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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법문 명강의] 신흥사 주지 우송 스님

기자명 법보신문

참 모습 드러내려 애쓰는 게 공부

가을이라,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습니다. 공부하기 좋은 계절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가을에는 누구나 시인이 되듯이, 가을이 오면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생노병사(生老病死)에 대해 참구하게 됩니다.

우리 불자님들께서는 오늘 이 법회에 참석하기 위해 가을 설악산을 오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가을이 오니 좋구나”라고 생각하신 분은 드물 것입니다. 아마도 “벌써 가을이 왔네”라고 탄식한 분들이 더 많으실 것입니다. 인생이 백년, 천년 갈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구나 하는 인생무상의 진리를 일깨워 주는 것이 바로 가을의 힘입니다.

중국 당대(唐代)의 시인으로 ‘시의 귀재’라 평가 받는 이하(李賀)는 『숭의리체우(崇義裡滯雨)』란 작품에서 다음과 같이 가을을 노래했습니다.

“뉘 집의 자식이 이리도 낙망한가
돌아와 장안의 가을에 젖어본다
젊은 나이로 떠도는 한을 품고
백발이 된 것을 꿈에서 보고
눈물 흘리며 울었다”

이하는 등에 낡은 비단주머니를 메고 나귀를 타고 다니면서 시상이 떠오르는 대로 적었습니다. 이하의 어머니가 아들의 주머니에서 시들을 꺼내보고는 “이 아이가 심장을 토해내야만 시를 멈추겠구나.” 라고 탄식했다는 유명한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시는 이처럼 심장을 토해내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이하의 시에서처럼, 시를 통해 ‘백발된 꿈’을 미리 꾸어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삶의 실상을 선취(先取)해보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서고금의 현자들이 시를 자주 접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진여본성 찾아 끊임 없이 참구할 때

우리 불교에도 시와 같은 멋진 가르침이 많습니다.
한 스님이 운문스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운문스님이 대답합니다. “나무는 앙상한 모습을 드러내고 천지에 가을바람만 가득하지.”
‘운문체로금풍(雲門體露金風)’이라, ‘종문(宗門) 제일서(第一書)’로 평가받는 『벽암록』의 제27칙 화두입니다. ‘체로금풍(雲門體露金風)’이란, ‘가식 없는 참 모습을 드러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입니다.

공부한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이 참모습을 드러내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나뭇잎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을 때는 삶의 참모습이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바야흐로 나뭇잎이 붉게 물들고, 마침내 체로금풍의 경지에 이르러서야 진면목이 드러납니다.
앙산스님이 자신을 찾아온 한 스님과 다음과 같은 문답을 나누었습니다.

“요즘 어디에 있다가 왔는가?”
“여산에 있었습니다.”
“그럼 오로봉에는 가보았겠군.”
“아직 가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앙산스님이 이렇게 스님을 질책했습니다.
“이 사람아, 아직 산놀이도 못했단 말인가!”
‘앙산부증유산(仰山不曾遊山)이라, 『벽암록』 제34칙 화두입니다.

여산(廬山)은 강서성에 있는 명산으로, 오로봉(五老峰)은 그 중에서도 빼어난 경치로 유명한 곳입니다. 시선(詩仙)이라 평가받는 이백은 여산의 아름다움에 감탄해 이곳에서 은거를 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백이 ‘망오로봉(望五老峰)’이란 작품에서 “여산동남오노봉(廬山東南五老峰)청천삭출금부용(靑天削出金芙蓉)이라, 즉“여산 동남쪽의 오로봉이여, 푸른 하늘에 금색 연꽃이 불쑥 솟아 있구나.”라고 읊은 구절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습니다.

이 화두에서 앙산 스님은 단순히 여산의 명승을 구경하지 못한 것을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본성(眞如本性)의 봉우리를 아직도 깨치지 못했느냐고 질책하고 있습니다. 소를 타고 소를 찾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설악산을 즐겨 찾지만 대청봉에 오르지 않고서는 설악산을 제대로 올랐다고 말하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매번 설악산에 오르지만 언제 한번 제대로 된 대청봉을 감상하기가 어렵듯이, 삶을 간절히 참구하지 않고 어영부영 지내다 보면 제대로 된 산놀이도 해보지 못하고 하산하게 되고 맙니다.

