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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밍글라바 미얀마] 6. 우빼인 다리와 마하무니 파고다

기자명 법보신문

정복 역사 무색케 하는 무한한 신심의 결정체

 
160여 년전 만들어진 우빼인 다리. 다리에 사용된 1086개의 티크목은 패망한 어와 왕조의 버려진 궁궐에서 가져온 것이다.

만들레이의 아침공기는 신선하다. 바간에 비해 좀 더 물기를 머금은 상쾌한 느낌이지만 내륙에 위치한 만들레이는 미얀마에서도 가장 더운 지역으로 손꼽힌다. 해가 더 높이 올라가 기승을 부리기 전 서둘러 일정을 시작해야하는 이유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공항을 빠져나와 만들레이 시내로 들어가기에 앞서 아마라뿌라로 먼저 향한다. 만들레이 남쪽으로 약 11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아마라뿌라는 꽁바웅 왕조의 5대 왕인 보도퍼야 치세의 수도였다. 아마라뿌라는 빨리어로 ‘불멸의 도시’라는 멋진 뜻을 갖고 있지만 1839년 대지진으로 수도가 파괴되고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민돈 왕이 만들레이로 수도를 천도하면서 불멸의 도시는 불멸의 빛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만들레이 근교의 몇몇 관광지 가운데 하나인 작은 마을에 불과하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관광객과 순례객들은 아마라뿌라로 발길을 향한다. 미얀마의 명물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우빼인 다리’가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따웅떠만 호수를 가로질러 놓여있는 우빼인 다리는 길이만도 1.2킬로미터에 달한다. 무려 1086개에 달하는 티크목을 사용해 그 긴 다리를 만들었는데 세계에서 가장 긴 나무다리란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 다리가 지어진지 무려 160여 년이나 되었다는 점이다. 물에 잠겨도 쉽게 썩지 않는 티크목 덕분에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다리를 건너다닌다.

160년 된 세계 최장 나무다리

우빼인 다리는 1851년 이 지역의 관리였던 우빼인이라는 장자가 건설했다. 따웅떠만 호수 건너편 사원의 스님들이 마을로 탁발을 나오기 위해 호숫가를 멀리 돌아오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우빼인 장자가 스님들을 위해 이 다리를 만들어 보시했다. 그 장자의 이름을 따서 우빼인 다리로 불리는데 다리 건설에 사용된 티크목은 근처 어와 지역에 있던 옛 왕조의 황폐한 궁전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러니 다리가 만들어진지는 160여 년이지만 사용된 나무들이 배어진지는 그 보다 훨씬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우빼인 다리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젊어 보인다. 특히 다리를 떠받치고 있는 둥근 원목의 기둥들은 여전히 허리가 꼿꼿하다. 어지간히 뛰어다니거나 자전거 몇 대가 함께 지나가도 끄떡없다. 팽창과 수축이 적고 뒤틀리거나 갈라지지 않아 최고의 목재로 손꼽힌다는, 동시에 전 세계 생산량의 70%를 차지 한다는 미얀마 티크목의 명성이 과연 허언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그 속내는 조금 다르다. 다리 기둥 가운데 비교적 키가 작은 나무 기둥이 있어 그 속을 들여다보니, 아뿔싸 속이 텅 빈 것이 마치 굵은 목관파이프 같다. 160여 년의 세월에 속을 다 내어주고 이제는 돌처럼 굳은 껍질만 남은 것이다. 그런데도 제 소임을 다하기 위해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 기둥이 기특해 다시 한 번 어루만져 본다.

우빼인 다리가 유명한 이유는 사실 그 다리의 역사와 크기 보다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일몰이 가히 장관으로 손꼽히기 때문이다. 따웅떠만 호수 뒤로 기울어지는 태양과 붉은 석양에 물든 호수를 가로지르는 나무다리, 그 다리 위로 때마침 붉은 가사의 스님이 긴 그림자를 떨구며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그 자체로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많은 관광객들이 그 모습을 보고 싶어 일부러 해질녘에 맞춰 이곳을 찾는다.

하지만 아직 정오도 지나지 않은 아침 시간이니 석양을 보기 위해 저녁때까지 이곳에 머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보다는 오전 10시부터 시작된다는 인근 마하간다용 사원의 공양의식을 보러 발길을 돌린다.

마하무니 파고다에선 여자들이 불상 가까이에 다가 갈 수가 없다.

12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하고 있는 마하간다용 사원은 스님들이 모두 함께 공양하는 장엄한 대중공양 의식으로도 유명하다. 미얀마 스님들은 대부분 탁발을 하지만 요즘엔 공양이 사원으로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외부로 탁발 나가는 일이 줄었다고 한다. 사원 스님들에게 공양 올리기를 원하는 불자들은 미리 공양 날을 예약하는데 보통 몇 개월 씩 예약이 밀려있다.

1200여 명의 스님들이 도열해 각자의 발우를 내밀면 오늘 사원에 공양을 올린 불자들이 스님들의 발우에 직접 공양물을 넣는다. 그렇게 모든 스님들이 함께 공양을 받고 또 함께 앉아 공양하는 모습은 우리에겐 낯선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스님들의 공양이 끝날 무렵 오늘 공양을 올린 불자들이 모여 어른 스님으로부터 법문과 축언을 듣는다.

