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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함께 떠난 인도순례] 4. 어느 라마의 입적(下)

기자명 법보신문

타는 불길 따라 관념의 찌꺼기도 재가 되다

 
녹색 빛을 보이는 징침 지역의 신성한 호수 띰쳄(Thimchem).

이미 며칠은 지났으리라. 시킴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징침’(Jingchim) 사람들의 얼굴에선 돌아가신 노(老) 라마와의 인연을 아쉬워하는 그리움이 읽힌다. 라마의 다비식에 함께 한 사람들의 얼굴에 서운함이 짙게 보인다. 한국에서 보았던 여느 장례식이나 큰스님의 다비식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라 낯설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들에게서 풍겨 나오는 안온함과 훈훈함이 그대로 전이되어 내 마음도 숙연해진다. 라마에 대한 존경심이리라.

라마의 평생 행장이 남아 있는 이곳에는 우리와 비슷한 모습도 많았다. 우리의 시골처럼 대문이 없다는 점이 익숙하다. 라마의 법체가 안치된 그 집도 예외는 아니다. 마당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덕킁 린포체가 마당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는 잠깐 놀라는 표정으로 머뭇거리다가 다시 다가와서 조심스럽게 린포체 앞에서 머리를 숙였다. 린포체는 머리에 손을 얹고 축복을 한 뒤 한두 가지 사소한 질문을 던졌다. 재가자든 출가자든 한 명도 빠짐없이 린포체에게 먼저 인사를 올리고 축복을 받고 할 일을 하러 갔다. 마치 집안의 웃어른께서 모든 이들을 가족처럼 대하면서 큰일에서부터 소소한 일까지 상의하는 듯 했고 마을 사람들은 린포체를 존경해 마지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장작을 패거나 음식을 준비하고 다과를 준비하는 등 라마의 다비식에서 각자 맡은 일에 열중했다. 가만히 린포체와 마을 사람들의 움직임을 살피고 있자니 재미있는 광경이 들어온다. 마을 사람들이 슬슬 눈치를 살피면서 린포체가 앉은 자리에서 정확히 5m 정도 떨어져 움직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궁금증을 참지 못해 린포체에게 여쭈었다.

주민들 역할 나눠 다비식 준비

“왠지 사람들이 린포체님 주변에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하하하, 글쎄! 나도 그것이 궁금해.”
시킴에 있는 동안 가장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그곳 사람들 모두가 린포체 주변에 오거나 옆에 앉기를 주저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그들에게 물어보지 못하고 머릿속에 의문으로 간직하고 있었다. 린포체의 대답이 시원하지 않아서인지 답답함만 더한다.

아침 8시가 되자, 라마의 법체를 봉안한 상여가 마당으로 나왔다. 실내에서는 하얀 천으로 둘러 싼 관의 모습만을 보았는데 언제 준비를 했는지 흰색, 노란색, 빨간색, 파란색 그리고, 녹색의 천으로 엮어서 장식을 했다. 상여의 모습이 마치 한 폭의 화려한‘만다라’와 같다. 정토 세상에 핀 한 송이 연꽃이 이러할까. 마당에서 상여가 떠날 준비를 하는 동안 집 앞에서는 화장터로 가는 행렬을 준비하는데 맨 앞에는 나팔을 부는 사람이 섰고 티베트 불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색 깃발이 그 뒤를 따랐다. 스님들과 신도들이 격식에 맞추어 늘어 선 행렬의 순서나 모습이 우리의 전통장례를 빼닮았다. 행렬이 출발한 뒤 린포체를 따라 화장터로 향하는데 길목 군데군데에는 나뭇가지를 쌓아 연기를 피웠다. 향나무를 태운 향은 장례 행렬이 지나는 길을 맑은 기운으로 장엄했고 연기는 라마의 영혼을 편안하게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하는 듯 했다.

“향불연기로 청하옵니다.(香煙請) 향불연기로 청하옵니다.(香煙請) 향불연기로 청하옵니다.(香煙請)”
논과 밭을 지나 ‘오르막 길’로 이어지는 화장터는 마을에서 20분가량 걸어서 산비탈을 돌아서 마을이 보이지 않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린포체와 나 그리고, 몇몇은 상여가 도착하기 전에 화장터에 도착하기 위해 걸음을 재촉했다. 린포체가 걸음을 멈추고 풀뿌리를 캐시더니 나를 보고는 툭 질문을 던졌다.
“스님, 이것이 뭔지 아시나?”
“아니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 뿌리에 난 혹 같은 것이 약효가 많지. 당뇨에도 좋고.”
“그렇습니까?”
“이것 좀 먹어 볼라나.”

