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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강설]시비 사라진 무분별지, 그 자체가 믿음이며 종경

기자명 법보신문
 
한산장대구(寒山長大口). 일지 이홍기 作. 개인 소장.

24. 한마음으로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을 뿐

此宗鏡中 如何信入. 但不動一心 不住諸法 無能所之證 亡智解之心 則是無信之信 不入之入.

문 : 이 종경속으로 어떻게 믿고 들어가야 합니까?

답 : 다만 ‘움직이지 않는 한마음’으로 온갖 법에 집착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나와 경계의 분별이 없는 증득’이요 ‘알음알이 지혜가 사라진 마음’이니, 이는 곧 믿을 대상이 없기에 ‘완성된 믿음’이요 들어갈 대상이 없기에 ‘들어가지 않고도 종경에 들어간 것’이니라.

강설) ‘종경(宗鏡)’의 ‘종(宗)’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소중한 ‘부처님의 마음’이고 ‘경(鏡)’은 이 세상 모든 것을 비추어 주는 부처님의 마음을 거울에 비유한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한마음’은 중생의 시비분별이 사라진 ‘텅 빈 마음’이다. 능(能)과 소(所), 주(主)와 객(客)으로 나누어 다툴 시비분별이 사라진 마음이니 온갖 법에 집착할 일이 없고 중생의 알음알이 지혜도 사라진다. 이 자리에서의 믿음은 ‘부처님의 마음 종경’과 하나된 것으로 믿을 대상이 없어진 것이요, 믿을 대상이 없기에 들어갈 곳도 없다. 이를 “믿을 대상이 없기에 ‘완성된 믿음’이요 들어갈 대상이 없기에 ‘들어가지 않고도 종경에 들어간 것’이니라.”고 말한 것이다. 시비 분별이 사라진 ‘무분별지(無分別智)’ 그 자체가 믿음이요 종경에 들어간 것이다.

25. 스스로 이미 법을 보았기에

大法炬陀羅尼經 云. 佛言 憍尸迦 如來弟子 見諸世間 猶如幻化 無有疑網 所以者何 彼信如來 卽自見法. 是故自信 不唯信他. 何以故 若世間人 旣自見已 彼人終不更取他言. 憍尸迦 如人裸露 在道而行 設有一人 語衆人言 此人希有錦衣覆身 憍尸迦 於意云何 彼雖有言 自餘衆人信此言不. 不也世尊. 何以故 眼親見故. 佛言 如是如是 憍尸迦 諸佛如來 諸有弟子 自見法故 不取他言 其義亦爾.

『대법거다라니경』에서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교시가여, 여래의 제자는 모든 세간을 허깨비처럼 보는 데 아무런 의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여래를 믿고 곧 스스로 법을 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스스로 믿음을 내는 것이지 무작정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마치 세상 사람들이 무엇을 직접 자신의 눈으로 보고 확인한 뒤에는 다른 사람이 그것에 대해 어떤 허황한 말을 해도 끝내 믿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교시가여, 한 발가벗은 사람이 길을 가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그 사람을 보고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이 사람은 참으로 희유한 비단 옷을 입고 있다.’ 말했다고 하자, 교시가여,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나머지 다른 사람들이 이 말을 믿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직접 자신의 눈으로 발가벗은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맞다 맞는 말이다, 교시가여. 그대의 말이 옳다. 모든 부처님과 그분들의 제자들은 스스로 법을 보았기에 다른 사람의 말에 속지 않으니 이 이치도 그와 같은 것이니라.”

강설) 아무런 의심 없이 모든 세간을 허깨비처럼 보고 몸소 법을 깨달았을 때, 그 경지가 어떤지는 직접 체험한 사람만이 그 맛을 알 수 있다. 이는 마치 물을 마셔본 사람만이 그 물이 차가운지 뜨거운지를 스스로 아는 것과 같다. 장님이 눈을 떠서 코끼리의 전체 모습을 분명히 본 것과 같아, 끝내는 꼬리나 상아를 붙잡고 그것을 코끼리라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들판의 백조와 설산의 눈이 희다 하여 우유라 고집한다면, 하얀 우유를 직접 본 적이 있는 사람들이 그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법을 보는 안목이 있는 사람 앞에서 엉터리 법을 설한다면 이 말을 그 사람이 믿겠는가.

26. 중생의 마음은

大乘本生心地觀經 觀心品 云. 文殊師利菩薩白佛言 世尊 如佛所說 唯將心法 爲三界主 心法本元 不染塵穢 云何心法染貪瞋癡. 於三世法 誰說爲心. 過去心 已滅 未來心 未至 現在心 不住 諸法之內 性不可得 諸法之外 相不可得 諸法中間 都不可得. 心法本來 無有形相 心法本來 無有住處 一切如來 尙不見心 何況餘人 得見心法. 一切諸法 從妄想生 以是因緣 今者 世尊 爲大衆說 三界唯心. 願佛哀愍 如實解說.

