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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함게 떠난 인도 순례] ⑥ 파드마삼바바의 성지를 찾아서 (下)

기자명 법보신문

시킴 사람들, 사진 속 포탈라궁에 슬퍼하다

 
공원의 파드마삼바바 좌상을 보고 내려 오는 길. ‘룽다’가 길 양편에 가지런하게 걸려 있다.

“와우!”
드디어 구루린포체인 파드마삼바바의 존상이 모셔져 있는 남시킴 ‘삼두룹제’에 도착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파드마삼바바를 주불로 한 공원. 차를 공원 입구에 세우고 입장료를 낸 다음 오색의 ‘룽다’가 만국기처럼 걸려있고 대나무에 마치 깃발처럼 묶여 가로수 같다는 느낌을 들게 하는 ‘타쵸’(Tharcho)가 늘어서 있는 길을 걸어 올라가다가 한 구비를 돌고나니 파드마삼바바가 반긴다. 비록 존상이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연스레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친견하는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중학교 수학여행 때 보았던 법주사의 미륵대불이나 고등학교 때 참배했던 석굴암의 본존불 그리고, 동화사의 통일대불이 찰나에 머리를 스친다. 시킴에 이처럼 커다란 불상이 산 중턱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자체가 신이하고 장엄하다. 구루린포체의 위없는 가르침을 조금이나마 알고 있기에 좌상을 보는 순간 할 말을 잃어 그냥 보고 또 보았다. 그 크기로 보나 정성을 다해 조성한 존상의 얼굴을 보나 시킴 사람들의 불심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이 된다. 그 정성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이된 듯하여 작은 전율이 인다.

2층 구조물 위에 모신 구루린포체의 좌상은 두 마리의 흰 사자가 법륜을 사이에 두고 좌대
를 떠받치고 있는 모양새다. 계단을 오르다보면 커다란 연꽃 좌대가 보인다. 연꽃 좌대에는 이곳을 참배했을 불자들이 공양 올린 흰색 ‘카다’(Kada, 꽃을 대신해서 공경이나 축복의 의미로 사용되는 목도리 모양의 천)가 촘촘히 걸려있다. 계단 옆에는 ‘구루 파드마삼바바’라는 이름을 적은 표지석이 벽에 조성돼 있다.

연꽃좌대에 앉아 계시는 존상의 얼굴은 매우 이국적이다. 내 마음을 훤히 알고 있는 것처럼 뚫어지게 관(觀)하고 있는 커다란 눈과 오똑한 코 그리고, 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은 수행자이기 보다는 ‘초월적 존재감’을 전해준다. 오른손에 든 금강저만이 내 눈에 익은 것이고 왼손에는 그 무엇이든 ‘뚝딱’하고 내 놓을 것 같은 뚜껑 달린 그릇이 있고 왼쪽 어깨엔 해골과 금강저로 장식된 지팡이가 기대고 있다. 이런 모습은 구루린포체를 표현한 탕카(밀교 불화)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형상이다. 좌대 뒤편에 있는 계단을 내려가면 아직 완성이 덜 되었지만 큰 공간의 법당이 있고 조촐하게 형식을 갖춘 불단에는 구루린포체의 상이 있다. 그 주변엔 불자들이 소원을 빌면서 올린 버터 등이 포근하게 타오르고 있다.
“올라가서 참배를 하세.”

산 중턱서 굽어보는 구루린포체

덕킁린포체를 따라 일행은 좌대 앞으로 계단을 오른 후에 각자 삼배의 예를 올렸다. 부처님이나 보살님들 그리고, 스님들께 삼배의 예를 갖추었지만 구루린포체께 예를 올리는 것은 무척 낯설다. 그 느낌을 굳이 표현한다면 처음 뵙는 친구의 보모님에게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비슷하리라.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구루린포체가 중생들에게 미친 법력이 얼마나 크고 드넓었던가를 되새기게 하니 마음이 저절로 숙연해진다. 탑과 도량, 불상이 그냥 상(相)에 머물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눈과 마음으로 확인하는 방편이라는 데 생각이 이른다.

“이곳은 구루린포체와 어떤 인연이 있는 성지인지요?”
삼배를 들이고 나서 궁금증이 생겨 린포체께 여쭈었다.
“이곳은 전혀 관련이 없어, 단지 남시킴 정부에서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려고 조성했다네.”

