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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전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초발심을 낸 그 자리가 바로 성불의 자리

절은 부처님께서 도(道)를 이루신 후에 도를 펴신 장소입니다. 따라서 선도후사(先道後寺)입니다. 도가 먼저고 그 다음이 절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까닭에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기 전에는 절이 없었습니다. 인도의 죽림정사나 기원정사도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이후에 생겼습니다.

절에는 사격이 있습니다. 충남 보령 성주사지의 낭혜백월국사 비문에는 도대행사대성(道大行寺大成)이란 구절이 있습니다. 도를 크게 행하니 절이 크게 성했다는 말입니다. 달리 해석해 보면 사격이 가장 높은 절은 큰 도인이 머무시는 절이라는 뜻이 될 것입니다.

물론 도인이 주석한다하더라도 다 같지는 않습니다. 도만 있고 절이 없는 도인도 있고, 도도 있고 절도 있는 선지식도 있습니다. 그런데 종종 도는 작은데 절이 큰 경우도 있습니다. 바람직한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 도는 큰데 절이 작은 경우가 있습니다. 절이 작은 것은 허물이 아닙니다. 도가 작은 것이 부끄러운 일이지요. 절을 키우려고 하는 것보다는 도를 닦아서 자꾸 도를 빛내야 참다운 불교가 됩니다. 이것이 또한 불교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오늘 중건 낙성 법회를 하는 수미정사는 도도 크고 절도 큰 그런 절은 아닙니다. 그러나 도를 먼저 생각하고 불사를 뒤로 한 그런 아름다운 전통을 지켜가고 있는 절임에는 틀림없습니다. 특히 주지 스님이 화엄 종풍을 펴고 계신 도량입니다. 그래서 오늘 한국 화엄 신앙에 대해 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경전 수지독송 마음 낸 순간 성불

한국불교의 의례와 수행에서 화엄 종풍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불상을 모실 때도, 가람배치를 할 때도 화엄의 전통은 면면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신행에 있어 화엄신앙의 영향은 매우 큽니다. 한국의 불자들이라면 「화엄경 약찬게(華嚴經略纂偈)」와 의상대사 「법성게(法性偈)」를 수시로 독송합니다. 또 조금 깊이 들어간 분들은 「보현행원품(普賢行願品)」을 수시로 독송하는데 이 세 가지를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화엄의례입니다. 「화엄경 약찬게」는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성립됐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중국 화엄 문헌을 다 뒤져봐도 「약찬게」는 없습니다. 「약찬게」는 7언송 110구입니다. 글자 수는 770자입니다. 「법성게」는 7언 30구, 글자는 210자입니다.

이 두 게송을 합하면 980자입니다. 이들 게송이 가르치는 중심 내용은 해인삼매(海印三昧)입니다. 약찬게는 ‘근본화엄(根本華嚴) 전법륜(轉法輪) 해인삼매(海印三昧) 세력고(勢力故)’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기서 근본화엄은 비로자나불의 상설법(常設法)을 말합니다. 비로자나불은 중생이 알든 모르든 항상 설법을 하십니다. 그게 근본화엄 전법륜입니다. 설법에는 오종설법(五種說法)이 있는데 불설(佛說), 보살설(菩薩說), 찰설(刹說), 중생설(衆生說), 삼세일체설(三世一切說)이 있습니다. 찰이라는 것은 모든 불찰을 말합니다. 즉 국토, 하늘땅, 바람, 온갖 국토가 설법하는 것이고 삼세일체설은 과거·현재·미래가 항상 설법을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비로자나 상설법이고 근본화엄 전법륜입니다.

이런 『화엄경』을 외우고 읽고 받들어 가지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입니다. 초발심이라는 것은 『화엄경』을 펴고 읽는 순간입니다. 그 순간 바로 성불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또한 해인삼매입니다. 또 해인삼매세력으로 모든 일이 펼쳐집니다. 이것이 화엄신앙입니다. 그러면 해인삼매세력으로 무엇이 어떻게 펼쳐지느냐. 삼종세간(三種世間)이 전부 해인삼매로 나타납니다. 모든 것이 이미 갖춰져 있습니다.

다른 공부를 하지 않아도 「약찬게」와 「법성게」만 잘 수지 독송하면 앉은 자리에서 성불할 수 있습니다. 「약찬게」 7언 110구, 「법성게」 7언 30구 210자, 합해서 7언 140구 980자. 그것만 달달 외우면 우리는 전부 성불한 것입니다. 내가 성불했는지 못했는지 아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성불했습니다. 내가 모를 뿐입니다. 그래서 「약찬게」에서 ‘풍송차경신수지(諷誦此經信受持)하면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한 것입니다. 경전을 몸에 지녀 읽고 외우겠다는 마음 낸 순간 이미 성불한 것입니다.

화엄신앙에서는 「보현행원품」을 수시로 독송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현행원품」은 비로자나불이 항상 실행하는 것입니다. 성불 못한 이가 성불을 위해 닦는 것이 아니라 성불한 이의 거룩한 행입니다. 화엄의 일승불교(一乘佛敎)는 성불한 부처님의 공덕 작업입니다. 그것이 화엄삼매입니다.

