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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추회요 강설] 허공에서 온갖 세계 생멸해도 자체는 변화 없어

기자명 법보신문

열 가지 수승한 지혜로 표현된 부처님이 십지여래
법신은 수행 결과로서 얻은 깨달음이란 법의 바탕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는 절대 늘거나 줄지 않는다

34. 성불의 이치는 무엇인가

夫釋迦文佛 開衆生心 成佛知見 達磨初祖 直指人心 見性成佛 若體此一心 云何是成佛之理.

문 : 석가모니 부처님은 중생의 마음을 밝혀 부처님의 지견을 이루었고, 달마 대사는 사람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자신의 성품을 보아 성불한다고 하였는데, 만약 이 한마음을 체득하는 것이라면 성불의 이치는 무엇입니까?

一心不動 諸法無性 以無性故 悉皆成佛. 華嚴經 云.

답 : 한마음은 움직이지 않으니 온갖 법에 결정된 성품이 없어 ‘무성(無性)’이고, 온갖 법에 결정된 성품이 없어 ‘무성’이므로 모든 것이 다 성불한다. 이 내용을 『화엄경』에서 보현과 묘덕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佛子 如來 成正覺時 於其身中 普見一切衆生成正覺 乃至 普見一切衆生入涅槃. 皆同一性 所謂無性. 無何等性. 所謂 無相性 無盡性 無生性 無滅性 無我性 無非我性 無衆生性 無非衆生性 無菩提性 無法界性 無虛空性 亦復無有成正覺性. 知一切法皆無性故 得一切智 大悲相續 救度衆生.

보현 : 불자여, 여래께서 ‘올바른 깨달음’을 이루었을 때, 그 몸 가운데서 두루 모든 중생이 정각(正覺)을 이룬 것을 보고 두루 모든 중생이 열반에 들어간 것을 보니, 이들 모두 동일하게 이른바 결정된 어떤 성품이 없는 ‘무성(無性)’이었다. 어떤 성품들이 결정된 것이 없다는 것인가?

이른바 어떤 모습도 없는 성품[無相性]이고 어떤 모습도 없기에 그 모습이 다 사라질 것도 없다는 성품이며[無盡性], 생겨날 것이 없는 성품이고[無生性], 생겨날 것이 없어 멸할 것도 없다는 성품이며[無滅性], ‘나’라고 할 것도 없는 성품이고[無我性] 나’라고 할 것도 없으니 ‘나’가 아니라고 할 것도 없다는 성품이며[無非我性], 중생이 없는 성품이고[無衆生性] 중생이 없으니 중생이 아니라고 할 것도 없는 성품이며[無非衆生性], 깨달음도 없는 성품이고[無菩提性] 법계도 없는 성품이며[無法界性], 허공도 없는 성품이고[無虛空性] 또한 ‘올바른 깨달음’이라고 할 것조차도 없는 성품[無有成正覺性]이다.
모든 법에 다 결정된 성품이 없어 무성임을 알기에,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얻어 끝없이 크나큰 자비로 중생들을 제도하느니라.

佛子 譬如虛空 一切世界 若成若壞 常無增減. 何以故 虛空無生故. 諸佛菩提 亦復如是 若成正覺 不成正覺 亦無增減. 何以故 菩提無相無非相 無一無種種故. 佛子 假使有人 能化作恆河沙等心 一一心復化作恆河沙等佛 皆無色無形無相. 如是盡恆河沙等劫 無有休息 佛子 於汝意云何 彼人化心 化作如來 凡有幾何如來性起.

불자여, 이는 허공에서 온갖 세계가 만들어지고 파괴되어도 허공 자체에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게 없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허공 자체는 생겨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도 이와 같다. 올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거나 성취하지 못하더라도 모든 부처님의 깨달음 자체에는 조금이라도 더 늘어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깨달음은 어떠한 모습도 없고[無相] 어떠한 모습 자체가 없으니 모습이 아니라고 할 것조차 없으며[無非相], 하나로서 똑같다고 할 것도 없고[無一] 하나로서 똑같다고 할 것이 없으니 온갖 종류로 다를 것조차도 없기 때문이다[無種種].

불자여, 설령 어떤 사람이 갠지스 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마음을 만들고, 이 하나하나의 마음에 다시 갠지스 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부처님을 만들더라도, 이 모두에는 색깔도 없고[無色] 형태도 없으며[無形] 모양도 없느니라[無相]. 이와 같이 갠지스 강 모래알 수만큼 많은 겁의 세월이 다하도록 이 마음도 쉬는 법이 없으니, 불자여, 그대가 생각하기에 그 사람이 만든 마음과 그 마음이 만든 부처님에게 얼마나 많은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겠느냐?

妙德菩薩言 如我解於仁所說義 化與不化 等無有別 云何問言 凡有幾何. 普賢菩薩言 善哉善哉 佛子 如汝所說 設一切衆生 於一念中 悉成正覺 與不成正覺 等無有異. 何以故 菩提無相故 若無有相 則無增減. 佛子 菩薩摩訶薩 應如是知 成等正覺 同於菩提 一相無相.

묘덕 : 보현보살께서 말씀하신 이치를 제가 이해하기로는 중생을 교화하여 성불시키거나 성불하지 못하더라도 그 근본은 평등이어 차별이 없는 것인데, 여기서 어떻게 얼마나 많은 여래의 성품이 일어나느냐고 물을 수 있겠습니까.