시킴에서 남시킴은 면적이 제일 작은 곳이다. 구루린포체와 관련된 유적이나 역사가 오래된 사찰도 거의 없다. 인연이 별로 없으니 구루린포체의 고장이라고 할 수 있는 이곳에 다른 지역보다 큰 파드마삼바바의 좌상을 산중턱에 조성한 것이다. 구루린포체와 시킴의 인연이 얼마나 크고 지중한가를 다시 한 번 입증해 주는 대목이다.

연꽃 좌대 앞에 선 순례 도반들.

“같이 사진 찍어요.”
시킴 출신인 ‘소남’이 아이들의 사진을 찍다가 우리에게 같이 찍기를 권한다. 그녀는 비록 호주인과 결혼해 호주에서 살고 있지만 거의 거르지 않고 매년 아이들을 데리고 시킴을 방문한다. 자신의 세 딸들이 아직 어리기는 하지만 자신의 고향인 시킴에 대한 모든 것을 체험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좋은 점들을 일깨우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특히 막내딸 ‘아샤라’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시킴을 방문한 터라 사찰을 참배할 때마다 막내딸을 위한 기도에 열중했다. 그녀는 매번 시킴에 올 때마다 아이들에게 시킴의 전통풍습과 문화를 보여주려 애썼다. 순례지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기고 아이들이 잊지 않도록 사진을 찍는 모습이 한국의 부모들을 떠올리게 한다. 아이를 둔 두 나라 부모들의 공통점이리라. 공통점은 우연한 기회에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소남’의 품에 매달려 있는 ‘아샤라’의 푸르스름한 엉덩이, 그것은 한국인들의 ‘몽고반점’이었다.
“비슷한데. 같은 혈통이라더니 정말 그렇네.”

작년 시드니에서 덕킁린포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티베트와 한국, 몽골 그리고, 시킴이 같은 혈통의 민족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히말라야 비탈에 살고 있는 시킴 사람들까지 ‘몽골리안’이라는 말씀에 대해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확실한 ‘증거’를 보고 나니 시킴 사람들이 왠지 더 친근하게 다가왔다. 무릇 수행자라 함은 일체의 장벽과 ‘끌림’에서도 자유로워야 하거늘 같은 동족을 상징하는 ‘몽고반점’에 잠깐 마음이 흔들리다니, 그래도 마음은 미소를 짓고 있다. 머나먼 이국땅의 사람들에게 형제애를, 동질감을 느끼고 있기에 경계의 마음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진을 찍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2000m 고지에 앞이 탁 트인 산림은 겹겹이 펼쳐져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좌상 앞에는 제법 아담한 공원을 꾸며 놓았는데 아직은 미완성의 모습이라 매끄럽지 않다. 그 뒤편 언덕엔 ‘룽다’(Rungda)가 빼곡하게 걸려 있는 것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동자승을 보았는데 그 동자승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하다. 색다른 옷차림의 외국인을 처음 보기라도 하듯 걸어가면서도 나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시킴에 와서 티 없이 맑게 웃는 얼굴의 아이들을 수 없이 많이 보았다.

그럴 때마다 잊고 있었던 ‘어린시절’이 자꾸 떠올랐다. 그들의 맑은 얼굴은 청정한 환경의 영향이 클 것이다. 물질문명이 발달하지 않은 나라이고 먹을 것이 부족하지 않아 굶주림에 지치지 않았기 때문일 터, 아이들의 웃음은 세상에서 가장 맑고 순수해 보인다.

“일체 악(惡)을 짓지 말 것이며 일체의 선(善)을 받들어 행할 것이며 스스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니라.”

공원을 두루 살피다가 아쉬움을 뒤로한 채 발길을 돌려 다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몇 년 전 석굴암을 다녀올 때도 오늘처럼 아쉬웠다. 본존불 앞에서 참배를 드리고 잠시 앉아 있다가 주변을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발길이 어찌나 무거웠던지 다음에 기회가 되어 다시 간다면 좀 더 긴 시간을 보내고 오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처음으로 내 눈으로 직접 구루린포체의 얼굴을 보고 나서 마음 한 편에는 나도 모르게 작은 파장들이 일기 시작했다. 처음 본 그 느낌에 발걸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차를 타고 숙소로 가는 길에 태양은 이미 서산 저편으로 기울고 있었다. 석양을 지나 어둠을 뚫고 1시간가량 달렸을까, 이젠 서시킴 ‘펠링’(Pelling)이다.

