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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포체와 함께 떠난 인도 순례] 7. 닝마파 도량서 친견한 ‘캉첸중가’

기자명 법보신문

만년설산, 세속의 탐욕이 덧없음을 설하다

 
‘눈 덮힌 다섯 개의 커다란 보물’이라는 뜻의 캉첸중가. 산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지만 인간의 바람이 담긴 타르초는 하루가 다르게 낡아간다.

잠이 들 때까지 그렇게 피곤하게 느끼지도 않았는데 오랜 시간 비포장 길을 달렸기 때문일까, 아침에 눈을 뜨니 시계 바늘이 7시를 훨씬 넘은 시간을 가리키고 있었다. 2000m 고지가 넘는 곳이라 그런지 코끝에 스미는 찬 기운에 이불을 더욱 끌어당겼다. 어제 밤 창문을 가리지 않고 잠을 청한 까닭에 고개를 돌리니 곧바로 창밖을 볼 수 있었다.

이미 날이 새서 창밖 멀리 검푸른 빛깔의 산등성이가 눈에 들어온다. 몸을 일으켜 신발을 신고 창가로 가니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말문이 막힐 정도다. 경이로운 자연 앞에 몸속 깊은 곳까지 작은 전율이 전해오면서 환희의 느낌이 샘솟는다. 눈에 들어오는 것들에 감사하면서 멍하게 바라 볼 뿐이다.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세상에 이런 곳이 있었다니!”

몇 년 전 호주에서 사암절벽으로 이름 난 ‘그레이트오션로드’를 갔을 때 그 풍경의 아름다움에 취해 환호성을 질렀을 때 그 느낌이다. 인류의 성스러운 귀의처인 히말라야의 한 능선을 새 하얗게 수놓은 만년설은 처음으로 보는 장관이었다. 만년설의 그 청정함 때문인지 ‘나의 마음이 몇 단계는 깨끗해졌다’는 순간 착각이 든다. 그 만년설산은 ‘캉첸중가’(Kangchenjunga)로, 높이가 무려 8586m에 달한다.

시킴과 네팔 접경지역에 우뚝 솟아있는 이 신산은 지구상에서 에베레스트와 K2에 이어 세 번째로 높은 산이다. 8000m가 넘는 봉우리가 5개가 있는데 다섯 봉우리가 산의 이름 안에 잘 표현되어 있다. ‘캉’은 ‘눈’을 의미하며 ‘첸’은 ‘크다’, ‘주’는 ‘보물’ 그리고, ‘웅가’는 ‘다섯’이라는 의미이다. ‘캉첸중가’의 뜻을 풀어쓰면 눈 덮인 다섯 개의 커다란 보물을 뜻한다.

‘캉첸중가’를 바라보고 있자니 ‘마하’라는 말이 슬며시 마음의 숲에 자리 잡는다. 당나라 때 삼장법사로 이름 난 현장 스님이 『반야심경』을 번역한 뒤 아주 위대하다는 의미인 ‘마하’를 경전 앞에 붙인 것처럼. 마하는 매우 위대하고 그 크기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다는 뜻으로, ‘캉첸중가’를 친견하고 있는 내 마음의 감동이 꼭 그러했다. 욕심이 일었다. 자연스레 사진기를 꺼내어 수 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 댔다.

‘캉첸중가’를 친견한 감동을 뒤로 한 채 얼굴을 씻은 뒤 어제 저녁 공양을 들었던 거실로 올라가 덕킁린포체와 아침 공양을 했다.

청정한 산세에 마음까지 청정

 
산칵 촐링 사원의 스투파.

“스님, 이것 좀 들어 보세요.”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아침 공양을 마치고 출발 준비를 마쳤는지 벌써 숙소 건너편의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있었다. 시드니에서 온 린포체의 재가 제자인 ‘제니’가 나에게 꽃을 대신해 공경이나 축복의 의미로 부처님이나 스승에게 올리는 하얀 천인 ‘카다’를 접는 것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사찰을 방문할 때마다 공양을 올리기 위해 사는 것이었는데 그들이 산 ‘카다’의 숫자는 내가 생각하기에는 무척 많아 보였다. 두 사람이 한 조를 이루어 카다를 접었는데 제니가 내게 ‘카다’를 정리하자고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일반적인 공양물인 ‘카다’는 시킴 어디를 가나 쉽게 살 수 있다. 린포체 역시 성지를 참배할 때마다 정성스럽게 ‘카다’ 공양을 올리는 것을 보면서 그러한 행위가 생명을 존중하는 최상의 의식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청정법신 비로자나불.”
서시킴 순례에는 숙소의 남자 주인과 그의 둘째 아들이 동행했다. 20분가량 달렸을까, 그렇게 높지 않은 계단과 함께 일주문이 가지런한 도량이 일행과 마주한다. 일주문은 비록 콘크리트로 건립돼 있었지만 밀교 고유의 단청이 채색되어 단아한 자태를 뽐낸다.

