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의 모든 상을 떠난 사람이 곧 부처님
일체의 모든 상을 떠난 사람이 곧 부처님
  • 법보신문
  • 승인 2010.12.15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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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 읽고 이해함은 四相의 관념 부수는 일
청정한 행위도 분별심 있으면 진리와 멀어져
경전 배우고 익히며 맑아지면 궁극지혜 열려

14. 관념을 떠난 열반(離相寂滅分)

 

 

▲부처님이 성도하신 인도 마하보디대탑에서 경전을 읽고 있는 티베트 스님.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을 설하심을 듣고 뜻을 깊이 이해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까지 얻은 혜안으로는 이같이 깊이 있는 경전 설하심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지면 바로 궁극적 지혜가 일어날 것이니,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운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존이시여! 이 궁극적 지혜라는 것은 궁극적 지혜가 아닌 까닭에 여래께서는 궁극적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같은 경전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 오백 년 뒤에도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아가 있다는 관념은 관념이 아니며,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은 관념이 아닌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념을 떠난 이를 부처님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께서 수보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 그렇다.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무서워하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이 사람은 매우 경이로운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여래는 최고의 바라밀을 최고의 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으므로 최고의 바라밀이라 말하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인욕바라밀을 여래는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였다. 왜냐하면 수보리여! 내가 옛적에 가리왕에게 온 몸을 마디마디 잘렸을 때, 나는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내가 옛날 마디마디 사지가 잘렸을 때,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있었다면 성내고 원망하는 마음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수보리여! 여래는 과거 오백 생 동안 인욕수행자였는데 그때 자아가 있다는 관념이 없었고, 개아가 있다는 관념이 없었고, 중생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고,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었다. 그러므로 수보리여! 보살은 모든 관념을 떠나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의 마음을 내어야 한다. 형색에 집착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하며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에도 집착 없이 마음을 내어야 한다. 마음에 집착이 있다면 그것은 올바른 삶이 아니다. 그러므로 보살은 형색에 집착함이 없는 마음으로 보시를 해야 한다고 여래는 설하였다.

수보리여! 보살은 모든 중생을 이롭게 하기 위해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한다. 여래는 모든 중생이란 관념은 중생이란 관념이 아니라고 설하고, 또 모든 중생도 중생이 아니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여래는 바른 말을 하는 이고, 참된 말을 하는 이며, 이치에 맞는 말을 하는 이고, 속임 없이 말하는 이며, 사실대로 말하는 이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법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수보리여! 보살이 대상에 집착하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은 마치 사람이 어둠 속에 들어가면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고 보살이 대상에 집착하지 않는 마음으로 보시하는 것은 눈 있는 사람에게 햇빛이 밝게 비치면 갖가지 모양을 볼 수 있는 것과 같다.

수보리여! 미래에 선남자 선여인이 이 경전을 받아 지니고 읽고 외운다면 여래는 부처의 지혜로 이 사람들이 모두 한량없는 공덕을 성취하게 될 것임을 다 알고 다 본다.”


(爾時 須菩提 聞說是經 深解義趣 涕淚悲泣 而白佛言 希有世尊 佛說如是甚深經典 我從昔來所得慧眼 未曾得聞如是之經 世尊 若復有人 得聞是經 信心淸淨 卽生實相 當知是人 成就第一希有功德 世尊 是實相者 卽是非相 是故 如來說名實相 世尊我今得聞如是經典 信解受持 不足爲難 若當來世 後五百歲 其有衆生 得聞是經 信解受持 是人卽爲第一希有 何以故 此人 無我相無人相無衆生相無壽者相 所以者何 我相卽是非相 人相衆生相壽者相 卽是非相 何以故 離一切諸相 卽名諸佛 佛告須菩提 如是如是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何以故 須菩提 如來說第一波羅蜜 非第一波羅蜜 是名第一波羅蜜 須菩提 忍辱波羅蜜 如來說非忍辱波羅蜜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瞋恨 須菩提 又念過去 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卽爲非住 是故 佛說菩薩心 不應住色布施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如來說 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卽非衆生 須菩提 如來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狂語者 不異語者 須菩提 如來所得法 此法無實無虛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入闇 卽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須菩提 當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卽爲如來 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그때 수보리가 이 경을 설하심을 듣고 뜻을 깊이 이해하여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부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까지 얻은 혜안으로는 이같이 깊이 있는 경전 설하심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어떤 사람이 이 경을 듣고 믿음이 청정해지면 바로 궁극적 지혜가 일어날 것이니,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운 공덕을 성취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상적멸분(離相寂滅分)입니다. 한자를 그대로 풀이하면 상(相)을 떠난 적멸(寂滅)인데 우리말로 관념을 떠난 열반이라고 합니다. ‘금강경’은 초지일관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 등 사상(四相)이 없어야 열반에 이른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상(四相)이 바로 고정관념입니다. 따라서 깨달음을 위해서는 이런 고정관념을 확실히 제거해야 합니다. 자성(自性)이 늘 맑은 것을 일러 혜안(慧眼)이라고 하고 진리를 듣고 스스로 깨닫는 것을 법안(法眼)이라고 하는데 성품이 어지럽지 않아야 지혜의 눈이 생기고 그래야 법안이 열려 깨달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수보리 존자는 아라한으로서 오백 제자 중에서도 공(空)의 뜻을 가장 잘 이해한 분입니다. 또 오랫동안 여러 부처님을 시봉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깊은 법을 듣지 못했다가 이제야 석가모니 부처님 처소에서 듣게 된 것일까요. 아마도 수보리 존자는 과거에 완벽한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성문(聲聞)의 혜안만을 얻었다가 이제 비로소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경의 깊은 뜻을 깨달아, 과거에 깨우치지 못한 것은 한탄하여 눈물을 흘리시는 것일 겁니다. 여기서 성문은 수행의 계위인데 홀로 수행하여 작은 깨달음을 얻었지만 남을 위하는 자비심이 없는 까닭으로 부처님과 같은 깨우침을 얻지 못한 이들을 말합니다.