린포체는 흙을 털어낸 뒤 풀뿌리에 난 혹 같은 것을 불쑥 내밀었다. 호기심으로 받아먹었는데 약간 떫은맛을 빼고는 먹을 만 했다. 약재에 별 관심이 없었던지라 그냥 지나쳤다. 조금이라도 뭔가를 가르쳐 주시려한 린포체의 배려에 조금이라도 보답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조금은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산등성이에 난 길을 따라 도착한 화장터는 사용이 빈번한 듯 했다. 화장터의 한편엔 시멘트로 조성한 창고 같은 작은 건물이 있었고 스님들이 앉는 곳에는 어설프지만 강한 햇볕을 가릴 수 있는 지붕도 마련되어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킴에 무덤을 본적이 없어서 물어보니 시킴 사람들은 세연을 다하면 화장을 한단다. 시킴의 일상 곳곳에 불교의 영향이 배어있는 증거이다.

우리가 도착하기 전 아침에 보았던 네 명의 라마들은 미리 와서 한편에 나란히 앉아 염불을 하고 있었고 그들 앞과 다른 한편엔 여러가지 공양물이 준비되어 있었다. 공양물은 주로 곡식이었고 갈대줄기 같은 것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고체 버터를 불로 녹이고 있었는데 나중에 공양물과 함께 불꽃 속에 올렸다. 어느 라마의 지도로 마을의 남자들은 나무를 베고 쌓아서 화장할 준비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긴 칼을 이용해 나무를 베는 모습이 마치 영화에서나 보았을 법한 바로 그 장면이다. 세 번의 칼질로 나무를 차곡차곡 자르는 모습이 신기해 넋을 놓고 보았다.

염불을 올리는 제단에 곡물과 버터 등 공양물을 거의 다 진설했을 즈음 린포체와 라마들이 나란히 앉았다. 린포체는 이번에도 나에게 당신 옆 자리를 내어 주셨다. 나보다 법랍이 많은 라마들이 있는데 내가 이 자리에 앉아도 되는지 망설여지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린포체의 말씀이라 그냥 따랐다. 다비대는 우리나라처럼 화려하지 않았다. 쌓아놓은 나무 단에 상여를 그대로 올려놓았다. 린포체가 염불을 하고 점화를 했다. 그런 뒤에 앉아서 본격적으로 염불을 시작했다. 염불을 하던 라마들도 정성을 다해 염불을 이어갔고 린포체 역시 염불에 몰입했다. 염불을 하는 동안 어린 라마가 제단의 공양물들을 조금씩 덜어 린포체께 드리면 린포체는 공양물과 버터를 넓은 그릇에 담았고 라마는 그릇에 담긴 공양물을 불 속에 넣는 행동을 반복했다. 그들의 염불을 알지 못했기에 나는 그냥 ‘나무아미타불’을 염송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우리들이 앉은 뒷자리에는 마을 여인네들이 앉아 “옴 마니 반메 훔”을 쉼 없이 염송했다. 시킴의 여인들은 한 달에 하루는 집안일을 뒤로한 채 절에 모여서 염불하고 기도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그들은 정성을 다해 하던 일을 멈추고 절에서 가족이나 자신의 행복을 염원한다. 마을에 큰 일이 있을 때에도 염불을 한다. 라마의 극락왕생을 서원하며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여간 진지한 게 아니다.