이 모든 과정을 외부인들도 참관할 수 있다. 낯선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계속 터지는데도 스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묵묵히 공양을 계속한다. 위빠사나 수행처로 유명한 이곳 사원의 스님들에겐 공양시간도 자신을 살피는 수행의 연장이리라. 이방인의 호기심이 스님들의 또 다른 수행에 방해가 된 것은 아닐까 송구한 마음에 짐짓 움츠러드는데 눈이 마주친 한 노스님이 살폿 미소를 지어준다. 그 눈빛 속엔 괜찮다, 미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가 선명하다. 감사한 마음에 미소로 화답한다. 그렇게 몇 차례의 눈인사를 주고받으며 훨씬 편해진 마음으로 문을 나선다. 역시 환한 미소는 세계 어느 곳에서나 통하는 만국 공통어다.

‘여자는 안돼’ 출입금지에 당혹

미얀마 스님들은 잘 웃는다. 아니, 미얀마 사람들은 누구나 잘 웃는다. 가끔 무턱대고 들어가 카메라를 들이밀며 셔터부터 누르고 보는 무례를 저질러도 불쾌해하기보다는 오히려 환한 미소를 보내준다. 뒤늦게 사과를 하면 오히려 포즈를 잡아주며 더 찍어도 된다고 격려까지 해준다. 그러다보니 시도 때도 없이 발을 들이고 카메라부터 들이미는 ‘나쁜 버릇’이 금방 몸에 배어버린다.

 
마하무니 파고다에선 여자들을 대신해서 불상에 금박을 붙여주는 대리인이 있다.

하지만 그런 미얀마에서도 절대 넘을 수 없는 선이 몇 군데 있다. 바로 ‘여자는 출입금지’ 즉 금녀의 선이다. 특히 만들레이성 남쪽에 위치한 마하무니 사원에서 맞닥뜨린 이 선은 제법 위협적으로 느껴질 정도다. 미얀마에서는 스님들의 가사와 여자의 옷이 스치면 스님들의 불심이 떨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길거리에서조차 여자들은 스님과 스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쓴다. 그런 믿음이 사원에서도 적용돼 일부 사원에서는 여자들이 불상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도록 경계선을 그어 놓는다.

특히 마하무니 사원은 양곤의 쉐다곤 파고다, 짜익티요의 황금바위와 함께 미얀마 3대 불교성지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사원인 까닭에 그 경계가 더욱 엄하다. 난간을 만들어 놓은 것만으로는 부족한지 지키는 사람들까지 있다. 마하무니 파고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불상에 금박을 붙이며 기도를 하는데 불상에 다가갈 수 없는 여자들을 위해 대신 금박을 붙여주는 대리인들도 있다.

남자들은 불상이 모셔져있는 불단 위에까지 올라가 금박을 붙이고 기도를 하는데 문 밖에서 발길을 멈춰야하는 여자들을 보니 부당한 차별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우리와는 다른 문화와 역사의 결과물이니 지금 당장 시시비비를 따질 일은 아니다. 그 문화와 예절을 존중하고 그들과의 공감을 형성하기 위해 좀 더 노력하는 것이 이방인의 자세라 생각하며 경계선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전설에 따르면 이 불상은 붓다와 관련이 깊다. 2500여 년 전 지금의 방글라데시 지역에 있던 딘야와디 왕국의 산다뚜라야 왕은 석가족의 왕자가 깨달음을 얻어 붓다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붓다의 가르침을 받길 간절히 바란다. 왕의 이러한 바람을 알게 된 붓다께서는 제자 500명과 함께 딘야와디 왕국을 방문해 일주일간 법을 펼치셨다. 붓다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산다뚜라야 왕은 감사의 뜻으로 황동부처상인 마하무니 불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전설은 전설일 뿐이라지만 그만큼 이 불상에 대한 미얀마 사람들의 믿음이 각별함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보다 믿을 만한 기록에 따르면 마하무니 사원의 불상은 1784년 꽁바웅 왕조의 보드퍼야 왕이 라카잉 지방을 침략해 빼앗아 온 것이다. 이 불상을 이운해 오기 위해 보드퍼야 왕은 수 천 명의 사람들을 동원했으며 이운하는 동안 쉰 네 번이나 캠프를 차려야 했다. 138개의 산을 넘고 수많은 길을 새로 만들며 모셔온 불상이 사가잉 언덕 어귀에 도착했을 때 보도퍼야 왕은 직접 그곳까지 마중을 나가 불상을 모셔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불상이 처음 자리를 잡은 곳은 아마라뿌라였으며 화재가 발생해 손상된 불상을 보수한 후 다시 만들레이로 옮겨 오늘날의 위치에 모셨다.

약탈해 온 불상에 지극히 귀의

미얀마 3대 불교 성지의 하나로 손꼽히는 마하무니 파고다의 불상. 라카잉 지방에서 이 불상을 빼앗은 보드퍼야 왕은 138개의 산을 넘어 불상을 이운해 왔다.

사실 마하무니 불상을 모시고자 했던 이는 보도퍼야 왕만이 아니었다. 앞서 바간 왕조 시대 아노라타 왕이 라카잉을 정복했을 때에도 이 불상을 가져오려했으나 실패했고 뒤를 이어 알라웅시투 왕이 배를 이용해 이운하려했으나 배가 침몰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높이 3.8미터, 무게 12톤이 넘는 거대한 불상을 이운한다는 것이 당시로서는 얼마나 벅차고 어려운 일이었을지 짐작케 한다.

역대의 왕들이 성공하지 못했던 마하무니 불상을 수도로 이운해온 보도퍼야 왕은 그런 점에서 분명 앞서의 다른 왕들과는 달랐다. 단순히 대단한 신심의 소유자였던 데 그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심을 과시하기 위해 자신이 쥐고 있던 권력을 휘두르는 데에도 거침이 없었다. 때론 잔인하기도 했다. 그것이 미얀마 왕조의 쇠락과 멸망을 불러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다. 

남수연 기자 namsy@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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