진리를 구하려고 하지 말라)’하고 ‘불용사중생심(不用捨衆生心=중생심을 애써 버리려고 하지 말라)’이라고 강조하지 않았던가.

다시 『신심명』의 글귀로 돌아간다. “진여법계에는 남도 없고 나도 없음이라. 재빨리 상응코자 하거든 둘 아님을 다만 말할 뿐이로다. 둘 아님은 모두가 같아서 포용하지 않음이 없나니, 시방의 지혜로운 이들은 모두가 이 종취로 들어옴이라.”

달마대사로부터 시작된 중국의 선종은 2대 혜가대사, 3대 승찬대사로 이어지면서 보통사람들이 부처로 서서히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부처님의 제자로서 특별한 진리의 말씀을 직접 들은 성문(聲聞)도 아니고, 설법을 학문적으로 깨달은 연각(緣覺)도 아니면서, 6조 혜능대사는 일자무식인 산속의 초부로서 5대 홍인대사에게서 유식한 신수대사를 제치고 불법을 전수받았다.

혜능대사의 일화는 부처가 되는 새로운 길을 보여주었다. 저 새 길은 부처가 보통사람에게서 솟아나는 것이지, 도덕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사시사철 춘하추동 시절 따라 꽃이 끊임없이 자연스럽게 피듯이, 인간 세상에도 시절 따라 자연스럽게 부처의 꽃을 피운다는 것을 혜능대사의 일화가 웅변으로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우리 주변에서 이름 없는 야생화처럼 피고 진 조용한 작은 부처의 모습을 눈여겨보지 않고 그냥 모르고 지나친 그런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을까? 거룩한 큰 부처의 경천위지한 도래를 꿈꾸다가 작은 부처들의 미소를 모르고 넘겨버린 일은 없었을까?

기독교의 목사들은 하나님의 인격적 힘을 너무나 강조한다. 마치 하나님이 슈퍼맨처럼 무소부지의 인격적 능력을 지닌 유일한 분인 양 신을 묘사하고 강조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 앞에서 미친 듯이 신앙의 힘을 갈구하고 청구하라고 역설한다. 뜻대로 안 이루어지는 경우에 그것은 믿음이 부족한 탓이라고 또한 말하기를 잊지 않는다. 그러나 기도는 목사들이 말하는 그런 간구(懇求)가 아니다. 하나님이 절대적인 무소부지의 인격체 아버지라면 인간들의 간절한 통곡과 소망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없이 내려진 참담한 인재와 천재지변은 무엇을 의미함인가? 불교에도 부처님을 수퍼맨으로 착각하고 저런 기도를 올리는 이들도 있겠다. 기도발이 통하지 않는다고 실망한 이들도 있겠다.

그러나 기도는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에게 기도함은 무엇을 요구함이 아니라, 부처님과 기도하는 내가 둘이 아니고, 하나로 합일하는 경지다. 중생심이 불심으로 닮아가는 과정이다. 내 속에 불심이 있고, 불심 속에 내가 있다. 내 마음이 불심을 닮아 아미 허공같은 빈 마음으로 모든 것을 다 감싸는 포용력이 생긴다. 그러면서 내 마음은 빈곤하지 않고 바다처럼 넉넉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 이것이 원효대사가 역설한 대승의 마음, 즉 무사지공(無私至公)의 마음이다.

기도하면, 무엇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변한다. 내 마음이 변하므로, 복이 되돌아온다. 기도를 통하여 내가 바뀌어 진다. 이것이 기도의 법칙이겠다. 장사꾼이 부처가 되는 길은 단도직입적으로 돈 벌게 해 달라고 요구하지 말고, 돈 버는 사람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빌면 그는 차츰 부처님의 명훈가피력(冥熏加被力)을 입게 될 것이리라. 열심히 기도함이 부처 닮기의 가장 수월한 길이다. 청화 큰 스님이 말한 염불선도 이와 다르지 않겠다. 

김형효 서강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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