여인들은 2시간이 넘도록 염불을 하다가 불꽃 속에 앉아계신 노 라마에게 삼배의 예를 갖춘 뒤 마을로 내려갔다. 염불을 할 때와는 다르게 절을 하는 순간에는 그들의 눈에도 눈물이 글썽거렸다. 남자들도 뒷정리를 위해 몇 명만 남았을 뿐 염불이 끝날 무렵에 삼배의 예를 올린 뒤 하산했다. 그들의 눈시울도 여인들 못지않게 붉게 변했다. 돌아가신 라마를 향한 그들의 마음이 얼마나 정성스럽고 갸륵한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화장을 하는 과정에서는 작은 문화적인 충격들이 이어졌다. 나무가 적어서인지 화장의 불꽃이 높이 오르자 라마의 법체를 이리저리 뒤척여 잘 타도록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다. 그토록 존경하는 라마의 마지막 법석을 장엄하게 봉행하기 위해 나무를 충분히 준비해서 여법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나의 마음에 박혀 있는 하나의 고정관념일 뿐 그들의 표정에는 그 누구도 개입할 수 없는 진지함과 정성스러움이 깃들어 있다. ‘과연 라마의 시신을 뒤척일 만큼 순수하게 누군가의 다비를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미치니 한 순간 내 머릿속이 멍해졌다.

불꽃이 거의 다 사라질 즈음 장례를 하면서 사용하고 남은 종이나 나뭇가지 같은 것도 불길에 마구 던져 넣었다. 조금은 어색했으나 불경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어쩌면 우주만물이 하나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 주는 성스러운 의식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이 공(一切皆空)이지 않은가. 그 이치를 알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행동은 일견 자연스러웠다. 나만의 관념으로 그들을 제단하려 한 마음이 또 한 번 껍질을 벗으면서 관념 역시 라마의 법체를 둘러싼 불길 속에 함께 타버렸다.

다비 중인 라마의 법체 뒤적이기도

 
사그라져 가는 불꽃 속 늙은 라마의 법체.

우리나라 같으면 고승이 입적했으니 밤을 지새우고 타고남은 잿더미 속에서 사리를 수습하련만 이곳에선 5시간가량 타오른 불길로 화장을 마무리한 뒤 유골을 수습해서 스투파(Stupa 사리탑)에 봉안한다. 시신의 발에서 머리까지 불길 속에 검게 그을리고 몸 속 뼈마디까지 드러나고 몸을 구성하고 있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가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두 눈으로 친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생면부지(生面不知)의 라마가 설한 마지막 법석을 보면서 수행자나 순례자들이 화장터에 가서 공부를 하는 이유를 조금은 알듯하다. 부처님께서 이적(異跡)을 보이신 갠지스 강가에서 왜 인생을 관(觀) 하는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일상적으로, 습관적으로 나는 공(空)을 말하곤 했다. 그럼에도 그 가르침은 나의 몸에 체득되어 있는가, 그럼에도 나는 그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가를 자문해 보았다. 답은 명확하다. 그렇지 않았다. 입으로는 늘 본래공(本來空 세상은 본래 공한 것)을 말했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마음에 사무치지 않았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 되새기게 되었다. 염불이 끝나고 린포체와 함께 그곳을 내려오면서 나는 내 자신이 출가하여 걸어온 길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았다. 그런 연후에 남은 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원력을 다졌다.

“살아 있음에 늘 행복해 할 것이며 지혜 공덕으로서 나의 사대(四大)를 장엄하리라.”
마음이 맑아지니 자연스럽게 문수보살의 진언이 흘러나온다.
“옴 아라 바사 나디, 옴 아라 바사 나디, 옴 아라 바사 나디….”

점심 공양을 하고나서 동네 주변을 돌아보기 위해서 마을을 안내해주던 이 마을 사람 ‘카르쟝’의 도움으로 건물이 하나뿐인 도량과 도량 뒤편에 있는 조그마한 호수인 ‘띰쳄’(Thimchem)에 가보았다. 호수 한 가운데에는 커다란 돌이 마치 산처럼 놓여 있었고 그 것을 중심으로 편을 가르듯이 물의 색깔이 녹색과 맑은 빛깔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 호수는 불자들뿐만 아니라 힌두교 신자들도 참배하는 성지다. 거기에도 부처님의 말씀을 담은 오색의 ‘룽다’(Rungda)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위없이 미묘한 법 백천만겁에 만나기 어려워라. 내가 이제 듣고 보고 받아 지니니 원컨대 부처님의 진실한 뜻 알지어다.(무상심심미묘법 無上甚深微妙法 / 백천만겁난조우 百千萬劫難遭遇 / 아금문견득수지 我今聞見得受持 / 원해여래진실의 願解如來眞實意)”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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