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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정의롭게 살려던 강직한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 사회
  • 입력 2010.06.02 15:48
  • 댓글 0

지인들이 기억하는 소신공양 문수 스님은
지보사 주지 원범 스님 “손가락 연지했던 신심 깊은 수행자”
중앙승가대 유승무 교수 “복분자 보내 준 속정 깊으셨던 분”

지난 5월 31일 4대강 개발로 죽어가는 생명의 아픔을 통감하고 이를 막고자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 스님은 위법망구(爲法忘軀)의 정신으로 부처님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그런 스님을 그리는 지인들은 모두 “평소 소신이 강하고 불의를 참지 못한 강직한 성품을 가졌지만 속정이 깊은 스님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군위 지보사 주지 원범 스님은 문수 스님을 올 곧게 살아온 진정한 수행자로 추억했다. 중앙승가대 18기인 원범 스님은 17기였던 문수 스님과 인연을 맺었다. 졸업 후 서로 운수행각하다 다시 만났을 때 원범 스님은 놀랐다. 문수 스님은 손가락 네 개가 없었다.

“서로 선방을 다니며 언젠가 다시 만났을 때 문수 스님 손가락 네 개가 없었습니다. 알고 보니 연지를 한 것이었습니다. 안과 밖이 같아야 하는 것이 수행자의 정진인데 이미 스님은 육신에 대한 집착을 놓았던 거예요.”

이후 2007년 9월 30일, 원범 스님은 군위 지보사 주지 소임을 맡았고 문수 스님은 지보사에서 무문관 수행에 들어갔다. 하루 한 끼로 면벽 수행을 했으며, 간혹 원범 스님이 전해준 신문 등을 통해 세상 소식을 들었다.

“소신공양은 부처님에게 온 몸 다 바치는 것이에요. 스님은 분명 자신의 목숨이 끊어질 것을 알면서도 온 몸에 기름을 뒤집어 쓰셨습니다. 안과 밖이 같아야 하는 수행자의 공부 끝에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그 무엇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손가락도 연지했던, 신심이 깊은 수행자였습니다.”

소신공양(燒身供養). 소신공양은 세간에서 생각하는 분신자살과 다르다. 말 그대로 스스로 몸을 태워 온 몸을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이다.『법화경』「약왕보살본사품 제23」에는 소신공양의 공덕을 이렇게 적고 있다.

“희견보살께서 일원정명덕 부처님 회상에서 수행정진할 때 현일체색신삼매(現一切色身三昧)를 증득하여 육신으로 공양함을 서원하고 향유(香油)를 몸에 바르고는 부처님 앞에서 하늘의 보배 옷으로 몸을 감아 거기에 향유를 끼얹고 몸을 스스로 태워 공양을 올려 불은(佛恩)에 보답한다……스스로 소신하면 그 광명은 두루 80억 항하사 세계를 비춘다.”

즉 수행자가 자신의 몸을 태워 절대 삼매에 들며 부처님께 공양하고 그 빛으로 중생을 널리 구제함을 의미한다. 문수 스님은 까맣게 타들어가는 자신의 몸에서 발하는 빛이 4대강 개발로 죽어가는 생명들을 구제하길 바랐는지 모른다.

과거, 1963년에 베트남의 틱 누 탄 꽝(Thich Nu Quang) 스님이 대로상에서 후예시 대량학살 가족에게 배상금을 지불할 것, 불교신앙의식과 수행과 전도의 자유를 줄 것을 요구하며 기름을 끼얹고 불을 붙였다. 결가부좌를 한 채로 소신공양을 한 스님은 한참을 자신을 태우다 결가부좌 한 채로 쓰러졌다. 이를 지켜본 많은 대중들은 절을 올렸고, 주위의 경찰들도 절을 올렸다. 결국 디엠정권은 불교계의 거센 저항으로 붕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태고종 승정 충담 원상대종사가 1998년 6월 27일 새벽, 경기도 청평 감로사에서 분단된 국토가 하나 되고 사회가 안녕하며, 헐벗음과 괴로움이 없어져 종단이 화합해 불국토가 이뤄지기를 기원한다는 열반송을 남기고 소신공양한 바 있다.

문수 스님은 수행자로서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수행정진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문수 스님과 중앙승가대 시절부터 15년여 동안 인연을 맺어온 조계종 호법부 전 조사과장 지수 스님은 “평소 불의를 참지 못했으며 소신에 강한 스님이셨다”며 “그 흔한 전화기나 휴대폰 하나 없이 지보사에서 은거하며 수행하던 중, 평소 친분이 있는 스님이 넣어 준 신문들을 보면서 4대강 공사에 대해 가슴 아파해 왔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문수 스님은 속정이 깊은 스님이었다. 중앙승가대 시절 묵묵히 일을 처리하고, 뒤에서 일들을 소리 없이 했다. 중앙승가대 김포학사 공사 중, 방학임에도 행여 공사가 잘못 될까 공사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중앙승가대에서 문수 스님을 지도했던 유승무 포교사회학과 교수는 “참으로 인간적이셨던 분”으로 문수 스님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축구 경기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다쳤는데, 문수 스님이 별다른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데 상처가 아물 때까지 선운사 복분자를 계속 보내주셨어요. 참 속정이 깊었던, 인간적인 스님이셨습니다. 스님의 마지막 바람처럼 우리의 강이, 생명들이, 소외되고 가난한 이들이 더불어 행복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최호승 기자 sshoutoo@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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