『벽암록』에는 이 화두 밑에다, “운문 스님이 이 이야기를 듣고 난 후 말하길, 앙산 스님이 자비심을 발휘하여 그를 위해 쉽게 말한 것이라고 했다”고 덧붙이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현대인의 삶에는 겉치레가 너무나 많습니다. 산에 오르는 시간보다, 등산복 하나를 구하기 위해 온 시내를 전전하는 시간이 더 많습니다. 그 사람이 쌓아온 등산 경력과 능력보다 그 사람이 입고 있는 등산복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풍토에 젖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오로봉은커녕 일로봉도 제대로 밟지 못하고 하산하게 됩니다.

일본의 유명한 선사인 잇큐(一休)스님이 교토의 한 부잣집에서 열리는 법회에 법사로 초청받은 적이 있습니다. 약속한 날 잇큐 선사는 남루한 옷을 입고 부잣집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를 본 주인은 하인들을 시켜 쫓아냈습니다.

절로 돌아온 스님은 화려한 금란가사를 몸에 두른 후 다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아주 공손하게 스님을 맞이하며 안으로 안내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잇큐 스님은 주인의 청을 사양했습니다. 주인이 깜짝 놀라 그 까닭을 묻자, 스님께서 답하시길 “내가 이 금란가사를 드릴 테니 이 가사로 하여금 법회를 주관하게 하십시오. 소승은 조금 전에 이미 문밖으로 쫓겨났었습니다.”

겉보기로 사람 평가하는 풍토 바꿔야

이 잇큐 스님이 새해 설날에 신도집을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새해가 되면 스님들이 신도 집에 찾아가는 풍습이 있습니다. 새해 첫손님으로 존경하는 스님이 찾아오면 액운이 사라지고 복이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큰 스님이 새해 첫날 자기 집을 찾아온다는 말을 들은 신도는 너무나 황송해서 온 집안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식구들과 함께 정중하게 스님을 맞았습니다.
그러나 잇큐 스님을 맞이한 신도는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잇큐 스님이 지팡이 끝에 해골을 하나 달고 있었던 것입니다.

신도가 얼굴을 찌푸리며, “큰스님, 오늘같이 좋은 날 망측스럽게 어찌 해골을 가지고 찾아오셨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잇큐 스님은 오히려 근엄하게 말했습니다.

“오늘이 무엇이 좋은 날이냐. 설이 자꾸 지나가면 마침내 모두 해골이 될 터인데 죽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나면 ‘살아가는 재미가 어떠하냐?’라고 묻는다. 그러나 따져보면 우리 인생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난 순간부터 죽어 가는 것이다. ‘살아가는 재미’란 ‘죽어가는 재미’에 불과하다. 이를 생각하면 새해를 맞이했다는 것이 오히려 두려운 일이다.”
입을 다물지 못하는 신도에게 스님은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고 돌아섰습니다.

“이처럼 해가 바뀌어 해골이 눈앞이니 어찌 급하지 않은가. 복을 적게 지으면 지옥보를 받을 것이요. 할 일을 게을리 하면 성취하기 전에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무슨 일을 하든 상근정진(常勤精進)해야 할 것이니라.”
그 신도는 잇큐 스님의 법문을 곰곰이 참구해보았습니다. 그리고 스님의 법문이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신도는 누구보다 더 열심히 살아서 많은 성취를 거두었습니다.

우리 신도님들도 참구에 참구를 거듭해서 이 가을 체로금풍을 온몸으로 느껴보시길 발원합니다. 

정리=송지희 기자 jh35@beopbo.com

이 법문은 조계종 3교구본사 신흥사 주지 우송 스님이 9월 8일 초하루 법회에서 설한 내용을 요약 게재한 것입니다.


우송 스님은

1980년 하동 쌍계사서 석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하고 송광사, 해인사, 망월사 등 제방에서 수선 안거를 마쳤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상임감찰, 계조암 주지, 봉정암 주지, 백담사 주지, 신흥사 부주지를 역임했으며 2009년 신흥사 주지로 취임했다. 현재 신흥사복지재단 대표이사 등을 맡아 복지사회구현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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