린포체께서는 갑자기 연락이 와서 누군가를 만나러 가셨고 남은 일행들만 절을 돌아보았다. 그 절은 ‘베마양쳉’(Bema Yangcheng)이라 불리는 도량으로, 산봉우리에 널찍하게 터를 닦아 세웠다. 일주문을 올라서는 순간 왼쪽으로 장엄한 ‘캉첸중가’가 한 눈에 들어왔다. 아침에 보았던 그 모습이지만 마주 앉은 느낌은 또 달랐다. 설산을 다시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또 다시 두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빠르게 저물어 가는 석양을 놓치지 않으려는 사진작가처럼 그 자리에 서 있을 ‘캉첸중가’의 법체를 찍느라 분주했다. 그러고는 법당에 들러 부처님을 참배했다. 주불은 역시 ‘파드마삼바바’였다. 성스러운 스승과 관계된 벽화가 법당의 사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는데 채색이 벗겨지거나 빛바랜 모습을 보니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신기한 것은 천정이나 기둥의 윗부분에 칠해진 단청의 색깔이나 꽃, 구름과 같은 모양들이 우리나라의 그것과 너무나도 많이 닮았다는 점이다. 색감이 짙고 대비되는 색이 또렷하며 무늬가 투박하다는 것이 약간 다를 뿐이다. 벽화의 기본 바탕색은 붉은색이었으며 마당의 쉼터에도 화려한 색으로 장엄했다. 상상 속의 연화장 세계를 아름답고 신이하게 표현하려는 속뜻이 밀려온다.

 
골목에서 크리켓을 하고 있는 시킴의 사미승들.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다 보니 요사채 방향에서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웃음소리가 발길을 돌리게 했다. 웃음소리의 주인공들은 어린 사미승들이었다. 수행자들이 상주하는 요사채 사이의 공간에서 ‘크리켓’(cricket)을 하고 있었는데 그들의 얼굴은 자못 진지하다. 옆에서 구경을 하는 사미들의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난다. 시킴이 영국의 지배를 받았었다고는 하나 영연방국가들이 주로 하는 운동을 히말라야의 산골짜기에 사는 어린 사미들이 하고 있다니, 신기하다. 한 쪽에선 신나게 노느라 여념이 없는 사미들이 있는데 다른 한쪽에선 사미들이 주방 용기를 닦고 있다.

린포체께서 올 시간이 많이 남아 마당에 있는 쉼터에서 한참 햇볕을 쬐고 있는데 제법 많은 사미들이 요사채 쪽에서 법당 마당으로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본격적으로 ‘크리켓’을 할 모양이었다. 조금 전 요사채 사이에서 놀던 사미들은 다른 이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연습을 한 듯 했다. 편을 갈라 신나게 놀고 있는 동심의 소리는 어디에서 듣더라도 정겹고 싱싱하다. 손과 얼굴이 시커멓다. 햇볕에 그을려서 그런지 씻지 않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그들의 노니는 모습은 ‘천진 동자’ 그대로였다.

“밖으로 나가 볼까요?”
마당에서 사미승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한참 보고 있었는데 순례 일정을 주관해 온 ‘소남’이 일주문 밖으로 나가자고 권한다. 일주문 밖엔 낡은 건물들이 줄을 지어 있었는데 집들의 해묵은 겉모습이 연륜을 말해준다. 우리나라의 전통 기와집을 연상케 하는 그 건물들은 대개 출가자들이 기거하는 곳으로, 스님들이 주석해서인지 건물이 단아하고 청빈하다. 자연석으로 벽을 만들거나 흙으로 벽의 틀을 세웠고 제법 모양을 냈음에도 투박한 시킴의 자연과 어울리는 문틀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차 왔어요.”
아침에 타고 왔던 차가 일주문 밖으로 들어온다. 순례를 마치고 돌아가야 할 시간이다. 차에 올라타니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법당을 올려다보면서 이곳에서 친견했던 파드마삼바바를 향해 예를 올렸다. 길가 언덕에 두 명의 꼬마 아이가 순례자들을 보면서 앉아 있다.

