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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계,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2.14 10:48
  • 수정 2011.02.15 15:10
  • 댓글 0

세월이 모질다. 말 못하는 산 짐승이 파묻히는 때다. 봄이 온들 산으로 들로 나들이 갈 수 있겠는가. 저들의 시신을 밟고 설 자신이 없다. 짐승만 그런 게 아니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그랬다. 많은 사람이 직업인지 아르바이트인지 모르는 직장에서 부지불식간에 잘린다. 터벅터벅 죽은 자의 발걸음으로 집을 향한다. 영영 귀가하지 못하는 자도 있다. 도시에서 자행되는 살처분. 인간이 묻힌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불교계도 세월이 모질다. 그가 여당 대통령후보자격으로 조계사를 들를 때만 해도 불교계는 나름 장밋빛 전망이 있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흙빛 허무로 바뀌었다. 조계종 수장이 나선 시청 앞 집회를 기억하는가. 불교인들의 외침은 컸으나 멀리 가지 못했다. 수신해야 할 자가 수신을 거부해버렸다. 누구에게는 집단 생떼쓰기로 보였으리라.


가만히 생각해본다. 필자같이 후미진 곳에서 자조만 일삼는 자가 아니라 직접 종단을 이끄는 스님들은 지난 몇 년이 어땠을까. 온갖 험한 꼴을 당했을 것이다. 현 정부의 권력자들은 불교계에 통용되는 종교적 권위를 아예 인정하지 않는다. 지난해 발생한 여당 유력 정치인의 강남 좌파주지 발언은 민망할 정도로 적나라했다.


현 정권은 천주교 사제들의 시국발언을 두고 종교인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엉뚱하게 정교분리를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그런데 서울 한 복판에 좌파주지가 있어 되겠냐고 명령 비슷한 투정을 부리지 않았나. 이런 게 정교분리인가. 이러다간 교구본사 주지직도 청와대나 여의도에서 ‘오더’를 내릴지 모르겠다. 그때도 아마 가야산 좌파스님, 조계산 좌파스님하면서.


그런데 왜 이 정권은 불교계를 업신여길까. 왜 국회의원이나 관료들이 대놓고 불교를 폄하할까. 왜 그들은 그것을 무용담처럼 공공연하게 떠벌릴까. 왜 찍힌 그 ‘좌파주지스님’은 더 이상 주지스님이 아닐까. 왜 얼마 되지도 않는 불교예산은 날라 갔을까. 왜 별로 그러지 않던 조계종이 반정부 깃발을 내걸었을까. 현 정부가 기독교정권이여서일까. 저들이 정말 나빠서일까.


그래 담대하게 상식을 파괴하는 현 정부의 비상한 능력 탓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니다. 우리가 못나서다. 한 대 덜 맞으려 했지 자꾸 때리는 녀석의 손목을 비틀 생각은 못했다. 한 대 덜 맞으면 그것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내 주먹이 센지 약한지 확인 한 번 한 적이 없다. 불교계는 고분고분했을 뿐 정당하게 요구하지 못했다. 그러길 참 오래했다. 이젠 습관이 됐다. 이런 게 화합은 아닐 테다.


작년 예산안날치기 파동 때 템플스테이 예산이 전액 삭감되었다. 조계종단도 놀랐을 것이다. 정부나 여당이 이 정도로 나올지 몰랐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여권에서는 그것을 어떤 식으로 보전해주겠다는 말을 흘렸다. 월급 반 토막 쳐놓고서 하는 거 봐서 성과급로 보전 해 주겠다는 식이다. 자. 불교계는 성과급이라도 받을 것인가.


불교계는 좀 더 정치적이어야 한다. 불교인도 정치적이어야 한다. 불교를 버리고 정치적이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불교의 가치를 고집하는 게 오히려 정치적인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잔 수를 부리지도 말고 작은 이익에 흔들리지도 말자. 저들이 한 약속을 다시 훑어보고 저들이 저버린 것들을 확인하자. 인과법이 필요한 대목은 그대로 실천해야 한다. 망각하지 말고.


▲김영진 HK연구교수
정치권은 내년 대선 준비를 시작했다. 불교계도 준비해야 한다. 정치권이 벌써부터 내 건 공약이 얼마나 불교 가치에 부합하는지 따져야 한다. 더구나 정치권에 요구할 내용을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강하게 요구해야 한다. 현재 조계종단의 정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은 높이 살만하다. 단순한 반발이 아니라 내년까지 시야에 넣고 요구를 만들어야 한다. 올해와 내년은 좀 더 정치적이어야 할 것 같다.


김영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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