『대승본생심지관경』 「관심품」에서 문수보살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세존이시여, 부처님 말씀대로 ‘오직 심법(心法)으로 삼계(三界)의 주인이 된다.’ 하면, 심법의 근원은 번뇌에 물들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심법이 탐·진·치 삼독에 물드는 것입니까?

과거·현재·미래에서 어느 것을 마음이라 하겠습니까?
과거의 마음은 사라져서 없고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 현재의 마음은 잠시도 머물러 있지 않으니, 모든 법 안에서 어떠한 성품도 얻을 수 없고, 모든 법 밖에서 어떠한 모습도 얻을 수 없으며, 모든 법 중간에서 그 무엇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심법에는 본디 형상이 없고 본래 머물 곳이 없어 모든 여래도 오히려 그것을 보지 못하는데, 하물며 어찌 다른 사람들이 심법을 볼 수 있겠습니까. 모든 법은 망상으로 생겨나니, 이 인연으로 지금 세존께서 대중을 위하여 ‘삼계는 오직 마음일 뿐이다.’ 설한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바라옵건대 저희들을 애달프게 여기시어 이 도리를 알아듣게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爾時 佛告文殊師利菩薩言. 如是如是 善男子 如汝所問 心心所法 本性空寂 我說衆喩 以明其義.

그때 부처님께서 문수보살에게 말씀하셨다.
“맞다 맞는 말이다, 선남자여. 그대 물음대로 심심소법(心心所法)의 본디 성품은 ‘텅 비어 고요하고 고요한 것’이니 내가 여러 비유로써 그 이치를 밝히겠노라.”

善男子 心如幻法 由遍計生種種心想 受苦樂故. 心如水流 念念生滅 於前後世 不暫住故. 心如大風 一刹那間 遍歷方所故. 心如燈焰 衆和合而得生故.

“선남자여, 중생의 마음은 허깨비와 같은 법이니, 중생이 두루 온갖 생각을 냄으로 말미암아 그 과보로 고통과 즐거움을 받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흐르는 물 같으니, 생멸하는 생각들이 앞뒤로 이어져 잠시도 머물지를 않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큰 바람 같으니, 한 순간에 온갖 곳을 두루 섭렵하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등잔 불빛처럼 기름이나 심지 같은 여러 인연이 어울려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心如電光 須臾之頃 不久住故. 心如虛空 客塵煩惱 所覆障故. 心如猿猴 遊五欲樹 不暫住故. 心如畫師 能畫世間種種色故. 心如僮僕 爲諸煩惱所策役故.

“중생의 마음은 번갯불 같으니, 잠깐 있다가 곧 사라지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허공 같으니, 객진번뇌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원숭이 같으니, 오욕(五欲)이란 욕망의 나무에서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화가 같으니, 세간의 온갖 모습을 그려낼 수 있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하인 같으니, 온갖 번뇌가 시키는 대로 하기 때문이다.”

心如獨行 無第二故. 心如國王 起種種事 得自在故.

“중생의 마음은 홀로 가는 것과 같으니, 한 생각 일어나면 일어난 자기 마음 이외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중생의 마음은 국왕 같으니, 온갖 일을 마음대로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乃至 善男子 如是所說 心心所法 無內無外 亦無中間. 於諸法中 求不可得 去來現在 亦不可得.

“선남자여, 이와 같이 설한 심심소법(心心所法)은 안에도 없고 바깥에도 없으며 또한 중간에도 없는 것이니, 모든 법 가운데서 찾고자 하나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과거·현재·미래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강설) 우리가 말하는 ‘마음’을 구분하자면 크게 주체적 측면과 작용적 측면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인식의 주체가 되는 측면을 심(心) 또는 심왕(心王)이라 하고 바탕이 되는 이 전체의 마음에 상응하면서 하나하나의 대상 경계에 반응을 일으키는 부수적 작용을 심소법(心所法)이라 한다. 심심소법(心心所法)은 심(心)과 심소법(心所法)을 합친 개념으로 중생의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 가를 가설로써 설명한 것이다.

중생의 마음은 허깨비나 번갯불 같아 실체가 없다. 온갖 인연 따라 일어날 뿐 실체가 없기에 그 인연이 흐트러지면 마음도 사라지고 인연이 흩어진 그 자리는 언제나 텅 비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심심소법(心心所法)은 실체가 없는 것이기에 안에도 없고 바깥에도 없으며 또한 중간에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모든 법 가운데서 찾고자 하나 찾을 수 있는 실체가 없으므로 과거·현재·미래에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원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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