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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상]

기자명 법보신문

“나는 다독〈多讀〉주의자였다”

10대에 자치통감 통달
출가전 철학서만 70권
장서가이자 독서광

 

▲성철 스님

본인의 체험을 바탕으로 ‘돈오돈수(頓悟頓修)’를 주장했던 성철 스님(1912~1993)이 제자들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했던 일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때문에 아무리 선가에서 ‘사교입선(捨敎入禪, 교리적 공부를 버리고 체험에 들어가라)’을 강조했다고 하기로서니 제자들에게 책을 읽지 말라고 가르치다니 이 무슨 말씀이냐는 항변이 있을 법도 하다.


하지만 도인의 경지는 남다른 법이다. 옛 중국의 대혜 종고 스님이 문자 선에 매달리는 승려들을 경책하는 방편으로 ‘벽암록’의 판목을 불사르며 사교입선을 주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서장’을 지어 수행자들이 지남으로 삼게 한 교학자이기도 했듯, 스님이 책을 읽지 말라고 한 뜻 또한 다르지 않았다. 그 증거는 정작 스님 자신이 책을 아끼고 모으는 장서가이자 독서광이었다는데서 잘 나타난다.


성철 스님은 스스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정독을 하기보다는 많은 책을 읽는 다독주의자였다”고 했을 만큼, 수없이 많은 책을 읽었다. 거처를 옮길 때마다 수 천 권의 책을 옮기는 일이 큰 걱정거리가 됐을 정도였다.


스님의 책 읽기는 출가 이전 어린 시절부터 몸에 밴 습관이었다. 서 너 살의 어린 나이부터 서당에서 한학 수업을 받아 한문에 능통했던 스님은 ‘사서삼경’을 비롯해 ‘논어’·‘맹자’·‘공자’ 등 ‘제자백가’의 사상서를 읽을 정도로 책 읽기에 몰두했고, 1920년 나이 아홉에 보통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중국 북송시대 사마광이 주(周)나라 위열왕(威烈王)이 진(晉)나라 3경(卿:韓 ·魏 ·趙氏)을 제후로 인정한 BC 403년부터 5대(五代) 후주(後周)의 세종(世宗) 때인 960년에 이르기까지 1362년간의 역사를 1년씩 묶어서 편찬한 ‘자치통감(資治通鑑)’을 통달하기도 했다.


스님이 보통학교에 다니면서 ‘삼국지’를 읽을 때는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하굣길에 나무그늘 아래서 독서삼매경에 빠지기 일쑤였고, 집안에서는 그때마다 어린 성철을 찾아 마을을 헤매는 풍경을 되풀이 할 정도로 책 읽기를 즐겼다. 또한 일본인들이 교육 정책을 바꿔 가르치는 신학문에도 관심이 많았고, 이를 배우기 위해 일본어를 익히는데도 주저하지 않았다. 때문에 일본어 수준 또한 날로 향상됐고, 건강 때문에 상급학교 진학을 포기한 이후에는 인근의 동경유학생들을 통해 일본어로 번역된 서양 철학서를 접했다. 이때 넉넉한 가정형편을 무기(?)로 유학생들이 갖고 있는 철학서를 쌀과 맞바꿔 읽기도 했다.


그리고 1932년 21세에 이르러 직접 정리한 ‘이영주서적기’에는 당시 읽은 ‘행복론’,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역사철학’, ‘장자남화경’, ‘소학’, ‘대학’, ‘하이네 시집’, ‘자본론’, ‘유물론’, ‘기독교 신구약성서’ 등 동서고금의 철학서적 70여 권의 제목이 기록돼 있어, 다독주의자임을 스스로 입증했다. 〈계속〉 

 

심정섭 기자 sjs88@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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