『화엄경』에서 화엄(華嚴)의 화(華)자는 비유입니다. 꽃은 열매를 맺고 행은 결과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꽃과 행은 같습니다. 꽃이 열매를 맺듯이 실행을 하면 큰 결과의 공덕이 이뤄집니다. 그래서 이를 엄(嚴)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화엄입니다. 그러니까 해인삼매를 증득해서 화엄삼매를 실천하는 것이 일승불교의 가풍입니다. 따라서 누구나 비로자나불의 거룩한 행인 보현행원으로 돌아가게 돼 있습니다.

화엄은 독송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독송하는 순간에 이미 성불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진정진심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참으로 믿어야 합니다. 참선하고, 108배를 하고, 3000배를 해도 그것은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진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수행이 아니라 운동입니다. 그래야 바른 수행이 됩니다.

의상 대사에 따르면 법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티끌 티끌이 법계입니다. 티끌 티끌이 그냥 본성이요 마음이며 우주의 근원입니다. 티끌 티끌이 궁극적인 진리 그 자체입니다. 그것을 법계라고 합니다. 이곳을 떠나 저곳으로 가는 것은 삼승불교입니다. 소승불교라는 말입니다. 이곳을 떠나 깨달음이 따로 있고 나를 떠나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일승불교에서는 떠나지 않고 그 장소에서 바로 되는 것입니다. 티끌 티끌이 다 법계요 장소 장소가 다 실상입니다. 이것이 「법성게」의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입니다. 그러니까 삼승불교에서는 중생계를 떠나서 부처님의 세계가 있는 것처럼 방편으로 가르쳤지만 일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세계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중중무진으로 티끌 티끌이 다 부처님의 세계이며 법계인 것입니다. 이것이 화엄신앙입니다. 마음 마음이 모두 불심이요. 티끌 티끌이 모두 불국이라고 화엄 조사들은 항상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음을 잘 쓰는 것이 바로 수행

이런 까닭에 선인후과(先因後果), 즉 인연 이후에 결과가 있는 것이 아니라 인과는 동시에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발심이 곧 성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일승불교입니다. 따라서 법계장엄으로 화엄삼매에 들어 온갖 보현행만 실행하면 됩니다. 이것이 해인삼매와 화엄삼매입니다. 화엄은 인과가 동시에 있기 때문에 인연이 곧 법입니다. 인연 떠나 법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법계입니다.

규봉 스님은 “원인이 결과에 사무쳐 있고 결과가 원인에 사무쳐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인연이 곧 법입니다. 그러면 인연이 무엇일까요. 절 한번 하는 것이 인연입니다. 이것이 성불입니다. 이것이 화엄신앙입니다. 독송 한번 하는 것이 법이고 성불입니다. 이것이 한국불교입니다. 그러니까 아미타불 부르면 그게 극락입니다. 이것이 신라화엄입니다. 해인삼매를 바로 그 현장에서 이루는 것, 이것이 의상 스님의 성기(性起) 가풍입니다.

의상 스님은 「법성게」 외에 남긴 게송이 흔치 않은데 『법계도기총수록(法界圖記叢髓錄)』에 오언사구 게송이 담겨 있습니다.
‘제연근본아(諸緣根本我) 일체법원심(一切法源心) 어언대요종(語言大要宗) 진실선지식(眞實善知識)’
모든 인연이 바로 나입니다. 물을 마시면 물하고 인연 맺고 책을 보면 책하고 인연을 맺는데 그 인연 인연이 모두 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체가 법의 근본 마음입니다. 말씀 말씀은 중요하게 통하는 길이며 진실이 선지식입니다. 바람도 진실하기 때문에 선지식이고 물도 진실하기 때문에 선지식입니다. 생로병사도 그 자체로 선지식입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당부하시기를 너희들은 “당선용심(當線用心)하라”, 즉 마땅히 마음을 잘 써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이란 마음을 잘 쓰는 것입니다. 마음을 잘 쓰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진찰찰(塵塵刹刹)이 일진법계(一眞法界)입니다. 온 세상이 모두 하나의 참된 법계뿐이라는 뜻입니다. 깊은 신심으로 늘 해인삼매에 들어 공덕을 지어나가는 보현행자가 되는 것이 마음을 잘 쓰는 길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정리=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이 법문은 전 중앙승가대 총장 종범 스님이 8월 17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수미정사(주지 해주) 중창 낙성법회에서 한 법문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종범 스님은

통도사에서 벽안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통도사 승가대학 강주(1971~1976)를 역임했다. 1980년 3월 중앙승가대 강사를 시작으로 1990년부터 교수로 재직했으며 2000년 제3대 총장에 취임한 이후 8년 간 중앙승가대학교의 교수와 학인들을 이끌었다. 스님은 ‘교수들의 교수’라고 불릴 만큼 불교에 대한 깊은 조예로 불자들은 물론 학계 안팎의 존경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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