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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떠난 인도 순례] 3. 어느 라마의 입적(上)

기자명 법보신문

라마는 그들에게 살아있는 보살이라네

 
다비대에 불을 붙이기 전 염불을 하고 있는 린포체.

“환영합니다.”
점심식사에 초대를 받아서 간 곳에서 나와 순례 일행을 보고 던진 주인의 인사였다.
“고맙습니다.”
나를 시킴까지 데려다 준 타시의 여동생 소남은 우리를 그 집 사람들에게 일일이 소개했다. 왕궁절에서 돌아온 후 소남은 부산스럽게 채비를 하더니 나와 시드니에서 온 세 명의 순례자들을 데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간 집은 아주 특별한 곳으로, 시킴왕국의 마지막 왕의 조카딸이 살고 있었다. 마지막 왕은 자녀가 없었기에 그 조카딸은 시킴의 마지막 왕족인 셈이다.

“우리 아버지는 마지막 왕의 비서였어요. 할아버지도 그랬고요. 그래서 우리를 가족처럼 생각하시면서 매번 초대합니다. 손님이 와 있다니까 함께 오라고 하시더군요”

예정없이 참석한 라마의 영결식

 
다비식에서 불을 붙이는 린포체.

어제 밤에는 다른 설명이 없더니 그곳으로 가는 길에 차안에서 우리에게 가는 집과의 인연을 자근자근 설명해 주었다. 그 집의 안주인은 60세를 넘긴 나이에도 단아하게 빗어 넘긴 머리에 여러가지 전통 장식을 몸에 걸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대단히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상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아주 오래됐지만 세련 된 디자인을 보는 듯 했다. 벽에 걸린 흑백사진들 속에서 그녀의 신분이나 걸어온 삶의 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우리가 초대되어 간 날은 연말가족모임이 열리는 날이었다.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사촌들과 그들의 장래 사돈까지 함께 하는 가족송년모임, 그곳에 낯선 이방인들이 초대된 것이다.

그들은 신분이 그러하다보니 얼른 보기에도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그들의 음식과 집안 분위기에서 시킴 사람들의 일상과 습관, 문화를 어느 정도는 감지할 수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남자와 여자가 같은 거실에서 따로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남녀가 따로 앉아 대화하는 것은 개방이 덜 된 까닭일 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에게는 안주인이 담근 ‘창’이라는 술이 나왔다. 이 술은 발효시킨 수수에 뜨거운 물을 부어서 마시는데 다른 술과 다른 점은 차를 우려내듯이 물을 계속해서 붓는 점이다.

‘창’은 제작 과정이 복잡하고 힘이 들어서 요즘엔 만드는 사람이 거의 없지만 만드는 과정이 현대화 되면서 일반 가게에서도 쉽게 살 수가 있다. 거기에 온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그 술을 캔으로 만드는 공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으니 ‘이 높은 산중에도 자본주의 경제가 자리를 잡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마음이 복잡해졌다. 뭐랄까, 이곳 사람들은 탐욕스런 자본주의를 제발 멀리했으면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들다가도 ‘어쩔 수 없는 변화겠거니’하는 체념이 교차한다. 나만의 망상이리라. 주인의 자상한 배려로 음식은 육식과 채식이 골고루 준비되어 있어서 너무나도 편안하게 성찬을 들 수 있었다.

시킴의 마지막 왕은 티베트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받는 송첸감포 대왕의 후손이다. 알다시피 송첸감포는 티베트를 하나로 통일한 뒤 불교를 국교로 삼아 티베트 민족을 정신적으로, 종교적으로 통합했다. 많은 스님들이 인도에서 불교를 배워오도록 노력하였으며 불경 번역을 위해 티베트의 언어를 새롭게 재구성한 이가 바로 송첸감포이다.

송첸감포의 후손이 시킴에 건너와 나라로서의 기틀을 다지고 체제를 갖추었으며 300여년이란 세월 동안 12대에 걸쳐 불교를 숭상하면서 1975년 인도에 합병될 때까지 시킴을 통치했던 것이다. 그 왕조가 ‘남걀 왕조’이다. 우리가 방문한 집 여주인의 삼촌인 시킴의 마지막 왕의 이름은 ‘쵸걀 팔덴 똔둡 남걀’(Chogyal Palden Thondup Namgyal)이다. ‘남걀’은 성(姓)인데 ‘남’은 ‘거대한 하늘’을 의미하고 ‘걀’은 ‘승리’를 뜻한다. 그대로 의미를 풀어쓴다면 ‘하늘을 덮을 만한 승리’라는 뜻이고 ‘최고의 승리자’로 의역할 수 있다. 그들의 성을 따서 ‘남걀 왕조’라고 하는 것이다. ‘쵸갈’은 왕이라는 의미이고 ‘팔든 똔둡’은 그의 이름이다. 그러므로 그는 ‘남걀 왕조의 팔덴 똔둡 왕’이 된다.

