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한 변명] 한 여름의 탈출
[생명을 위한 변명] 한 여름의 탈출
  • 법보신문
  • 승인 2010.08.17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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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컨이 지배하는 도시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 흐르는 바람 찾는 지혜를

계획에 없던 지리산에 다녀왔다. 폭염은 지리산을 포위하고 있었다. 산장의 턱 밑까지 쫓아 온 더위는 폭포에 잠시 붙잡힌 것을 빼면 산 속이든 물가든 가리지 않고 똬리를 틀고 있었다. 일상의 호흡을 지배하는 열대의 빛은 밤낮을 구분하지 못한지 오래다. 집·사무실·공장·자동차는 그 어디든 에어컨을 빼놓으면 열대 섬으로 변하고 있다.

에어컨은 열대의 영토에 냉한대의 고립된 섬을 인위적으로 만들뿐 아니라 그 영토를 확장하여 냉한대와 열대의 고립을 고착시킨다. 이 사이 열대의 영토에 갇히거나 발이 묶인 생명은 살인적인 더위에 속수무책으로 죽어가고 있다.

산업자본은 노동자를 자동화의 노예로 만들어 기계의 부속품으로 다루고, 개 한 마리가 더위에 죽거나, 버드나무가 말라 죽는 것은 고까짓 것 정도로 치부하며 에어컨 빵빵한 자동차로 아주 계획적인 보신탕 피서를 가능한 한 멀리 떠난다. 그러다 진노한 태풍과 홍수를 만나면 떼죽음을 면치 못한다. 흔한 한여름의 비극이며 산업문명의 영토에 묶인 우리들의 자화상이다.

이 여름에는 누구도 활활 타는 목숨의 주인공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어찌하면 좋을까. 돌파구는 도시로부터의 탈출이다. 이 탈출의 끝은 에어컨이 없어도 시원한 곳이어야 하며, 따라서 당장은 무계획적이고 무질서한 혼돈 속으로의 탈출이어야 한다. 기존의 방식과 사람, 기계적이고 반복된 삶,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고리를 완전히 끊어야 하며, 수직적 위계질서를 단호히 거부하고 사통팔달의 자유로운 접속이 가능한 탈출이어야 한다.

살인을 피해가는 야무진 탈출이기에 새로운 접속은 때로는 순간이동으로 때로는 아주 느리게 뚫고 부딪치고 돌아 흐르며 맺고 풀어가는 엄중한 인연법에 따른다. 이 탈출과 접속은 새로운 생성의 길이고, 오아시스를 찾아 나선 유목이며 접화군생(接化群生)이다. 모든 생명은 접속하는 순간 서로 감응하며 변화함으로써 새로운 관계가 생성된다. 접화군생은 시공 안 밖의 이념과 무의식의 세계, 생물과 무생물을 뛰어넘는 새로운 관계 맺기다.

따라서 욕망과 무의식을 지배해 온 일사불란한 생존의 법칙과 윤리적인 억압에 대한 죽은 기억을 모조리 폐기해야 한다. 일체의 집착을 산산이 부숴버려야 한다. 탈출 도상의 인연도 예외일 수 없다. 허허로움만 가득해야 한다. 그래야 멈춘 듯 꿈틀거리며 뚫고 흘러가 만나는 그 자리에서 생사의 경계, 그 너머까지 접속이 가능하다. 입체적인 공간에 본디 아무 것도 없는 무아, 즉 텅 빈 바람과의 접속이 이루어진 그 지점에 한 떨기 연꽃 문수 스님이 피고 지는 것이다.

새로운 문명으로의 접속코드인 접화군생의 방점은 존재와의 만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생성에 있다. 에어컨이 지배하는 공간에서 윤회의 고리를 끊은 차가운 독존과의 만남이 접화군생이 아니라 에어컨이 더는 지배할 수 없는 열대의 영토를 통째로 해방시키기 위해 자신을 내 던져 바람이 되고 흐르는 강이 되는 것이 접화군생이다. 그러나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은 푹푹 찌는 열대의 영토. 며칠 전, ‘또자’라는 개가 더위로 죽었다. 삼가 명복을 빈다. 나무관세음보살. 

정호 광주전남불교환경연대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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