경을 듣고 깊이 이해하는 것을 청정이라고 하는데 이 청정으로부터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의 깊은 법이 나옵니다. 그리고 이로써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성취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경전을 읽고 깊이 이해한다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관념, 너라는 관념, 우리라고 하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 등을 부수어 없애는 것입니다. 만약 경전을 공부하면서도 이런 관념들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경을 읽는 공덕은 아마도 전혀 없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 궁극적 지혜라는 것은 궁극적 지혜가 아닌 까닭에 여래께서는 궁극적 지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제가 지금 이 같은 경전을 듣고서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니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 오백 년 뒤에도 어떤 중생이 이 경전을 듣고 믿고 이해하고 받아 지닌다면 이 사람은 가장 경이로울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은 자아가 있다는 관념,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자아가 있다는 관념은 관념이 아니며, 개아가 있다는 관념, 중생이 있다는 관념, 영혼이 있다는 관념은 관념이 아닌 까닭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관념을 떠난 이를 부처님이라 말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청정한 행을 닦는다고 하더라도 만약 더럽거나 깨끗하다는 두 가지 모습이 마음 안에 있다면 두 가지 마음 모두 더러운 마음입니다. 상대가 있거나 분별이 있는 마음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마음에 어느 것이든 얻은 바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결코 실상(實相)이 아닙니다. 수보리 존자가 부처님의 깊은 뜻을 깨달아서 스스로 이해함을 드러냈으니, 업이 다하고 더러움이 제거되어 혜안이 명철해지면 경전을 믿고 이해하고 그 뜻을 받아드리는 데에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됩니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이 세상에 계시면서 법을 설할 때조차도 한량없는 중생들이 능히 믿고 이해하고 받아들이지 못했는데 왜 부처님의 열반 뒤 오백세를 말했을까요. 부처님이 계실 때에는 참된 진리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의혹까지 품은 하근기가 있다하더라도 부처님을 직접 찾아뵙고 질문을 하게 되면 부처님께서 마땅히 그들의 근기와 상황에 따라 진리를 설하시는 까닭에 모두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이 입멸하신 뒤 오백세 뒤 말법에 이르러서 부처님의 말씀을 모아 논 경전만이 있을 뿐이니, 만약 어떤 사람이 의심을 품고 있다고 해도 물어서 해결할 방법이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어리석고 미혹한 중생은 집착에 빠져 무생(無生)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고 모습에 집착을 해서 진리를 구하는 까닭으로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런 중에서도 경을 듣고 깨끗한 마음으로 공경하고 믿어서 생멸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 이가 있다고 한다면 이는 매우 희유하면서도 거룩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말씀하기를 제일희유(第一稀有)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입멸하신 뒤 마지막 오백세에 어떤 사람이 능히 반야바라밀법을 담은 경전에 깊은 신심을 내고 이해하고 따르는 사람이 있다면 이 사람에게는 아상(我相), 인상(人相), 중생상(衆生相), 수자상(壽者相)이 없을 것이니, 사상(四相)이 없다고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실상(實相)이라 이름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곧 부처님 마음입니다. 그런 까닭으로 금강경에서 말하기를 일체 모든 상을 떠난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한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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