옛 순례자들은 말을 했다. 순례 중 가장 행복한 것은 같은 곳으로 향하는 도반을 만나는 일이요, 그 다음으로는 순례자를 위해 정성스럽게 공양을 올리는 선인들을 만나는 일이라고. 두 번째 기쁨에 흠뻑 취했던지라 발걸음도, 마음도 가볍게 숙소로 돌아왔다. 이미 해가 져서 주위는 온통 캄캄하다. 도착하자마자 마당에서 분주하게 어디론가 떠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린포체 역시 그들과 함께 가실 듯한 모양새다.
“무슨 일이신가요?”
“지금 북쪽으로 가는 것이라네.”
“그러신가요?”

둘러보니 점심 식사 초대에 동행하지 않고 린포체를 따라 갔던 ‘알버트’도 같이 가는 것 같았다. 알버트는 호주 사람으로, 린포체의 제자이다. 알버트에게 물었다.
“알버트! 같이 가나요?”
“예, 스님”
그의 대답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린포체님, 저도 함께 가도 되나요”라는 말이 튀어 나왔다. 린포체께선 라마들과 무언가를 논의하는 듯 했다.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순전히 나의 느낌으로 보아하니 자리가 부족해 어렵다는 말이 오가는 듯 했다. 그러나 린포체의 대답은 정반대였다.

“같이 가세. 거기는 추우니까 준비하고 나오시게.”
그곳의 날씨를 전혀 모르는 나는 가져온 옷을 껴입고 목도리까지 챙겼다. 린포체께서는 미안하게도 운전수 옆에 당신 혼자 앉아야 할 자리에 나를 태웠다. 다른 사람들의 불평을 없애기 위해 나를 당신 옆에 앉힌 것이다. 그 마음이 여간 고마운지라 아무 말이 없는데도 훈훈함이 밀려온다. 그 마음을 알아차린 후부터 다른 사람이나 린포체를 귀찮게 하지 않겠다고 서원했다. 범부란 원래 좋지 않은 일이 있은 후에야 잘못을, 미안함을 깨닫는 법이다.

칠흑 같은 어둠속을 뚫고 한 번도 가지 않은 비포장의 좁은 길, 그곳으로 가는 길은 조금은 긴장되고 궁금증을 자극하는 미지의 길이었다. 굽이굽이 3시간가량 북쪽으로 향하였다. 좁은 자리를 린포체와 나누어 앉아서 최대한 불편을 덜 드리려고 하다 보니 내 자세는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러나 린포체를 생각하니 불편함은 자꾸만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자연스레 마음을 집중하고 딴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 보니 덜컹거리는 비포장 길이 그리 지루한 것만도 아니었다.

차는 길을 가다가 잠깐 멈추어 한두 명씩 내려 주었다. 그 이유를 처음엔 몰랐는데 알고 보니 교통수단이 많지 않다보니 같은 방향으로 가는 차를 기다렸다가 함께 타고 온 것이다. 목적지인 ‘징침’(Jingchim)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저녁 8시를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 11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중간 중간에 사람들을 내려주다 보니 차에 남은 사람은 겨우 5명뿐이다.

어린시절 고향집같이 정겨운 곳

 
다비식에 참석한 마을 여인들이 ‘옴마니반메훔’을 염하고 있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계단을 올라 어느 집에 들어갔다. 그곳엔 린포체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이내 이곳에 온 이유를 알게 되었다. 이곳에 가끔 법회나 특별한 인연이 있을 때 오시는데 이번엔 72세의 나이로 입적한 ‘리객(Rigeak) 라마의 영결식을 위해서였다. 그 집은 노(老) 라마께서 지내시던 거처였다. 라마는 앉은 자세로 입적에 드셨고 가신 자세대로 관을 짜서 부처님을 모신 방사 한쪽에 모셨다. 다른 라마들이 극락왕생을 기원하면서 염불을 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마련해 준 저녁 공양을 간단히 들고 차를 마셨다. 외국에서 온 우리를 위해서 인도로 유학을 다녀온 젊은이들이 유창한 영어로 통역을 하면서 접대를 했고 갑작스런 외국인들의 출연에 노인이나 어린 여자 아이 할 것 없이 너도나도 나와 ‘알버트’를 보겠노라며 문틈을 기웃 거렸다. 어떤 이들은 들어와서 인사를 하기도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고개만 내밀고는 ‘씨~익’ 웃으며 그대로 달아나듯 나가는 모습이 너무나도 정겨웠다.

