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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인가

기자명 법보신문

“전장(戰場)에 나가 백만의 적과 싸워 이기는 그것보다/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기는 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승리거니./ 신들도 악마조차도/ 그리고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이제 그를 정복할 수는 없다.”(‘법구경’)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과 싸워 이긴 이들은 죽음의 차원마저 초월해 버린다. 역사는 결코 이런 이들을 시간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평할 수 없다.


가장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인가. 징기스칸, 알렉산더, 나폴레옹 등은 확실히 위대한 정복자였다. 그러나 그런 부류의 정복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위대한 정복자는 아니다. 그들은 결코 위대한 정복자가 아니라 지배욕에 불타던 미치광이들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이런 미치광이들을 위대한 영웅으로 치켜세우고 있으니 이 얼마나 웃기는 일인가. 그렇다면 정말로 위대한 정복자는 누구인가. …자기 자신을 정복한 사람이다. 정복하기 힘든 자기 자신을 정복하여 인간의 영혼에 불멸의 빛을 되살아나게 해준 분들이다.


우리나라의 절에 가면 중앙법당에 대웅전(大雄殿)이란 편액이 걸려있다. ‘대웅’이란 마하비라(Mahavira)의 번역이다. ‘마하’는 ‘위대한’, ‘비라’는 ‘영웅’이란 뜻이다. 위대한 영웅(대웅)은 부처님의 별명이다. 부처님은 왜 위대한 영웅인가. 그는 자기자신을 정복했기 때문이다. 가장 정복하기 어려운 나라(자기 자신)를 정복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천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줄을 잇고 있는 것이다.


허나 부처님이 만일 총칼로 이 세상을 정복했다면, 가는 곳마다 피를 뿌리며 승리, 승리를 외쳐댔다면 어찌 됐겠는가. 우린 결코 그를 따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부처님은 부처로서가 아니라 역사속의 한 정복자로써 그들의 반열에 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결코 이런 정복자의 길을 택하지 않았다. 모든 걸 버린 다음 자기 자신을 정복하기 위해서 수행자의 길을 택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진정한 의미에서의 정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보여줬던 것이다. 그래서 우린 이 젊음을 다바쳐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때론 취하여 ‘부처여 내 청춘을 보상하라’고 외쳐대며 그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부처님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정복자이다.


▲석지현 스님
석지현 스님은

1954년 부여 고란사 입산. 196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당선. 1977년 인도에서 순례를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수차례 미얀마, 티베트, 네팔, 이스라엘 등에서 방랑생활을 했다. 저서 및 역서로는 ‘불교를 찾아서’, ‘산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 ‘삶과 명상에 관한 깨달은 이의 이야기’, ‘바가바드기따’, ‘선으로 가는 길’, ‘법구경’, ‘벽암록’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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