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가 말을 걸다] 19. “굿’ 바이”

기자명 법보신문

아름다운 배웅

 
소중한 이의 행복한 마지막을 그린 “굿’ 바이”.

 

바르르. 손끝이 떨립니다. 잊었던 아니 잊으려했던 아버지의 얼굴이었습니다. 30년 넘게 소식이 없던 아버지였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안부가 시신을 수습하라는 부음이라니요.

 

매정하게 외면했습니다. 아내가 간곡히 원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한 생각 돌이켰습니다.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싸늘히 누워있는 아버지. 장의사는 너무도 무례하게 아버지의 시신을 관에 넣으려 했습니다. 그 손들을 뿌리쳤습니다. 아내가 그들에게 말을 합니다. “제 남편은 납관사에요.”

 

합장을 하고 몸을 정갈히 닦았습니다. 이승의 피로와 고통, 번뇌를 씻는 동시에 저승으로 떠나는 ‘영원한 여행’을 도왔습니다. 아버지의 손에서 작고 동그란 돌멩이 하나가 덩그러니 바닥에 떨어졌습니다.

 

먼 옛날, 문자가 없을 때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과 꼭 닮은 돌멩이를 전했다던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돌멩이를 받은 사람은 그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느낀다고 아버지는 가르쳤습니다. 그제야 어릴 적 기억 속에 희미했던 아버지의 얼굴이 선명해졌습니다. 잊었던 아버지와의 추억이 돌아왔습니다. 추억은 흐느낌으로 뺨을 타고 흘러 내렸습니다. 아버지를 배웅했습니다.

 

한 때 첼리스트였습니다. 갑작스럽게 오케스트라가 해체 돼 고향으로 내려왔었습니다. 직장을 알아보던 중 ‘여행의 도우미’란 광고 문구를 보고 그 곳을 찾았습니다. 아뿔싸. 인생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을 배웅하는 ‘납관’ 일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베테랑 납관사이자 사장인 이쿠에이 씨. 고요와 평온함 속에 이뤄지는 그의 ‘여행을 돕는 손길’ 염습이 아름다웠습니다. 그렇게 고인에게 마지막 온기를 불어 넣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고향 친구들은 무시했습니다. 일을 알아버린 아내는 불결하다며 친정으로 떠나기도 했습니다.

 

죽음이란 그렇게 우리 곁에 불결한 일인가요. 어찌 보면 가장 일반적인 일이었습니다. 죽음은 삶의 과정이니까요.

 

누구나 ‘이별’을 겪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영원히 떠나보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남겨둔 채, 영원히 세상을 떠나야 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흔히 죽음은 아프고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다가옵니다. 소중한 사람을 어떻게 배웅하고 싶은가요. 인생에 있어 가장 슬픈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 될 수 있을까요.

 

입적하신 법정 스님은 육신을 헌옷으로 여겼습니다. 훨훨 날아 ‘어린 왕자’가 사는 별나라로 가길 원하셨지요. 스님을 우리는 눈물로 배웅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할 수 있던 것은 스님과의 추억입니다. 우리 곁을 떠나지만 스님은 의자 위치만 옮겨 놓고 하루에도 해지는 광경을 몇 번이고 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겐 스님이 남긴 맑고 향기로운 가난의 향기가 남았습니다.

 

‘떠나야 하는 사람’과 ‘남겨진 사람들’의 소중함은 슬프게도 마지막 순간에야 비로소 나타납니다. 그래도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가슴에 담고 있다면 아름다운 배웅, 아닌가요. 굿, 바이입니다.  

 

최호승 기자 time@beopbo.com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