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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떠난 인도 순례] 2. 티베트 성지 시킴의 첫 인상

기자명 법보신문

“어느 생엔가 한번쯤 왔었던 그곳이 예인가”

 
시킴왕국의 흥망 성쇠를 같이 했던 왕궁절 마당에서.

“다 알아서 준비할 테니 걱정 말고 오시게.”
인도에서 맞이한 첫 번째 아침, 잠에서 깨어나면서 문득 생각난 한마디 말이다.
“어디로 내리면 될까요?”
인도행을 결심하고 덕킁 린포체에게 전화를 걸어서 물었던 말이다. 문득 생각난 한마디 말은 바로 린포체의 대답이었다.
“모든 것을 알아서 준비할 테니 걱정 말고 오시게. 캘커타로 오는 것이 뉴델리로 오는 것보다 한 시간은 단축되지.”

린포체에 대한 신뢰로 모든 것을 그의 배려에 맡긴 채 이 한마디 말씀을 진언 삼아 캘커타(Kolkata)로 가는 왕복 비행기표를 사서 인도로 향했다. 시킴하우스에서 하룻밤을 보내면서 잠에 들기 전에는 설레는 마음이었고 눈을 뜨고 나서는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 꿈은 아니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리는 순간 린포체의 자비로운 마음이 느껴지면서 그 한마디가 뇌리를 스쳤다.

시킴하우스에서 맞이한 인도의 첫 날 아침, 창밖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처음 보는 인도 특유의 색다른 문화들을 있는 그대로 전해 주었다. 건물 벽은 이끼가 말라붙어 검은색을 띠었고 건물 뒤편에는 또 다른 건물만이 다닥다닥 줄지어 있을 뿐 내가 기대하던 자욱한 안개 속에 나무들이 드문드문 자라서 제법 운치 있을 법한 그런 모습은 아니었다.

간단히 세수를 하고 시킴하우스의 1층에 있는 식당에 가서 아침 공양으로 인도 음식을 먹었다. 인도 음식이라곤 먹어 본 적이 없는지라 시킴까지 나를 데려다 줄 가이드인 ‘타시’가 권해주는 것으로 공양을 들었다. 화덕에 구운 전병인 ‘넌’(Nun)과 인도식 카레를 먹고 차이티를 마셨다. 인도 본토에서 처음으로 맛 본 인도 음식들은 거북스럽지 않고 담백했다. 그 어느 생엔가 한번 쯤 먹었을 것 같은 느낌이 마음 한 구석에서 일었다.

식사를 마치고 국내선 공항으로 향하는 시간이 아침 8시경으로, 학교로 향하는 어린이들과 출근을 하는 사람들이 빼곡한 거리의 풍경은 인종과 장소가 다를 뿐 다른 나라의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분주하고 활기차 보였다. 이젠 우리나라에선 볼 수 없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중앙에서 호루라기를 불며 교통정리에 열중하는 경찰의 모습, 잠시 어렸을 적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큼지막한 삼성 간판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먼저 일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라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닌 것을 인도에서 확인한 셈이다.

흑백 필름처럼 낯선 이국의 풍광

 
켈커타 공항 가는 길에서 본 길가 천막 집 안의 어린아이. 거적으로 된 집안에서 놀고 있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한없는 연민의 정이 솟아 올랐다.

공항에 가는 길을 보았던 모습 중 아직도 내 눈에 아른거리는 것은 길옆에 거적으로 지은 천막집에서 살고 있는 인도 어린이들이었다. 지붕이라고 해봐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눈높이보다 낮고 거적으로 된 문을 걷어 올리면 내부가 그대로 노출되는 천막 집, 그 안에선 인도의 어린아이가 놀고 있었고 그 어린아이의 동생인 듯한 아기에게 젖을 먹이는 빼빼마른 인도 여인의 모습은 내 마음에 한없는 연민의 정을 샘솟게 했다. 좋은 옷과 좋은 음식에 좋은 곳에서만 살던 싯다르타 태자가 성을 나와 노인과 병든 사람과 죽은 사람을 보고 깊은 고민에 빠졌던 그 때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가난한 인도의 한 가정을 보며 자비를 일깨우니 그것이 바로 인간의 자비본처이며 불성(佛性)이리라.

