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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두의 책세상]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기자명 법보신문

『침묵의 봄』/레이첼 카슨 지음/김은령 옮김/에코리브르/2002

품종개량과 화학비료·살충제와 제초제 등 농약의 다량 보급으로 단위면적당 농업생산량이 급증하여 농촌 소득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던 1970년대 말의 일이다. 내 막내 이모 댁은 큰 부자는 아니었지만 벼농사를 지으며 작은 과수원에서 복숭아를 키워 이모 내외와 그 부모님, 아이들 이 3대가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과수원에 농약을 뿌리고 집에 돌아온 이모부가 갑자기 경련을 일으켜,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받아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나면서 단란했던 농촌가정의 행복은 한 순간에 깨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 뒤로 이모 댁과 가까운 이웃에서 그들의 삶을 근본에서부터 흔들어놓는 농약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 사용을 줄이거나 끊어버렸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모두 ‘지독하게 운이 없었던 일’이나 ‘사주팔자 탓’으로 돌리고 말았던 것이다.

고향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나는 매주 몇 시간씩 농업 과목을 들었는데, 교과서에는 아무 거리낌 없이 “몇 월에는 어느 작물에 파라티온을 뿌리고…”하는 식으로 농작물 별 농약 사용 일정이 나와 있었지만 농약이 가져오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카슨에 따르면 “파라티온 살충제를 흡입한 꿀벌은 ‘심하게 동요해 호전적 성질을 띠며’ 미친 듯이 뭔가 청소하는 듯한 행동을 취하다가 결국 30분 정도 지나면 죽게 되고, 이처럼 높은 독성 때문에 핀란드에서는 파라티온이 자살 수단 1위”라고 하는데도 말이다.

미국에서 레이첼 카슨이 이 『침묵의 봄』을 써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1962년에서 10년이 지났는데도, 우리나라는 ‘앞으로 온 세상을 침묵하게 될 수도 있는 화학물질 사용의 심각한 폐해’에 대해 모른 체 하며 입을 다물고 있는 ‘침묵의 땅’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풀벌레와 산새가 사라진 산과 들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는다. 아니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런 세상이 오면 안 된다”고 하면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그런 세상으로 가는 조건을 만드는데 동참한다. 그러나 카슨은 실제로 이와 같은 엄청난 사태가 진행되고 있는 현장을 조사하고 문제의 근원을 파헤쳐 언론에 연재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크게 놀란 화학산업계를 비롯한 기득권층에서는 ‘세상을 위험하게 만든다’는 이유로 연재 자체를 무산시키려고 법적 제재까지 시도하였다. 이 『침묵의 봄』은 이런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오게 되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수십 쇄를 찍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사서 읽고, 이제는 전 세계에서 생태 환경 분야 최고의 고전이 되었다.

카슨은 “자연을 구성하는 요소들은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잡초와 때로는 우리를 귀찮게 하는 곤충들이 흙과 물에서 사라지면 우리의 영양 공급원인 식물과 동물들도 살아남을 수 없고, 물론 그 땅에서 인간만이 홀로 존귀하게 살아남으리라 기대할 수는 없다. 

이병두 불교평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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