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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위한 변명] 낙동강 미륵불

기자명 법보신문

4대강 생명 지키려 나투신 미륵불
뿔난 표정, 일그러진 시대의 자화상

낙동강에 미륵불이 나퉜다. 머리맡에 구멍 뚫린 큰 상처를 지닌 채 무표정하고 굳은 얼굴로 오셨다. 칼 야스퍼스가 인간실존의 최고라고 평가했던 미륵보살반가사유상과 2007년 5월 경주에서 발견된 신라 마애불의 완벽한 천년미소와는 극명하게 대조되는 얼굴이다. 오히려 선운사 도솔암 미륵불의 뿔난 표정과 닮았다. 이 표정은 4대강 사업으로 인한 이 시대 우리들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대변하고 있다.

주목할 것은 미륵이다. 새 세상을 준비하고 있었듯이 다시 살아난 의성군 생송리 미륵불은 오만과 탐욕과 어리석음과 무지로 가득 찬 야만의 시대정신을 털어내기 위해 불자를 가슴에 치켜든 채 불현듯 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가녀린 지율 스님이 천성산 고속철사업에 반대하며 포크레인 앞에 홀로 가부좌를 틀고 저항하던 모습 그대로다.

미륵불이 오른손에 치켜든 불자는 제석천왕이 중생의 번뇌를 털어내기 위한 먼지털이라고 한다. 불자들에게는 부처의 나라로 가는 관문이 있다. 불이문이다. ‘불이’란 곧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생사가 둘이 아니며, 생사와 열반이 둘이 아니라는 것을 천명한 말이다. 불이문에 이르기 전에 제석천왕이 다스린다는 도리천이 있다.

이곳은 중생들의 선행과 악행을 다루는 곳이라고 한다. 제석천왕은 원래 고대 인도의 신 가운데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인드라’ 신이었다. 벼락과 천둥과 비바람을 관장했던 ‘인드라’는 부처의 감화로 귀의한 뒤 부처와 그 제자들을 지키겠다고 서원, 제석천왕이 되었다고 한다.

벼락과 천둥을 관장한 제석천왕 ‘인드라’가 부처를 지키기 위해 낙동강 공사현장에 나타난 것이다. 역사를 피해갈 수 없는 자, 민중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자, 자본을 남용한 자들은 낌새와 기미를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자연과 생명을 처참하게 유린하며 거짓을 일삼는 오만한 권력자와 부화뇌동하는 자들은 불벼락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를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

지그시 감은 두 눈과 굳게 깨문 입술 그리고 단전에 얹은 왼손과 올곧은 자세, 강단진 표정에서 미륵불의 결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제석천왕은 반드시 지켜야 할 계율을 한 달에 6번 씩 주지시키고 점검했다고 한다. 순간순간 계율을 잊지 말라는 뜻이다. 지키지 않으면 영원한 고통을 면치 못하기 때문이다.

계율은 무엇인가. “생명을 죽이지 말라.”, “거짓말 하지 말라.” 명료하다. 그러나 현 정부의 4대강에 이르면 계율은 무색해진다. 오히려 무한권력의 칼날은 더 매섭게 계율을 해체한다. 지방선거 이후 경남도가 경남도민과 각계 전문가의 의견을 청취한 후, 주민피해와 자연 생태계 훼손 우려를 이유로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자 정부가 경남도의 낙동강사업권을 빼앗아 직접 하겠다고 나섰다.

대통령과 국민과의 갈등을 넘어 정부와 지자체, 자본과 생명의 극한대립을 부추기는 이 오만한 권력의 반생명적인 태도가 불벼락을 임계치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도리천의 제석천왕이 마냥 지켜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을 터. 불자를 들고 낙동강 미륵불로 오셨다. 그것도 큰 상처를 머리맡에 이고 동학년 불기운을 부른 도솔암 미륵불의 뿔난 표정으로 오셨다. 그 까닭을 알아차렸는가. 나무관세음보살.  

정호 녹색구출특위 집행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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