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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기도로 ‘나’ 맑힐 때 마음도 진실해 진다

오늘은 49일간 지내온 영가천도기도를 회향하는 날입니다. 우란분재 또는 백중으로 불리는 오늘은 스스로의 허물을 참회하고 돌아가신 조상님의 넋을 기리며 천도하는 날입니다. 또 선방이나 강원에서 석 달 동안 정진했던 스님들이 안거를 마치고 만행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천지불능장구재(天地不能長久在)
황차소생천지간(況且所生天地間)
당당불수음양자(堂堂不受陰陽者)
역겁다생자재신(歷劫多生自在身)
하늘과 땅도 능히 영원하지 못하거늘
하물며 천지 안에 생긴 사람이겠는가.
당당히 생사윤회를 받지 않은 자라야
억겁 다생에 자유자재한 몸이니라.

오늘 법석은 백중에 맞춰 영가천도에 대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송은 모든 영가들의 색신과 법신을 두고 한 말입니다. 이 게송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리들의 육신은 무상한 것입니다. 우주 허공마저도 반드시 없어지고 마는데 하물며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로 만들어진 사람의 몸이 영원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육신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은 사대로 이루어집니다. 사대는 모든 생명을 구성하는 원소인 것입니다.

땅을 의미하는 지(地)는 몸을 지탱하는 뼈와 살을 말하며, 만물을 소생시키는 원천입니다. 물을 뜻하는 수(水)는 피와 수분을 의미하며, 만물을 성장시키는 물과 습기입니다. 불을 의미하는 화(火)는 곡기에 의한 몸의 기운과 체온이며, 만물을 성숙시키는 힘입니다. 바람을 뜻하는 풍(風)은 호흡 등 만물을 변화시키는 역동성을 말합니다. 육신은 바로 지수화풍, 즉 흙과 물과 불과 바람 네 가지 인연으로 화합해 이루어진 것으로 인연이 다하면 사라지는 것이 이치입니다.

그런데 사대가 지수화풍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 때 우리는 어디에 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몸이 부모님으로 인해 생겨났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부모님이 태어나기 전에 ‘나’라는 존재는 어디에 있었겠습니까? 또 우리의 육신이 소멸된 후 수 백년이 지나 먼지 한 톨도 남지 않게 되면 나라는 존재는 과연 어디에 있겠습니까?

제가 출가를 한 것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섭니다. 이러한 의문은 출가를 하기 이전부터 늘 제게서 떠나지 않는 물음이었습니다.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해답을 찾기 위해 책도 보고 많은 분들과 대화도 나눠봤지만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것이 출가의 계기가 됐습니다.

기도는 스스로 덕 쌓는 노력

선운사에서 계를 받고 공부를 위해 찾아간 곳은 강원이나 대학이 아닌 선방이었습니다. 돌이켜보면 건방진 생각이었지만 스스로 공부를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어떠한 큰 스님의 법문이나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내 것이 아니라면 알음알이에 매달려 사고가 흐려질 것이란 생각이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계를 받자마자 선방으로 향했습니다. 그렇지만 스승이 없는 공부는 한계에 부딪쳤고, 한 발작만 나아가면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후에 경전과 큰 스님의 법문을 보며 크게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흔히 오고 감은 업에 의해 결정된다고 합니다. 중생은 필연적으로 업을 짓게 되고, 그 업에 따라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도, 천도를 윤회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소멸되더라도 업식은 소멸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몸이 다하면 업식은 육도윤회의 종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업식도 소멸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사를 여읠 수 있는 해탈의 공부가 바로 업식을 소멸시키는 과정입니다. 경전이나 어록에는 이러한 방법이 체계적으로 서술돼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방법도 끊임없는 정진과 노력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앞서 밝힌 것처럼 저 역시 공부를 지어나가는데 있어 한 단계만 내디디면 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았습니다. 공부가 부족했을 수도, 복덕이 부족해서 일수도 있습니다. 참당암에 선방을 연 것도 이 즈음입니다. 스스로의 경책으로 삼고, 부족한 복덕도 짓고자 문을 연 것입니다. 공부하는 스님들을 위한 도량을 만드는 것은 큰 복덕일뿐더러 사실 이 공덕으로 후에 공부를 지어나갈 때 마지막 경계를 뛰어 넘는 힘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꼬박 12년을 수좌 스님들과 함께 수행정진하며 살았습니다. 선운사 주지로 선출돼 이곳에 와서도 복덕을 짓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돌아가신 조상님의 극락왕생을 위해 기도하고 축원하며 발원하고자 이곳에 모였습니다. 이러한 훈습에 의한 업은 반드시 존재합니다. 모든 과보는 인과 연을 지은 사람에 의해 끊을 수 있습니다. 지은대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지만 여러분의 진실된 기도의 힘으로 조상님은 극락왕생할 수 있습니다.

흔히 “조상이 잘돼야 내가 잘 된다”, “조상의 은덕이 있어야 후손이 잘 된다”고 말합니다. 당연한 말입니다. 그렇지만 조상의 은덕이 후손에게 오려면 스스로 덕을 쌓아 그런 은덕이 자신에게 올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은덕은 결코 내가 원한다고 오는 게 아닙니다. 주는 대상이 부처님이든 보살님이든 조상님이든 줄 수 있고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못된 생각, 못된 행동을 하면 복은 내게서 멀어지는 법입니다.

모든 생명의 소중함 인식해야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기도는 본인 스스로에게 향해야 합니다. 기도의 대상은 물론 부처님이거나 보살님, 조상님이겠지만 결국 공덕의 대상인 내가 청정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정말로 열심히 기도하는 사람에게 ‘저 사람을 끌어내려야지’, ‘저 사람을 속여야지’ 하는 마음은 있을 수 없습니다. 진실된 마음은 자신도 모르게 기도를 통해 발현됩니다.

그렇게 되면 주위의 모든 선한 기운들이 인연이 돼 잘 될 수밖에 없는 인연관계로 이어지게 됩니다. 때문에 내 조상, 내 가족만큼이나 다른 사람은 물론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법석에 모인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러한 것을 배우기 위함입니다.

이 시간은 조상의 천도를 기원하는 자리를 넘어 모든 생명을 축원하고 앞으로 어떠한 마음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생각하는 시간이 돼야 합니다. 선운사에 변화의 바람이 분다고 합니다. 그 변화의 출발은 모든 중생이 부처님의 법안에서 행복하고 안락한, 그러면서도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들어 가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러한 변화는 기도와 수행을 통해 사부대중이 하나가 돼 하나씩 이뤄가고 있습니다.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수많은 대중의 호응과 동참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그 어떤 진리보다 수승하다고 단언합니다. 다만 이러한 부처님의 법을 어떻게 현실에 적용할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불법이 피어날 때 모두가 행복하고 잘사는 나라, 바로 불국정토가 이 땅에 실현됩니다.

이를 위한 최우선이 바로 기도와 수행입니다. 모든 기도는 스스로를 향하게 해야 한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 불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금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또 어떻게 하는 것이 조상을 위하고, 생명을 위하고 궁극에는 나를 위하는 것인지 되새겨 보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무더운 날씨에도 49일간 기도에 동참한 공덕으로 좋은 인연의 결실 맺기를 바랍니다.

정리=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이 법문은 조계종 24교구본사 선운사 주지 법만 스님이 8월 24일 백중 회향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법만 스님은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 1982년 10월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하고, 1986년 9월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수지했다. 2007년 4월 선운사 제15대 주지로 취임했으며 현재 고창종합복지관 운영위원장, 미당 서정주 문학관 이사장, 백파사상연구소 이사장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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