캘커타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을 넘게 날아서 도착한 곳은 실리구리(Siliguri) 시에 위치한 바그도그라(Bagdogra) 공항. 시킴은 평지가 거의 없어서 공항도 없다. 차를 타고 올라가야만 한다. 바그도그라 공항에서부터 조그마한 봉고 같은 택시를 타고 1시간 30분가량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니 ‘랭포’(Rangpo)라는 작은 도시가 보인다. 예전엔 ‘랭포’에 이르기 전 지역도 시킴 땅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랭포’가 시킴의 관문이다. ‘티짜’(Tista) 강을 가로 지르는 다리를 지나면 검문소가 하나 있다. 인도나 시킴 사람들은 그냥 통과할 수 있지만 인도비자가 있는 외국인은 이곳에서 14일간의 통행증을 받은 뒤에야 관문을 통과할 수 있다. 예서 다시 한 시간 반을 오르면 시킴의 수도 ‘강톡’(Gangtok)에 다다를 수 있다.

시킴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강원도의 오지를 떠올릴 만큼 구불거리고 가파르다. 오르막길엔 설산에서 흘러내린 청록색의 아름다운 물이 흐르는 강줄기가 굽이굽이 이어진다. 도로 바로 옆에서 일광욕을 하며 벌레를 서로 잡아주는 원숭이 가족들의 모습이 이채롭다. 특히 계곡 너머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엔 띄엄띄엄 집들이 어지럽게 보였으며 그 주변에 펼쳐진 계단식 논과 동네, 도로가에 설치된 보도들은 1950년대 인기를 끌었던 무성영화의 흑백 필름처럼 삐거덕 삐거덕 돌아갔다. 낯선 풍광들은 ‘다른 세상에 왔구나’하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아침 일찍 길을 나섰건만 강톡에 도착하니 이미 저녁이다. 저녁 공양을 먹기 위해 주방에 들어서니 반가운 얼굴들이 미소를 지으며 맞이한다.
“스님 오셨어요?”
시드니에서 나보다 먼저 이곳에 온 사람들이 나를 반겼다. 내가 시킴에 간다는 사실은 시드니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시드니 사람들을 이곳 시킴에서 만나다니. 놀랍고 반가웠다.
“어떻게 오셨어요?”

한 눈에 알아보니 물으니 그냥 웃는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다름 아닌 시드니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 린포체의 수행 제자들이다. 린포체를 따르고 마음공부를 배우는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를 ‘린포체의 Student(학생)’라고 부른다. 그들 가운데 중국계 네 사람이 와있었다.

시드니에서 이역만리 이곳에서 얼굴을 아는 사람들을 보고 있자니 ‘정말 잘 왔구나’하는 생각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킴 음식으로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 방사에 짐을 풀고 린포체를 기다렸다. 덕킁 린포체는 시드니에서도 매일매일 분주한 일정을 보냈는데 시킴에서도 무척 바쁜 모양이었다. 린포체와 인연이 있는 시킴 사람들은 집안의 크고 작은 일부터 병자나 임종에 관한 일들에 대해 상의하고 지혜를 구했다. 린포체는 모든 일을 직접 했다. 시자나 비서를 두지 않았으며 전화를 받는 일부터 그 외 소소한 일체의 일들까지도 스스로 해결하고 누군가가 도움을 청하면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이라도 도움을 주러 갔다. 린포체의 중생을 향한 이러한 것들이 보리심의 화현이리라.

출타했다가 돌아 온 린포체께서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스님 잘 오셨네.”
“고맙습니다. 초대를 해주고 여러 가지 배려를 해주셔서….”
“별말씀을, 먼 길 오셨는데 차나 한잔 하시게나.”
“고맙습니다.”
린포체와 나는 주로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했다. 나는 물을 준비하고 린포체는 당신의 방에서 차 도구와 차를 꺼내왔다. 차 도구를 준비하고는 물이 끓는 소리를 들을 뿐 거실에 모인 사람들은 별로 말이 없었다. 차를 다 우려서 모두 한 잔씩 마실 때까지도. 모두들 집중해서 명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물어 볼 질문이 있지 않으면 린포체와 그의 학생들은 명상을 했다. 그 명상은 티베트 불교의 수행법으로, 부처님이나 보살님들 가운데 한 분을 스승이 지정해 주면 그 분을 관(觀) 하여 자신의 마음을 불보살님의 그것과 하나가 되도록 집중하는 것이다.

‘순간순간 생각을 흩뜨리지 말고 사람들과 잡담을 하지도 않으며 중생을 수행으로 이끄는 그 법력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

국왕 사라진 왕궁엔 푸자 소리만

 
룸텍 사원에서 바라본 시킴의 수도 강톡.