보현 : 맞다 맞는 말이다, 불자여. 참으로 훌륭하다. 그대가 말한 대로 설사 모든 중생이 한 생각 가운데 모두 정각을 이루어도, 근본 자리에서는 정각을 이루지 않은 것과도 평등이어 다를 것이 없느니라. 왜냐하면 깨달음은 어떠한 모습도 없기 때문이다. 어떠한 모습도 없다면 여기에는 더 늘어나거나 줄어들 것이 없다. 불자여, 보살마하살은 이와 같이 알아야하니,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어 깨달음과 같아진 것은 무성(無性)으로서 하나의 모습이지 다른 모습이 없느니라.

강설) 무성(無性)이란 말에는 무상성(無相性) 무진성(無盡性) 무생성(無生性) 무멸성(無滅性) 무아성(無我性) 무비아성(無非我性) 무중생성(無衆生性) 무비중생성(無非衆生性) 무보리성(無菩提性) 무법계성(無法界性) 무허공성(無虛空性) 무유성정각성(無有成正覺性)의 뜻을 두루 포함하고 있으며 모두 공성(空性)을 강조하여 모든 법에는 결정된 성품이 없다는 뜻이다.

대승기신론에서도 세 가지 무성(無性)을 이야기하니 공(空)의 관점에서 현재 일로 나타난 모든 모습에 자성이 없다는 ‘상(相)무성’과 인연으로 생겨난 모습이 일시적으로 존재하지만 그 실성이 없다는 ‘생(生)무성’과, 진여에는 모든 개념과 말과 모양이 끊어졌으므로 결정된 성품이 없다는 ‘승의(勝義)무성’을 말한다. 이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진공(眞空)을 표현한 것으로 이 단락에서는 특히 진공을 강조해 설명하고 있다. 이 진공을 깨닫는 것이 올바를 깨달음이요 정각(正覺)이며 등정각(等正覺)이다.

35. 인연을 따르되 걸림이 없어

華嚴經 直以全佛果不動智等 十智如來 示凡信修. 如有凡夫 頓昇寶位 身持王位 遍知臣下 一切群品 無不該含. 華嚴經中法門 菩薩行相 亦復如是. 從初發心十住之始 頓見如是如來法身佛性無作智果 遍行普賢一切萬行. 隨緣不滯 悉皆無作.

『화엄경』에서 바로 불과(佛果)로서 부동지(不動智) 등을 온전히 갖춘 십지여래(十智如來)께서 어떻게 믿고 수행해야 하는가를 보여 주었으니, 이는 범부가 단숨에 임금이 되어 두루 모든 신하와 백성들을 거느리고 사는 것과 같다. 『화엄경』 법문 가운데 보살의 행상(行相)도 이와 같다. 보살이 초발심 십주(十住)에서 시작하여 단숨에 이와 같은 여래의 법신(法身) 불성(佛性) 무작지과(無作智果)를 보고서는 두루 보현의 온갖 보살행을 실천하니 인연을 따르되 걸림이 없으므로 모두 무작(無作)인 것이다.

강설) 불과(佛果)는 수행의 결과로 깨달음을 뜻한다. 이 불과에서 갖추게 되는 것이 바로 흔들림이 없는 지혜로 부동지(不動智)이다. 여래께서는 부동지(不動智)로써 온갖 지혜를 갖추고 있는데 이 온갖 지혜를 정리하여 열 가지 수승한 지혜로 표현되는 부처님을 십지여래(十智如來)라고 한다. 법신(法身)은 수행의 결과로서 얻는 ‘깨달음이란 법의 본바탕’을 말한다. 이것이 부처님의 성품인 불성(佛性)이다. 이 자리에서는 나와 남이라는 분별이 모두 사라지고 텅 빈 부처님의 마음만 남아 온갖 것을 아는 지혜가 생긴다. 이것이 무작지과(無作智果)이다. 무작(無作)은 나와 남이라는 분별이 사라져 주객이 하나가 된 걸림 없는 무심도인의 삶을 말한다.

36. 부처님에게 열 가지 몸이 갖추어져 있어

就佛上自有十身 一菩提身 二願身 三化身 四力持身 五相好莊嚴身 六威勢身 七意生身 八福德身 九法身 十智身.

첫째, 깨달음으로 나타나는 몸이니 보리신(菩提身)이다. 둘째, 중생구제의 원력으로 나타나는 몸이니 원신(願身)이다. 셋째,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나타나는 몸이니 화신(化身)이다. 넷째, 대단한 힘을 지니고 나타나는 몸이니 역지신(力持身)이다. 다섯째, 좋은 상호로 장엄하여 나타나는 몸이니 상호장엄신(相好莊嚴身)이다. 여섯째, 대단한 위엄과 세력으로 나타나는 몸이니 위세신(威勢身)이다. 일곱째, 중생을 교화하고자 뜻한 대로 나타내는 몸이니 의생신(意生身)이다. 여덟째, 중생의 복덕이 되려고 나타나는 몸이니 복덕신(福德身)이다. 아홉째, 법 그 자체로 나타나는 몸이니 법신(法身)이다. 열째, 지혜로 나타나는 몸이니 지신(智身)이다.

원순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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