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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洗心淸心] 하귤의 지혜

기자명 법보신문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장마사이로 난 짧은 볕을 틈타 무려 15개월 동안 속살을 익혀온 하귤을 수확했다. 워낙 새콤한 맛이 강해 미리 오금을 저려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 맛을 잊지 못해 약천사까지 오기도 한다. 처음 보았을 때 하귤은 참으로 신기했다. 지난해 맺힌 과실인데 해가 바뀌어 새해에 꽃이 피고 새 열매가 맺은 뒤에야 수확하는 과일이 또 있을까? 오랜 세월 익은 탓인지 그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세월은 많은 것을 녹슬게도 하지만 하귤과 같이 고고한 맛을 일구고, 또한 우리불교와 같이 항상 고고한 풍미를 지니게도 하는가 보다.

MB정부는 경제제일주의를 기치로 능률과 합리성을 강조하더니 얼마 전부터 터져 나온 ‘영포회’관련 민간인 사찰건을 바라보면 착잡함을 금할 길 없다. 정말 백주대낮에 도적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엄연히 법과 원칙을 따라야 할 사람들이 자기집단의 이익을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자기들만의 이익을 위해 공공기관의 주요요직을 나눠 가졌다하니 정말 소름이 끼친다.

‘승자가 모든 걸 가져요(The winner takes it all)’라는 말이 흘러간 팝의 가사일 뿐이라 생각 했는데 누구나 승자가 되면 그렇게 되나보다. 다행히 타의든 자의든 바로잡으려 단호한 노력을 한다고 하니 믿어보고 싶다.

타산지석이라 했던가? 현 정부의 실패한 운영에 견주어 우리불교의 자화상을 바라보면 안타까움이 더해진다. 정부는 그래도 법적으로 삼권을 분리하여 서로 견제 한다고 하지만 불교는 아직 그러한 제도가 마련되지 않았다. 누군가 ‘주지는 조계종의 꽃이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주지로 임명되면 인사권과 재정권을 송두리째 가지게 되고 견제의 기능도 전무한 실정이다. 거주하는 스님뿐만 아니라 종무원, 공양주, 심지어 신도회장, 화주까지 다 바꾸었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이로서 파생되는 문제들이 한둘이 아니다. 다행히도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주지스님들이 덕망이 있어 인사와 재정권 남용사례가 많지 않아 다행스럽다. 하지만 주지가 바뀌어도 개별 사찰 고유의 정체성이 지속될 수 있도록 하기위한 제도가 필요할 것이다.

사실 국내에서는 순응하는 많은 신도들로인해 그럭저럭 꾸려지고 있지만 해외사찰의 문제는 심각하다. 많은 해외사찰이 공동화되는 제도적 문제 중 하나가 주지스님이 한국적 주지의 권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데 기인하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많은 해외사찰은 나름대로 운영위원회를 두어 법인체 역할을 하기 때문에 사실 주지라 해도 재정과 인사를 전횡해서는 안 된다. 해외에 주지로 갔다 돌아와서 ‘내가 무슨 봉급쟁인가! 주지라고 해놓고 지들 맘대로 하더라’며 불평하는 것을 보았다. 물론 스님의 억울함을 백번 이해하겠지만 국내 주지와 다르다는 것을 깊이 인지하지 못하고 해외로 나가서 적응하지 못하는 스님들을 보면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

어떠한 제도보다 개개인의 완숙한 인격에 의존하는 것이 이상적이긴 하겠지만 어쩌면 우리 사회가 도량을 가득 장엄해주는 하귤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도 하귤처럼 전임자와 후임자가 일정기간 함께 한다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도 잘 익은 하귤은 새롭게 영글어가는 새 귤에게 가을과 차가운 겨울 지내는 지혜를 잘 전수 했으리라 생각된다. 내년에도 약천사 하귤 맛이 올해랑 별반 다르지 않다면 말이다. 두고 보면 알 일이다.

약천사 주지 성원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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