일념으로 집중하고 있었다. 순간 한 마디 말이 거실문 밖에서 들려왔다.
“내일은 아침에 왕궁 절에 갔다가 점심 초대에 같이 가셔야 됩니다.”
타시의 막내 여동생 ‘소남’의 말이었다. 호주로 유학을 갔다가 호주인과 결혼해 사는데 해마다 한 번은 친정에 온다. 그녀는 주변 모든 사람들의 일정을 관리하는 ‘비서 보살’이다.

“린포체님, 점심 드시러 같이 가실꺼죠?”
시킴인들은 지극하게 청했다. ‘린포체’는 보통명사인데 중국계 시드니의 수행 제자들은 린포체를 부를 때 늘 ‘라’를 붙여 존대했다. ‘린포체라’는 ‘린포체님’이란 의미이다.

“난 다른 볼일이 있어서 못가니 이 사람들이나 함께 데려가 주게.”
“알겠습니다. 내일 아침 먹고 모두 왕궁 절에 같이 가시죠.”
린포체와 함께 가리라 기대하다가 ‘안 된다’니 조금은 실망하는 듯 했다. 이 말을 남긴 채 린포체는 당신의 방사로 향했다. 린포체가 돌아가니 모임이 끝이 났다.

다음 날 아침, 잠에서 깨어 밖에 나갔다. 내 눈앞에 펼쳐진 시킴의 첫 인상은 삭막했다. 산들이 사방을 포위하듯 에워싸고 있었다. 어디에도 평지는 없었다. 깎아지른 듯한 산 능선이 눈앞을 가로 막았고 우뚝우뚝 솟은 산 능선 사이에 들어선 건물들은 산 능선이 워낙 크고 웅장한지라 소박하고 아담해 보였다. 평지가 부족했기 때문인지 시킴의 건물들은 3층 이상으로 제법 높았다. 작은 평지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삶의 지혜’일 것이다.

내가 머물렀던 집 역시 4층 건물로, 크고 작은 방사들이 여럿 있었다. 시킴 사람들은 대개 대가족을 이루고 살면서 결혼을 해 분가를 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부모님과 함께 모여 산다. 시킴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눈을 마주치기만 하면 차이티를 권했다. 그것이 손님을 대접하는 나름의 배려이자 문화인 것 같다. 매일 5잔 이상의 차이티를 공으로 마셨다.

시킴의 왕궁 절은 국왕의 왕궁에 딸려있는 절이다. 지금은 국왕이 없기 때문에 예전의 위상을 유지할 수 없지만 그래도 100명이 넘는 출가 수행자들이 정진하고 있다. 시킴의 수도 ‘강톡’의 의미가 ‘언덕 꼭대기’인데 이 절은 그 꼭대기의 가장 자리에 위치한 셈이다. 그들의 지극한 불심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망명한 린포체와의 인연으로 시킴에 왔는데 첫 번째로 방문을 한 곳이 잃어버린 왕국의 왕궁절이라, 절 앞마당에 들어서니 온갖 잡념이 머리를 어지럽게 한다.

국왕이 상주했을 당시 이 절에는 얼마나 많은 수행자들이 있었을까? 그 위상은 어느 정도였을까?
국왕이 사라진 후 30년 이상이 흘러버린 세월 속에서 초라하게 그 명맥만 이어오고 있는 절 앞마당엔 사람이 다니는 길 외에는 풀들이 무성했다. 그래도 법당 안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염불소리는 마음을 위로했다. 수행자들은 ‘푸자’(기도)를 하는 중이었다. 어린 사미로부터 비구에 이르기까지 함께 추운 겨울날씨에도 열심히 염불을 하는 모습이 장엄하고도 신비로웠다.

시킴은 티베트의 달력을 따르는데 음력으로 11월 1일이 신년이다. 복되고 행복한 신년을 기원하느라 가는 절마다 ‘푸자’에 한창이었다. 연말이면 주로 ‘마하깔라푸자’를 한다. 마하깔라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태양신의 또 다른 현신이다. 마하깔라푸자는 한 해의 업장을 소멸하고 새해의 행운을 가져오는 관음기도인 셈이다.

염불이 시작할 때에는 제자들이 ‘우요삼잡’, 즉 부처님을 오른 쪽에 두고 세 바퀴를 돌고나서 예를 갖추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한 노인이 손으로는 염주를 돌리고 입으로는 염불을 하면서 쉼 없이 법당을 오른 쪽으로 돌고 있었다. 모서리가 돌아올 때마다 머리를 대는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경건하고도 장엄한 모습을 연출한다. 그 지극한 마음이 전이되었을까, 나도 모르게 그 노인의 마음으로 세 바퀴를 ‘우요삼잡’을 하며 진언을 염송했다.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옴 마니 반메 훔…….”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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