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살림과 모심]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생명살림과 모심]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들
  • 법보신문
  • 승인 2010.07.19 16: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잦은 이사로 주위 자연에 대한 책임도 회피
4대강 공사, 생명의 고향·감성 사라지게 해

우리가 부르는 동요나 가요를 보면 대부분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에 대한 노래입니다. 나머지는 ‘자연’을 노래하거나 특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남녀 간 사랑의 감정이야 사람간의 일이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며 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이나 고향은 한번 없어지면 더 이상 회복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고향이나 산과 강 등의 자연은 우리 마음의 원천, 감성의 근원입니다.

여우도 죽을 때는 고향을 향해 머리를 둔다는 뜻의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는 말은 산과 들에서 뛰어놀고 이웃집과 함께 길쌈하면서 살던 고향이라는 마을공동체가 사람에겐 정신적 귀의처라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게 돌아갈 고향이 있을까요? 6~70년 이농현상과 도시화로 고향을 떠나 온 사람들은 돈을 벌어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마음을 먹었건만, 대부분 그냥 도시에 눌러 앉습니다.

돌아가야 할 고향은 그저 명절 날 가끔 부모님을 뵙거나 성묘하기 위해 들르는 곳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들의 아이들에게 고향은 이제 ‘00 병원 분만실’입니다. 고향을 잊어버리는 시대는 수많은 사람들이 돌아가야 할 근본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의 문화와 자연의 문화보다는 기계 문명의 편리함, 맥도날드와 콜라로 대표되는 소비형 인간이 돼 버립니다.

고향은 누대에 걸쳐 살아온 땅입니다. 마을사람들과는 서로 돕고 협력해서 살아야 하고,
마을 인근의 산과 들 밭과 논, 나무와 개천은 자신의 아버지와 할아버지 등 선조들이 심어놓고 가꾸어 놓았으며, 또한 자신의 후손들이 이용해야 할 것이기 때문에 ‘어촌계’, ‘송계’등을 통해 자연을 누군가 함부로 손대는 것을 막고 보호하는 일을 했습니다. 다 그 지역에 오랫동안 사는 붙박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제 현대사회 사람들은 더 이상 붙박이가 아닙니다. 이제 모두 떠돌이가 되었습니다.

한곳에 10년 넘게 사는 사람이 드뭅니다. 더 넓은 아파트로 계속 이사를 다니고, 아이들 교육 때문에 좋은 학교가 있는 곳으로 옮겨 다니곤 합니다. 동네에 정 붙일 겨를이 없습니다. 또한 주변 자연에 대해 굳이 책임져야할 이유가 없습니다. 곧 떠날 테니까요. 입주자도 세입자도 자주 바뀌니 공연히 이웃끼리 정을 줘봤자 아쉬움만 더해 정을 주기도 꺼려합니다. 돈이 있으면 굳이 사람을 만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돈이 없으면 결국 사람의 도움에 의존하고 협력에 의존해야 합니다. 결국 돈 중심의 도시중심의 사회는 고향도, 이웃도 사라지게 한 것이지요.

그래서 돈 중심의 사회를 벗어나 생태적인 사회를 만드는 것은 지역을 살리고 지역의 공동체를 살리며, 사람들끼리 마을을 살리는 일이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살리는데 대단히 중요한 이유가 됩니다. 4대강 개발 사업을 통해 강이란 강은 모두 직강하천이 개발됩니다.

콘크리트 하안블록으로 뒤덮이면 또 다시 많은 사람들은 고향을 잃게 됩니다. 개발을 통해 물고기와 수서생물 및 새와 짐승들만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마음속에 쌓여 있는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과 정서의 원천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다고 과연 이들을 무시해도 될까요?

유정길 에코붓다 공동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