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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불교순례] 3. 수처작주(隨處作住)의 도량 임제사

기자명 법보신문

살불살조 기상 서린 도량엔 한 점 번뇌도 머물곳 없구나

 
임제 스님의 사리와 가사, 발우를 모셨던 조그만 탑전을 후대에 중창한 것이 지금의 임제사다. 탑 주변의 짙고 푸른 소나무는 임제선의 높은 기백을 말해 주는 듯 하다.

임제 스님이 대우 스님의 처소에 이르자, 대우 스님이 물었다.
“어디서 왔는가?”
“황벽 스님의 처소에서 왔습니다.”
“황벽 스님은 어떤 가르침을 주던가?”
“저는 세 번이나 불법의 올바른 대의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러나 세 번 모두 얻어맞기만 했습니다. 제게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황벽 스님이 그대를 위해 그토록 간절히 불법의 골수를 일러줬는데, 이제 이곳에 와서 허물이나 묻고 있다니 한심하군.”

임제 스님이 이 말에 몰록 깨달았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뭐야, 황벽의 불법도 별게 아니군.”
임제 스님의 말에 대우 스님이 세차게 멱살을 움켜쥐며 말했다.
“이런 오줌싸개 같은 놈, 조금 전에 얻어맞았다고 허물이나 찾더니 이제 와서 황벽 스님의 불법이 별게 아니라고. 무슨 진리를 깨쳤는지 말해라, 빨리 말해봐.”
임제 스님은 말은 않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대우 스님의 옆구리를 세 번 쿡쿡 찔렀다. 그러자 대우 스님은 임제 스님의 멱살을 놓고 말했다.
“너의 스승은 황벽 스님이다. 그리 가거라.”
임제 스님은 곧장 황벽 스님에게 돌아갔다. 그가 돌아온 것을 보고 황벽 스님이 물었다.
“이놈아, 그렇게 왔다 갔다만 하면 언제 일대사의 큰일을 마칠 수 있겠느냐.”
“다 스님의 노파심 때문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임제 스님은 대우 스님과의 일을 자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다 듣고 난 황벽 스님이 말했다.
“이 수다스런 대우 놈, 오기만 해봐라. 내 묵사발을 내놓을 테니.”
그러자 임제 스님이 말했다.
“오도록 기다릴 것이 뭐 있겠습니까? 지금 당장 한방 먹이시지요.”
말을 끝내자마자 임제 스님은 황벽 스님의 뺨을 후려쳤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말했다.
“이 미친놈이 감히 호랑이의 수염을 잡는구나.”
황벽 스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임제 스님이 고함(喝)을 질렀다. 그러자 황벽 스님이 말했다.
“시자야, 이 미친놈을 선당에 데려가도록 해라.”

찰나의 소식 휘잡은 임제의 근기

 
임제사 대웅전.

임제의현(臨濟義玄·?~867) 스님의 오도(悟道) 순간은 선종 역사상 가장 극적이다. 제자를 깨달음으로 이끌기 위한 대우, 황벽 스님의 고투도 눈물겹지만 찰나의 소식을 놓치지 않고 무명을 깨뜨려 버린 임제 스님의 호탕한 근기 또한 아름답다. 새끼가 안에서 알을 쫄 때를 맞춰 어미닭이 밖에서 쪼아 함께 알을 깨뜨리는 줄탁동시(●啄同時). 그 미묘한 떨림이 바로 이런 것이었으리라.

언어유희(言語遊戱)를 끊어버리고 몽둥이(棒)와 고함(喝)을 방편으로 본체를 향해 곧장 들어가는 통쾌함으로 임제 스님의 선은 중국과 한국, 일본의 선종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임제할(臨濟喝)의 탄생이다. 스님들이 법문 중에 느닷없이 할(喝)이나 고함을 지르는 것이 여기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임제 스님의 호쾌한 깨달음은 그냥 주어진 것은 아니다. 『임제록』은 스님의 수행을 행업순일(行業純一)로 기록하고 있다. 잡티하나 어리지 않는 수순한 구도의 열정만이 가득했다는 뜻이다. 그렇게 3년을 묵묵히 수행에 정진하고, 또 세번이나 얻어맞은 후에 줄탁동시의 때를 만나게 된 것이다.

조금은 내성적으로 보일만큼 우직하고 순일하던 구도의 열정이 허공 같은 깨달음으로 탁 트이자, 넓고 활달함은 비교할 대상이 없게 됐으며 조사선을 대표하는 선불교의 정신으로 추앙받게 됐다. 특히 임제 스님의 말씀을 기록한 『임제록』은 조사들의 어록 중에서도 군계일학(群鷄一鶴), 어록의 왕, 군록의 왕으로 평가받고 있다.

“도를 닦는 사람들이여! 그대들이 진정한 견해를 얻고자 한다면 결코 사람을 미혹되게 하는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마음 안이나 밖이나 일어나고 마주치는 모든 번뇌와 미혹을 끊어 죽여 버려야 한다.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 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친척을 만나면 친척을 죽여야 비로소 해탈할 수 있다. 이렇게 모든 일체의 사물에 걸림이 없어야 해탈 자재한 경계에 이를 수 있다.”

