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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불의 가피

기자명 법보신문

A4 용지 크기의 밤색 목판 미소불 ‘인기’
환자·직원에겐 활력…곳곳서 보시 손길

미소불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은 놀라움이었다. 지그시 감은 눈과 부드러운 미소. 깊은 선정에 든 듯하면서도 한 없이 자비로운 표정. 간단한 선 몇 개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특징을 어쩜 저리 잘 표현했을까. 나도 저 부처님의 미소를 닮고 싶었다. 화려하지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위안을 줄 수 있는 존재. 어쩌면 수행이란 저 미소를 닮아가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라고 여겨졌다.


병원에 미소불 봉안 불사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지난해 7월초였다. 지도법사 소임을 처음 맡자마자 3일간 특실에서 장례식장까지 병실 전체를 꼼꼼히 돌아보았다. 첨단 의료기기에 깔끔한 시설. 흠 잡을 데 없었지만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여기는 분명 불교병원인데 불교적인 요소를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570여명의 의사와 간호사. 이 중 불자는 10~20%를 넘지 않는다고 했다. 이런 상태에서 불교색을 너무 강조하다가 자칫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기 십상이었다. 어떤 경우에라도 강요는 바람직하지 않다. 강요란 또 하나의 폭력이고, 폭력은 어떤 경우에라도 불교적일 수 없는 까닭이다.


그 때 문득 미소불이 떠올랐다. 나는 무릎을 쳤다. 미소불이라면 누구에게나 거부감이 없으면서도 불자들에겐 신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서각 솜씨가 뛰어난 중앙승가대 대학원 보운 스님께 미소불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리고 색상별, 크기별로 미소불을 제작했다. 아무리 좋더라도 소통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는 다양한 미소불이 잘 보이도록 법사실에 배치해 놓았다. 병원장님이나 의사, 간호사 선생님들이 올 때면 취지를 조심스럽게 말씀드리고 어느 부처님이 좋을까 물었다. 그러는 사이 의료진들 사이에서도 공감대가 확산돼 갔다. 그렇게 한 달 가량 지나 8월4일 드디어 미소불을 맨 위층 특실에 모실 수 있었다.


A4 용지 정도 크기의 밤색 목판 미소불이었다. 한 분을 모시는데 5만원, 뒷면에는 발원문도 쓸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보운 스님 등 주변의 도움을 얻어 조금씩 미소불 봉안을 해나갔다. 그렇게 두 달쯤 지났을 때였다. 간호부장님이 찾아오더니 환자들의 반응이 대단히 좋다고 했다. 법당에 못 오는 불자들은 미소불을 보며 기도한다고 했고, 불자가 아니더라도 미소불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거였다. 간호부장도 직원들이 십시일반 모았다며 불사에 보태라고 60만원을 보시했다.


미소불 봉안에 탄력이 붙은 것은 그 때부터였다. 병원 불자모임인 연우회도 100만원을 보시했고, 병원에 입원했던 스님들의 보시도 이어졌다. 거기에 퇴원하는 환자들은 집에서도 미소불을 모시고 싶다며 불사에 속속 동참했다. 그렇게 해서 병실, 장례식장, 휴게실 등 병원 곳곳에 미소불이 모셔졌다. 스님과 재가불자들은 물론 의료진과 환자들도 무척이나 좋아했다.


미소불은 곳곳에 활용됐다. 각종 행사 때 마스코트처럼 미소불이 포함된 것은 물론 미소불 손가방을 만들어 생일을 맞은 자원봉사자들에게 선물했다. 최근엔 목판화와 더불어 미소불 족자도 만들어 판매를 시작했다.


미소불로 생긴 수익금은 병원 측에서 관리하도록 하되 승가의료복지 기금, 자원봉사자 및 간병인 지원, 불자의료인 양성 기금으로 사용키로 했다. 실제 며칠 전 선방 스님 치료비에 100만원을 보시했으며, 신심 깊은 의료진 3명을 선발해 오는 3월 대만 자제공덕회 견학을 보내드리기로 했다. 이 모든 것이 미소불의 가피다. 세상에 미소보다 더 강한 것은 없다.      


대엽 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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