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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갈등과 2세들의 정체성 혼란

기자명 법보신문

한국문화와 미국문화의 차이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2세들은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한다. 가정에서는 한국식으로 행동해야 하고, 학교나 사회에 나가면 미국적 가치에 따라 행동하기를 요구받는다. 간단한 예로, 미국학교에서는 선생님이든 학생이든 먼저 온 사람이 먼저 먹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지만 한국 가정에서 어른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 밥을 먹었다간 버릇없는 아이가 되어버린다. 반면, 집에서는 찌게나 반찬을 늘어놓고 함께 먹지만 미국인과 식사할 때 이렇게 행동했다간 비위생적이라며 기겁을 할 것이다.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생활했던 어느 소설가의 아들이 일본에서는 상대방에게 밥 먹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는 식사예절 때문에 그릇을 들고 식사하도록 배웠다가 한국에 온 뒤 그릇을 들고 식사하는 것이 쌍것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할아버지의 꾸지람을 들은 뒤 아예 얼굴을 그릇에 파묻고 밥을 먹었다는 웃지 못 할 일화가 전해지기도 하지만, 이런 경험을 몇 차례 하다보면 아이들은 심한 가치관의 혼란에 빠지게 된다.


한편, 한국을 자발적으로 떠나 왔지만 한국에서 중산층 이상이었던 이민1세대들은 스스로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동시에 미국 문화와 미국적인 생활 방식을 천박하고 물질적이라고 생각한다. 자녀들을 미국학교에 보내고 빨리 영어 배우기를 채근하면서도 자식들이 미국학생들과 어울리면서 미국의 나쁜 문화에 물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려 마약을 하거나 폭력을 행사하거나 또는 무분별한 성적 방탕에 빠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식들의 행동에 일일이 간섭하면서 어른 말을 듣지 않는다고 나무란다.


그러나 어른들이 강요하는 ‘한국적인 것’은 이민2세들에겐 편협하고 불합리한 것으로 비쳐진다. 한국적 사고만 옳고 한국문화가 가장 뛰어나다고 주장하면서도 미국에서의 세속적이고 물질적 성공을 추구하는 부모 세대들이 위선적이라고 생각된다. 반면, 상하 위계질서를 강요하지 않는 자유롭고 개방적인 미국문화가 편안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학교와 사회에서 점점 더 미국적인 가치와 행동 방식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한인2세들은 자신들이 겪는 고충이나 어려움을 이해하기보다 한국적 가치와 행동방식을 강요하는 부모나 어른들에 대하여 심한 단절을 느끼게 되고 심지어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부인하게 되기도 한다.


한인교회에 대해 느끼는 한인2세들의 감정도 이와 비슷하다. 교회의 중요한 일들은 어른들 선에서 결정되고 젊은 사람들은 항상 애 취급을 받을 뿐 존중해주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의 병폐인 분파를 나누거나 같은 한인교회끼리 싸우는 등 알력이 이민사회에도 그대로 반복되고 있다.


어른들은 한인2세들의 신앙이 견고하지 못하다고 비난하지만, 한인2세들이 보기에 어른들이 위선적이다. 목회 때마다 세속적인 성공을 하거나 헌금을 많이 한 사람들 일으켜 세워 칭찬을 하면서도 정작 미국에 온 지 100년이 넘는 한인교회는 미국사회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을 방임하고 있다. 한인교회는 주류사회에 동화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은 채 미국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에 용기 있게 발언하거나 대처하지 못하고 그저 이민1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주변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명법 스님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한인2세들은 한인교회가 자신들이 살아가는 세계와 완전히 격리되어 있다고 느끼는데, 바로 이런 단절감이 교회를 떠나는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한다.


명법 스님 운문사·서울대 강사 myeongbeo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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