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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변명] 근대이성의 질문

기자명 법보신문

문명, 지구온난화라는 절체절명 위기 불러
흙과 소통하며 존재를 배려하는 삶이 대안

개인의 자유와 자본을 도구로 삼은 근대이성은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전면적으로 왜곡시켜 무한경쟁과 전쟁, 양극화와 절대빈곤의 심화 그리고 오일피크와 지구온난화라는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렀다.

근대이성은 근대국가를 산업자본에 맡기면서 자본의 논리를 정치도구로 활용하며 근대적 제도와 관행을 노골적으로 강요하고 집행했다. 근대인간은 압도적인 자본의 논리에 순응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속에서 인간에 대한 우애와 배려, 자연에 대한 겸허한 삶이란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었다. 탈근대의 문턱에 선 근대이성은 지금도 여전히 근대 여명기의 개인의 발견이라는 환희에 사로잡혀 누구나 자기몰두에 빠져 있다.

끊임없는 개발을 통한 엄청난 생산력에도 불구하고 4대강의 말뚝은 견고하고 전쟁은 더욱 잔인한 구상으로 설계되며 빈곤은 죽음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그 속에서 한쪽에서 제기되는 이른바 진보의 역동적 복지론의 주창도 근대의 어두운 기술과 전문가 그리고 야비한 정치인의 선택적 고려대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라는 우려가 많다.

이러한 근대의 어둠은 어디에서 온 것인가? 신을 살해한 근대이성은 신의 자리에 초인과 자본을 설정해 두고 스스로 신이 되고자 했다. 그러나 전근대의 신은 죽지 않았다. 근대는 전근대의 신과 근대의 자본과 초인이 인간과 동물과 자연을 두고 생존게임을 벌이는 서바이벌 공간이 되고 말았다. 며칠 전, 부안 반핵운동의 상징인 생명평화마중물에 다녀왔다.

주민자치의 힘으로 선언된 에너지자립마을을 마을 주민들과 함께 일구고 있는 사람, 서울을 버리고 계화도 간척지에 내려와 농사꾼이 된 사람, 부안에 내려온 지 21년이 되었어도 전라도 사람들의 고집스런 향토의식을 존중하는 사람, 밥상을 차려 대접할 줄 아는 바보를 만나러 갔다.

근대체제에 순응하기를 근본적으로 거부하는 이 사람들, 스스로 바보들은 만나면 그저 좋다. 어떠한 형태로든 눈에 띄지 않는 이러한 스스로 바보들은 저항이 삶이다. 오랜 세월 민중의 생활 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면면히 전승되어 온 토착적 가치가 살아있다는 것을 흐뭇하게 상기하는 사람, 그가 태어난 공동체 속에서 자연과 사람을 접하며 저절로 몸에 익혀진 야생의 생존기술인 우애와 배려로 똘똘 뭉쳐진 사람, 근대체제의 적대적 생존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영어에 몰두하는 대신 삶의 구체적인 진실이 드러나는 뿌리에 흙이 묻어있는 소통의 언어를 고집하는 사람, 어떤 국가와 자본도 제공할 수 없는 호혜적 관계와 복지가 살아있는 오래된 작은 마을로의 회귀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

본래 인간은 삶의 현장에서 저절로 배움을 익혀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바보들이다. 스스로 바보들은 마른 잔디에 물을 줄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물을 주는 사람이며, 낡은 현관과 벼룩 있는 개와 즐겁게 뛰어노는 아이들 옆에서 짝 잃은 슬리퍼를 정리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과 존재를 배려한다는 말 전에 그의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이 스스로 바보들이다. 근대이성은 이 스스로 바보들에게 근대이성이 뭐냐고 묻고 있다. 

정호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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