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우 스님의 계율 칼럼] 스님을 찾아온 저승차사
[철우 스님의 계율 칼럼] 스님을 찾아온 저승차사
  • 법보신문
  • 승인 2010.08.25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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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 넘긴 스님의 ‘죽음 공포’ 보면서
게으름 피우지 말라던 옛 스승 떠올라

‘많이 걸으라’는 의사의 권유로 산길을 종종 걷는다. 그러던 어느 날 사람의 발길을 피해 살겠다고 이리저리 날고뛰는 아직은 덜 자란 곤충들을 보다가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가 문득 떠올랐다.

여러분은 꿈이나 생시에 저승차사를 본적이 있는가? 이야기는 이렇다. 면식이 있는 어느 스님이 꿈을 꾸었는데, 저승차사가 스님들 데리러 왔더란다. 차사는 막무가내로 가자고 했고, 스님도 막무가내로 갈수가 없다고 했다. “짓다만 절도 있고 나이 어린 도제도 더 도와주어야 하고, 선뜻 따라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따라가지 못한다”고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다가 잠을 깬 스님은 도무지 남은 잠을 마저 잘 수가 없었다. 스님은 평소 뜻이 잘 맞는 도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막무가내 도움을 청했다. 잠이 덜 깬 도반은 잠결에 “그럼 외국으로 몸을 일단 피하는 게 좋겠다”는 기가 막힌 대답을 주었다.

수화기를 내려놓은 이 스님은 여권과 약간의 돈을 챙겨 민첩한 상좌 하나를 데리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후 우리 보다 경제력이 뒤떨어진 후진국 어느 국가에서 웃지 못 할 일들을 겪으며 1년이라는 세월을 보내고 ‘칠순을 넘긴 늙은이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고, 죽을 바엔 고향에서…’하는 생각으로 얼마 전 귀국을 했다고 한다. 그 뒤로 이 스님과 관련해 이렇다 할 소식이 들리지 않는 것을 보면 아직 차사가 데리고 가지 않았거나, 지난 번 차사가 잘못 찾아 온 것인지도 모른다.

하찮은 곤충들도 발밑에 깔려 죽지 않으려고 사람이 지나면 이리 튀고 저리 튀는 데, 스님도 중생이라 크게 깨달은 도가 없으면, 차사가 온다는 소리에 당황하고 두렵기도 할 것이다. 결코 남에 일이 아니다. 만약 부지불식간에 차사가 찾아온다면 따끈한 중국차 한잔 우려서 앞에 놓고 흥정을 해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못 간다고 항변을 해야 할 것인가?

스물도 되기 전 강원에서 학인으로 있을 때, 혼해 스님께서 논강을 하시고 나면, 나를 앉혀놓고 “지금 죽는다면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으시면서 “중이 공부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면 그런 어려운 일이 일어나면 꼼짝 없이 저승차사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평소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면 저승차사에게 당당하게 너의 뜻을 말할 수 있다”고 하시던 옛 스승이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어느 사회학 박사의 말씀이 “우리나라는 지금 경제대국이 되었지만 하고 사는 모양은 후진국도 이런 후진국일수가 없으니, 빨리 고치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했다. 이제 늦었을망정 살아온 길을 되돌아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산중에 사는 우리는 생사를 모르고 면하는 방법이 있어도 알려고 애쓰지 않으며 그것을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야유와 해방을 서슴없이 한다면 우리는 정말로 부끄러운 사람들이 되고 말 것이다.

옛 스님들은 이러한 잘못을 고치려고 벼랑에 굴을 파고 다리를 놓아 출입하되 먹을 것이 오를 때만 사다리를 여는 폐관을 하며 수행하여 생사를 면하는 공부를 했다. 아마도 어린 제자를 앞에 놓고 생사를 면하는 일을 설명하시던 말씀이나, 용맹정진 때 내리치시던 선배들의 장군죽비 소리가 바로 이런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철우 스님 율장연구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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