내가 어렸을 적 숫기가 없어서 밖에서 손님이 오시면 했던 행동들을 이곳 시킴에서 확인하다니, 순진무구했던 그 옛날의 마음을 확인해서인지 마음이 안온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때 묻지 않은 이들의 마음에도 우리들처럼 탐욕스런 경제논리에 물든다면 얼마나 이들의 마음이 각박해질까’라는 염려가 마음 한 쪽을 채운다. 마음속으로 기도를 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잘 배워서 깨끗한 마음이 계속되기를 석가모니 부처님의 지혜에 의지해 서원(誓願)합니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부처님 방을 보고 싶었던 나는 방으로 들어가 맨 아래쪽에 앉아서 저녁 염불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있었다. 그러나 그곳은 장소가 비좁아 잠을 청할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 4시에 일어나 염불을 하기 위해 다른 집에서 하루 밤을 묵었다. 산등성이에 걸터앉은 동네인지라 바로 옆집을 가는데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번갈아가며 걸어야 했다. 우리가 간 집은 방이 세 개인데 하나는 안방, 다른 하나는 애기 방 그리고, 부처님 방 이렇게 세 칸밖에 되지 않는 조그마한 집이었다. 집 주인들은 린포체께 안방을 내어드리고 자신들은 비좁은 애기 방에서 잤다. 황송하게도 나와 알버트는 부처님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거기다 나는 침상에서 자고 알버트는 차가운 마루바닥에서 자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잠들기 전 마당에서 바가지에 물을 받아서 양치를 할 땐 절로 웃음이 나왔다. 너무나 오래된 옛 추억을 순간순간 선물을 받고 있으니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시킴의 수도인 ‘강톡’의 숙소는 그래도 현대화 된 시멘트 건물이었는데 그 동네의 집들은 대부분이 고풍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나무기둥을 세우고 흙벽을 이어 조성해 흡사 어렸을 적 내가 살았던 그 집과 모양이나 구조가 비슷하였다. 단지 다른 점은 난방 시설이 없고 바닥이 마루이며 침대 생활을 한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바닥에 온돌을 깐다면 거의 똑같은 구조일 듯하다. 시킴은 대부분이 눈이 오지 않기 때문에 난방이 발달을 하지 않았다.

마을 주민 모두 함께한 소박한 다비

 
불자들이 올린 공양물에 버터를 붓고 있는 린포체.

“따라 오시게.”
새벽 4시 일어나 간단히 얼굴을 씻고 린포체를 따라 어제 그 집으로 다시 올라갔다. 거실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따라가 보니 부처님 방이었다. 린포체께서 당신 옆자리에 앉을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새벽부터 시작된 염불은 아침 공양을 할 때까지 2시간가량 계속되었다. 여섯 명이서 여러 가지 법구를 다루면서 염불을 하는데 그들의 몸동작이나 표정엔 흐트러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돌아가신 분을 위해 온 정성을 쏟고 있다는 느낌이 배어 나왔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함께 염불을 할 수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냥 앉아서 ‘나무아미타불’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좌탈입망(坐脫立亡 앉아서 죽는 것)을 하실 만큼 법력이 높으신 분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한참 뒤 사람들이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 절을 하고 나니 끝이 없을 것 같았던 새벽 염불이 끝났다. 그리고 모두가 아침 공양을 먹었다.
“사람들이 올라오는구만.”
공양을 마치고 마당에 나와 의자에 앉았을 때 린포체께서 말씀하셨다.

“예! 많은 사람들이 오는군요.”
“한 집에 한 명씩은 와야 해. 그렇지 않으면 벌금을 내거든. 이런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여자든 남자든 한 집에 한명씩은 의무적으로 동참해야 되지.”
시킴의 그러한 전통은 우리로 치자면 ‘두레’와 비슷해 보였다.

마을 사람들은 입적하신 라마와 어떤 인연을 맺은 것일까. 끊임없이 이어지는 마을 사람들의 수고로움에 잠시 생각에 들었다. 어떤 인연이기에 한 가족처럼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젠 육신만 남아 있는 라마의 편안한 ‘마침’을 위해 이렇듯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을 하고 음식을 공양 올리는 것인가. 가난하지만 자신이 갖고 있는 일체의 것들을 라마와의 헤어짐에 기쁜 마음으로 내어놓는 모습에서 라마의 자비로운 얼굴을 상상해 본다. 시킴 사람들에게 라마는 어버이면서 진정한 마음의 귀의처였음을 짐작케 한다.

“귀의불, 귀의법, 귀의승. 부처님께서 위대한 스승임을 믿고 의지합니다. 가르침이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임을 믿고 의지합니다. 스님들이 우리를 이끌어 줄 부처님의 제자임을 믿고 의지합니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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