임제 스님의 가르침은 활달한 바닷가, 시원한 바람에 가슴이 툭 터져 버리는 상쾌함에 있다. 부처님과 조사의 가르침마저도 깨달음에 방해가 될 때는 단칼에 베어버려야 한다는 살불살조(殺佛殺祖)의 웅혼한 기상 앞에는 자유로운 절대 경지 외에 그 어떤 것도 서 있을 자리가 없다. 이런 까닭에 임제 스님의 선은 번뇌의 목을 치는 무사의 살기어린 칼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조주 스님의 사리탑이 모셔진 백림선사에서의 참배를 마치고 동시대를 함께 살았던 또 다른 선의 달인 임제 스님을 만나기 위해 길을 나섰다. 백림선사로부터 불과 1시간 거리. 작은 시골 골목길을 따라 20~30m 들어가니 고졸하고 수수한 도량이 수줍은 얼굴로 모습을 드러낸다. 임제사(臨濟寺)다. 스님이 주석하며 벼락같은 고함과 몽둥이로 중생들을 깨달음의 세계로 몰아붙였던 원래의 임제원은 사라지고 지금의 임제사는 스님의 사리와 가사 및 발우를 모셨던 조그만 탑전을 후대에 중창한 것이다.

도량은 스스로의 깨달음 이외에 어떤 권위와 허례의식도 용납하지 않았던 임제선의 가풍을 보는 듯 정갈하기만 하다. 깔끔하고 아담한 산문을 지나자 탑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임제 스님의 사리탑이다. 당나라 예종 때 건립됐다는 탑의 본래 이름은 당임제혜조징령탑(唐臨濟惠照澄靈塔). 33m 높이에 8각9층으로 쌓아올린 탑은 목재를 다루듯이 벽돌로 마술을 부려 광창과 포, 기와를 얹고 층층이 연꽃무늬와 상서로운 동물들을 담아냈는데 아름다운 목탑을 보는 듯 감탄이 절로 인다. 특히 한옥의 지붕처럼 층층이 탑을 감싸고 있는 비취빛 기와는 파란 하늘과 잇닿은 색감의 신비로움으로 청탑(靑塔)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린다.

 
법유당은 임제, 달마, 혜능 스님을 모신 조사전이다.

도량은 탑을 중심으로 3~4개의 전각이 조촐하게 들어서 있다. 탑 앞에 아담한 대웅전이 보이고 그 옆으로 임제 스님과 달마 스님, 혜능 스님을 함께 모신 조사전이 들어서 있다. 법유당(法乳堂)이다. 법의 젖이 흐르는 곳. 표현도 시적이지만 의미도 자못 깊다. 한국 조계종의 종조 도의국사가 임제 스님의 할아버지뻘인 서당 지장 스님의 법을 이었고, 태고 보우 스님이 임제 스님의 18대 법손인 석옥 청공으로부터 법을 받았으니, 한국불교에 끼친 스님의 영향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일본도 임제록에 나라 전체의 명운보다 더 큰 가치를 두고 있으니, 이곳이 동북아 간화선의 젖줄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조주 스님의 백림선사가 ‘뜰 앞의 잣나무’ 화두를 낳았던 측백나무로 유명하다면 임제사는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작고 아담한 도량은 고풍스런 소나무로 더욱 정갈해 보인다. 탑 주변은 짙고 푸른 소나무로 인해 마치 솔숲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사철 푸른 소나무와 임제선의 높은 기백. 이보다 더 어울리는 조합이 있을까.

같은 시대를 살았던 조주 스님이 120세까지 장수하며 오랜 시간 행화를 펼쳤지만 임제 스님은 50세 전후의 비교적 짧은 삶을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조주선이 부드러우면서 진득한 반면 임제선이 거칠면서도 간결한 것 또한 이런 스님들의 삶이 그대로 투영된 때문이리라.

허례허식 용납 않는 정갈한 도량

 
‘청탑’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임제 스님의 사리탑.

『임제록』에 따르면 임제 스님은 병이 없음에도 스스로 조용히 입적했다.
스님은 어느 날 옷깃을 여미고 자리에 앉아 제자 삼성에게 물었다.
“내가 죽고 난 뒤에 나의 정법안장(正法眼藏)이 멸각되지 않도록 하라.”
“어찌 감히 스님의 정법안장을 멸각할 수 있겠습니까.”
“좋다. 그렇다면 다음에 어떤 사람이 그대에게 불법을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러자 삼성은 임제선의 가풍대로 일할(一喝)로 대답했다.
“할(喝).”
그러자 스님이 한탄하며 말했다.

“나의 정법안장이 이 눈먼 나귀에게 멸각될 줄이야.”
임제 스님은 그길로 바로 열반에 들었다. 당나라 함통(咸通) 8년(867년)의 일이다.
후대의 진위논란에도 이 대화가 갖는 의미는 크다.
임제 스님은 평소 수처작주(隨處作住) 입처개진(立處皆眞)을 강조했다.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

권위와 우상으로서의 부처님 가르침과 역대 조사의 깨달음마저 인정하지 않았던 치열한 살불살조(殺佛殺祖)의 가르침과 한가지로 맥이 닿아있다. 그러나 삼성 스님은 스승을 흉내 냄으로써 스스로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진리의 숨통마저 막아버렸다. 임제 스님의 안타까운 장탄식이 조금은 이해가 될 듯도 싶다. 그러면 삼성 스님은 어떻게 대답 해야 했을까.

“도의 수행자들이여! 부처를 절대자로 생각하지 말라. 보살이나 나한들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대들이 경전을 능숙하게 해석한다든지, 세상의 높은 지위에 오른다든지, 말을 청산유수처럼 한다든지, 또는 머리가 좋고 지혜가 있다든지 하는 것을 조금도 바라지 않는다. 다만 진실하고 참된 눈을 갖고 자신의 본모습을 바로 보기 바란다. 그대들이 행여 수백 권의 경전에 능통한다 해도 그것만 갖고는 아무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수수하고 때 묻지 않은 일개 수행자만 못할 것이다.”

진실의 눈을 얻지 못한 나귀 한 마리가 번뇌만 잔뜩 짊어진 채 터덜터덜 임제사를 나서고 있다. 

김형규 기자 kimh@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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