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禪敎 아우른 선지식, 연화장세계로 돌아가다

기자명 법보신문
  • 추모특집
  • 입력 2010.12.10 11:31
  • 수정 2011.01.12 14:31
  • 댓글 0

관음종 종정 남천 죽산 스님 11월 23일 원적
27일 사부대중 애도 속 영결식…29일 초재

▲남천 죽산 대종사 

“세상의 모든 세계가 같거늘 모양 없는 법신이 어찌 둘이겠습니까. 중생과 모든 부처님은 다르지 않으니 산은 절로 높고 물 또한 절로 깊습니다. 내 것이라 생각하는 것을 나누어 이웃에게 줄 수 있어야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불교관음종의 정신적 지주로서 대중들에게 실천하는 불제자로 살아갈 것을 강조하며 후학 양성과 중생 제도에 매진해온 남천(南天) 죽산(竹山) 대종사가 11월23일 오후 1시10분 세수 77세, 법랍 59세로 원적(圓寂)에 들었다.


1934년 9월19일 충남 당진군 송학면에서 태어난 스님은 1951년 충남의 면천고등학교를 졸업, 당시 어지러운 사회 환경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대사(一大事) 해결의 큰 뜻을 품고 이듬해 양산 통도사를 찾아 출가사문의 길에 들어섰다. 통도사에서 월하 대종사를 은사로 득도한 스님은 불제자의 기본 도리를 철저히 지키며 엄격한 수행생활을 이어온 스승의 가풍을 이어 수행자의 길에서 평생 한 치의 벗어남도 없었다. 스님은 한국전쟁으로 인해 모든 것이 피폐해지고 죽음의 공포가 도처에서 도사리던 시절에 ‘불법을 통해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발심을 한시도 잊지 않았고, 그 원력을 바탕으로 평생 동안 대중에게 회향하는 불제자의 삶을 실천으로 내보였다.


1954년 통도사에서 월하 스님을 계사로 사미계를 수지한 스님은 통도사 전문강원에서 4년간 수학하며 출격장부가 되기 위한 소양을 쌓았다. 이어 1958년 부산 범어사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수지한 후 곧바로 오세암으로 자리를 옮겨 구경경지를 향한 1000일 폐문정진(閉門精進)을 단행했다. 스님의 1000일 폐문정진은 말 그대로 확철대오할 때까지 산문을 나서지 않겠다는 위법망구의 정신이었고, 출가사문의 본분사를 다하고자 하는 담금질이었다. 스님은 1960년 1000일 정진을 회향하기까지 한 소식에 다가섰음에도 통도사, 해인사, 범어사 등 제방선원에서의 수행정진을 게을리하지 않아 32안거를 성만했을 뿐만 아니라, 1970년에는 영암사에서 또다시 1000일 안거에 들어가는 등 수행자의 면목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1967년 서울의 낙산 묘각사에서 관음종 개산조인 태허당 홍선 스님의 법화와 대중을 사랑하는 자비에 감복해 법사건당한 이후 백련암, 성암사, 약사원 등에 주석하며 후학 양성과 재가불자 지도에 혼신의 노력을 다했다. 특히 스님은 참선 수행뿐 아니라 교학 연구에 있어서도 정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그리하여 1960년에는 김천 직지사에서 관응 스님에게, 1969년 서울 낙산 묘각사에서 태허 스님에게 각각 강맥을 전수받기도 했다. 그야말로 선(禪)과 교(敎)를 아우른 시대의 참스승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선교를 아우르며 수행의 끈을 놓지 않은 스님은 법을 전하는데도 열정을 다했다. 따라서 경전을 늘 곁에 쌓아 두고 법을 묻고자 산문을 들어서는 사부대중 누구를 막론하고 경전 읽기를 권했다. 또한 멀리 있는 제자와 불자들의 공부를 돕기 위해 ‘수행 용맹정진’, ‘사미율의’ 등의 책을 펴냄으로써 불교발전과 불법홍포에 매진하기도 했다. 출가사문으로서 이처럼 수행정진과 불법홍포에 한결같은 모습을 보였기에 종도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온 남천 스님은 종단의 어른으로서 역할을 다하기도 했다.


종도들의 염원에 따라 1998년 관음종 원로위원으로 추대돼 원로회의 의장을 역임한 스님은 2003년 관음종 제6세 종정으로 추대되었다. 이어 지난 2009년 또 다시 관음종 제7세 종정으로 추대되면서 관음종의 정신적 지주로서 역할을 다해왔다. 그렇게 출가 이후 오롯이 인천의 사표로써 수행정진과 후학양성에 매진하며 출가수행자의 진면목을 보여 온 남천 죽산 스님은 11월23일 “마음이 깨끗하여 맑고 밝으면(一念忘時明了了), 구원 부처님이 다른 곳에 계신 것이 아니네(久遠佛在別家鄕). 오고가는 것이 연화국이요(去來坐以蓮華國), 이르는 곳이 극락 아닌 곳이 없다(處處無非極樂堂)”는 열반게를 남기고 홀연히 연화장세계로 자리를 옮겼다.


한편 세연을 다한 남천 스님의 영결식은 11월27일 관음종 총본산 서울 낙산 묘각사에서 장의위원장인 총무원장 홍파 스님을 비롯해 사부대중 10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종단장으로 엄수됐다.

 

 

 

 

김현태 기자 meopit@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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