“짐정리하고 위층으로 올라오세요.”
우리가 도착한 펠링의 숙소는 모텔이었다. 린포체는 절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일렀으나 소남이 자신의 아이들 때문에 그곳에 숙소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1층과 2층은 객실이 있고 3층과 4층은 주인집이었는데 거실이 제법 큼직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으며 바로 옆방은 시킴의 여염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부처님의 방사’이다. 소남이 방을 2층에 배정하면서 나에게 3층으로 올라오라고 하였다. 사흘은 머물러야 했기 때문에 우선 짐을 정리하고 나서 3층으로 올라가 거실에 들렀다. 린포체는 이미 자리를 잡고 앉아계셨고 우리 일행은 양옆으로 놓인 의자에 앉았다. 잠깐 앉아서 숨을 돌리고 있자니 주인집 식구들이 전통방식으로 만든 과자와 차를 우리가 앉은 자리 앞의 개인상에 올려놓았다.

어느 장소를 가나 시킴 사람들은 그들의 전통방식으로 만든 상을 한 사람 앞에 하나씩 놓았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한과와 비슷한 전통 과자와 차를 올렸다. 그 상은 조그마한 것인데 수공으로 만든 것으로, 동물이나 연꽃과 같은 문양이 옆면에 소박하게 조각되어 있었고 채색이 아름다운 것도 있고 색깔을 입히지 않은 것도 제법 맛깔스러웠다. 손님 접대용 전통과자는 우리나라 명절에 먹는 유과와 비슷한데 생긴 모양은 꽃모양이 대부분이었다.

“포탈라궁은 감옥일세”

 
파드마삼바바의 금강저를 든 수인.

다과를 모든 상에 올려놓자 주인집 식구들이 거실로 들어왔다. 주인 내외는 양손에 공양물을 들고 들어와서 린포체께 공양을 올렸고 식구들이 함께 삼배의 예를 갖추었다. 그리고 한명씩 린포체로부터 축복을 받고 물러나 앉았으며 린포체가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축복을 받기 위해 온 동네 사람들이 여럿 있었다. 간단하게 소남이 린포체와 일행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모텔의 여주인은 강톡에서 머물렀던 숙소 안주인의 언니였다.
“여기가 감옥일세.”

담소를 나누다가 저녁 공양을 하러 다른 일행들은 린포체와 나를 남기고 모두 4층 식당으로 올라갔다. 그때 린포체가 자리에서 일어나 벽에 걸린 티베트 라사에 있는 포탈라궁 그림을 보면서 읊조리듯 말을 던졌다.
“어디가요?”
“바로 여기.”

린포체는 손가락으로 포탈라궁 그림에서 한 부분을 가리켰다. 포탈라궁은 알다시피 라사에 있는 티베트의 왕궁으로, 달라이라마께서 인도로 망명을 떠나기 전까지 주석하셨던 곳이다. 그곳에 대해 갑자기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까? 내가 알기로 덕킁린포체는 티베트에 있을 때 투옥 생활을 했다고 한다. ‘혹시 그 곳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하고 짐작했지만 직접 묻지는 않았다. 공양이 올 때까지 한참 동안 그 그림을 보시면서 깊이 생각에 잠긴 모습이 다른 말을 꺼낼만한 분위기도 아니었다.

린포체와 함께 다니는 동안 가끔 깊은 생각에 잠겨 뭔가를 생각을 할 때 모습은 언제나 ‘슬픔’이 느껴졌다. 린포체로서 일정 정도의 수행력과 지혜를 증득한 분이 과연 슬픔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 아직도 갈 길이 먼 나의 시각으로 볼 때는 확실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쩌면 그러한 모습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감정에 대해 확연하고 미세하게 느끼기 때문이 아닐까하고 스스로 결론을 내리곤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고국이 멸망하고 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떠한 마음이 드셨을까? 린포체의 모습이 석가모니 부처님과 하나로 겹치면서 마음에 의문으로 남는다.

린포체와 나는 거실에서 공양을 들었다. 시킴에서는 어디를 가든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출가자는 부처님 방이나 다른 공간에서 공양을 할 수 있게 별도로 자리를 마련한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공손히 공양을 대접한다.

서시킴에서의 평온한 첫날밤이 지나고 있다. 공양을 마치고 나자 린포체의 슬픈 얼굴이 다시 떠오른다. 분명 ‘슬픔’이다. 나라를 잃은 티베트 동족에 대한 자비이자 연민이리라. 언제쯤 그 슬픔이 소멸될 수 있을까? 달라이라마와 덕킁린포체의 지혜 그리고, 티베트 민족의 생명을 사랑하는 맑은 마음이 영원하다면 그들은 그 언젠가는 다시 포탈라궁의 품으로 돌아갈 날이 올 것이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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