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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心淸心] 문수 스님이 남긴 것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오신날 하루 종일 도량 가득한 참배객들을 맞아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물어 온 도량에 등불을 밝히자 정말 부처님께서 우리 도량에 강림하신 듯한 기분이 들었다.

기쁨과 행복 가득한 기분으로 다른 도시의 봉축분위기를 보고 싶어 밤 9시 뉴스를 시청했다. 그러나 봉축 소식이 보고 싶어 들떴던 기분은 점점 착잡해져 갔다. 금방이라도 전쟁이 일어날 듯 한 분위기의 대통령 담화가 20분 넘게 계속되자 화가 날 지경이었다. 뉴스가 끝날 무렵 조계사에 있었던 봉축 기념 법회를 마지 못해 편집한 듯 잠시 흘려 보냈다. 갑자기 더없는 허탈감에 빠진 것은 비단 출가자들만의 기분이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밖으로 나아가서 도량 가득한 오색등 아래를 거닐며 차가워진 우리의 현실을 자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봉축의 기분을 차갑게 식혀버리는 이 현실 앞에서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 보았다. 열흘 앞으로 다가 온 선거일에는 냉정한 현실의 벽을 깨뜨려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스쳐갔다. 도무지 생각이 없어도 어느 정도이지 정말 이 정부는 불교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정확히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더욱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있었다. 평소 알고 지냈던 문수 스님의 소신공양 소식이었다. 분명하게 4대강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는 유언을 남기고 소신공양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스스로의 생명을 끊어야 했던 스님의 고결한 뜻을 폄하라도 하고 싶었는지 다음날 아침 당정을 대표하는 사람이 이번 선거를 압승하면 국민들이 4대강사업을 추진하라는 뜻으로 알고 신속하고도 강력하게 밀어붙일  것이라고 발표했다. 정말이지 스님의 소신공양에 침이라도 뱉는 듯한 모별감을 받아야 했다. 이런 발언이후 모두가 선거의 승리를 확신하는 오만을 저질렀다.

이 날 이후 불자들이 분노에 가깝게 정부에 대한 적의감을 드러내는 것을 보았다. 스님께서는 스스로의 몸을 불살라 우리의 금수강산만을 되살리신게 아니라 불자들을 다시 한 번 응집하게 해 주었다. 스님들이 깊은 산 속에서 수행에 정진하고 있으면 많은 사람들이 아픈 현실의 중생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한다고 사회참여를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스님들이 사회 현실의 아픔을 향해 달려 나가면 산중에 가서 수행하지 않는다고 입방아를 찧곤 한다.

문수 스님은 분명 달랐다. 스님은 줄곧 정진에만 몰두하셨다. 스님께서 세상의 일을 알기나 하셨을까 싶었을 정도였다. 문수 스님은 깊은 수행으로 중생뿐만 아니라 자연과 혼연일체의 깊은 경지에 오르셨을 것이다. 그런 경지에서 보면 나무를 자르고 강둑을 파헤치는 행위는 스님의 몸에 깊은 상해를 입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선거를 마쳤다.

지역사회마다 불자임을 표방하고 나선 많은 후보자들이 당선됐다. 오만한 사람들의 예측은 완전히 빗나갔고 애써 폄하하고자 했던 불자들의 목소리는 어느 때보다 뚜렷했던 것 같다. 지금까지 불자들은 정치적 보수성 내지 침묵에 익숙했다. 하지만 이번 정부가 들어서고 지나친 종교편향이 오히려 불자들을 결집시키는 동기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과는 상상과 일치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이 문수 스님께 한 송이 헌화하는 기분으로 붉은 기표 도장을 눌렀을 것이다. 또 온 국민이 함께 지켜보는 9시 뉴스에는 비춰지지 않았던 온 나라 가득한 오색연등의 밝은 빛이 투표용지에서 다시 피어 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든다. 문수 스님께서 생명보다 더 소중히 여기며 지키고자 했던 뜻을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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