내가 사진을 찍으려하자 가까이 다가왔다. 형제처럼 보인 아이들은 활짝 웃어 보였다. 말이 안통해도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따스함이 내 마음으로 그대로 전이된다. 어린 나이에도 집안일을 열심히 도왔다는 것을 시커먼 손등이 말해준다. 철부지 코흘리개인 그들의 눈동자엔 순수하고 맑은 시킴의 별과 달이 그대로 배어 있다.

다시 차를 타고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가고 있다. 우리는 오늘의 두 번째 도량인 ‘산칵촐링사원’(Sanghak Choeling Monastery)으로 향하고 있다. 그곳 역시 산꼭대기에 자리 잡고 있어 구불구불 뱀이 똬리를 튼 듯 도로가 굽이쳤다. 차량이 힘에 부친 듯 힘겹게 올라간다. 차라리 걷는 게 나을 듯하다. 위험해 보이는 데도 한 굽이 한 굽이를 돌때마다 ‘캉첸중가’의 흰 얼굴이 우리를 내려다보는 것 같아 한결 마음이 놓인다. ‘산칵촐링사원’에 들어서자마자 법당으로 향했다.

알 수 없는 티베트어로 쓴 현판이었지만 현판의 글씨를 금으로 장엄해 이 절의 사격이 얼마나 번창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문 옆에는 ‘윤회’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그림이 최근에 그려졌는지 선명하고 또렷하다. 법당엔 석가모니부처님이 주불로 봉안되어 있었으며 사면의 벽에 그린 벽화는 이미 퇴색되어 본래의 색깔을 잃었다.

부처님께 정성스레 삼배를 올리고 일행은 법당 가장 자리에 배치되어 있는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짙은 색의 선글라스를 쓴 노스님이 두 명의 젊은 스님들과 함께 들어와 린포체께 예를 갖추었다. 그런 연후에 환영의 인사를 전하면서 ‘짜이’ 차와 전통 과자를 내 왔다.

‘이 사원은 해발 2286m에 위치해 있으며 1642년에 조성됐습니다. 밀교 수행을 전수해 온 티베트 불교 4대 종파 중 하나인 닝마파 사원입니다.’

히말라야 너럭바위 법상서 면벽

 
캉첸중가가 한 눈에 들어 오는 베마양쳉 사원의 일주문.

사원에 관한 안내판에 쓰여 있는 내용이다. 400여년이 넘은 도량이라, 수많은 수행자들을 배출했을 부처님 도량이 한 없이 고맙기만 하다.

“잠시 좌선을 해볼까.”
린포체가 권한다. 마당가 앞은 바로 낭떠러지인데 거기에 자리 잡은 너럭바위를 선방삼아 좌선을 해보자는 것이었다. 린포체께서 바위 위에서 잠시 좌선을 하자는 권유에 시드니의 다섯 불자들이 각자 바위에 앉아 명상에 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서로의 수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될 수 있으면 멀찌감치 앉았다. 산꼭대기 위에 앉아 있는 절이라서 우리들의 모습은 마치 신선도에나 나올듯한 신선의 수행처럼 보였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앉았으니 수행이 절로 되는 듯하여 몸과 마음이 가볍다.

400년이라는 오랜 시간과 2000m 고지라는 자연의 도량에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었기에 느낄 수 있는 감회이리라. 복잡한 시드니에서 벗어나 오직 자연과 자연으로서 만나니 몸과 마음에서 삼독(三毒)이 사라지는 것처럼 맑음이 밀려온다. 잠시 몇 분간의 명상인데도 따사로운 햇볕에 온 몸이 고마워하고 산들산들 부는 바람에도 얼굴엔 웃음이 깃든다.

가만히 앉아 히말라야의 너럭바위 법상에 앉아있는 인연에 집중하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찾아야 하는가’에 다시 집중해 들어갔다. 이젠 눈을 감건 그렇지 않건 간에 고요하기만 하다. 린포체는 나에게 티베트 수행법을 하라고 권유하지는 않는다. 티베트 불교에서는 자신과 인연이 있는 부처님이나 보살님을 주불(主佛)로 모시고 관(觀)하는 수행에 몰입하는 것이 정답이겠지만 그렇게 해야만 한다고 제한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른 선지식들이 법연(法緣)을 기다리는 여유에서 나오는 선행(禪行)일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얼마나 있을까. 그 언젠가는 법연을 만나 ‘부처’를 완성하게 될 것이니 시간의 많고 적음을 문제가 되지 않으리라.

“일체 법은 본래부터 항상 고요한 그 모습이니, 수행자가 도(道)를 닦아 마치면 다음 생에는 부처가 되리.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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