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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마음을 의지하는 후원자

기자명 법보신문

사소한 일에도 관심 보일 때 상호 신뢰 형성

첫 만남에서 악수하며 정 나누고
마음의 지주가 되도록 최선 다해

 

 

▲일본의 한 방송프로그램에 출연해 강연하는 히로나카 스님.

 


‘삼보(三步)의 거리’라는 말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 너무 간섭하지 말고, 그렇다고 내버려두지도 말고, 약간의 거리를 두면서 서로 편안함을 느끼는 그러한 마음의 거리를 말한다. 부부간도 부모자식간도 친구사이에도 혹은 동네사람들끼리도 항상 ‘삼보의 거리’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타인과의 ‘삼보의 거리’는 상대방에게 다가서는 마음, 함께 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학생이라면 더불어 공부하고 소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서로의 의견을 나누고, 어떨 때는 맞붙어 겨루기도 하면서 함께하는 마음으로 학교를 같이 다니고 같이 졸업하고 같이 진학하며, 더불어 사는 마음으로 아이들은 성장해 간다. 어른들도 같은 동네에 사는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가짐으로 접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 절에서 지내는 아이들은 항상 이런 말을 한다. “아저씨가 데려다주니까 나는 학교에 갈 수 있다”, “아저씨가 같이 가주니까 나는 직장에 다닌다”라고. 실제로는 내가 매일매일 아이들을 학교나 직장으로 데려다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내가 부르면 항상 아저씨가 달려와서 나를 도와준다”라는 안도감과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그들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후원자’란 마음을 의지하는 지주(支柱)라고도 할 수 있다. 후원자와의 만남은 우리 인생에 큰 보탬이 된다. 부모형제,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 역할을 하기도 하고, 나 같은 불자 혹은 학교 선생님, 아니면 사람이 아닌 야구나 축구 같은 운동을 비롯해 음악, 애완견 등등 인생에서 만나는 모든 것이 그 사람에게 ‘후원자’ 즉 마음의 지주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아이들에게 ‘후원자’를 많이 만들어주는 것이 어른들의 역할이라고 나는 항상 주장한다.


강연회나 법회에서 나를 찾아온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우리 친구가 되자”고 악수를 재촉한다.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는 것이다. 친구란 서로에게 따스함을 주는 존재이다. 처음 만나는 사람하고 꼭 악수를 하는 것은 손을 잡으면서 느끼는 따스함이 아이들에게는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애타는 마음으로 나의 강연회를 찾아온 아이들과 악수를 하는 순간, 나는 이 아이를 받아들이며 어떤 식으로 같이 생활하면 좋을까 생각한다. 악수하는 순간 그 아이에게 맞는 교육프로그램이 내 머리 속에서 그려지는 것이다.

 

곤경에 빠진 자는 기다릴 여유 없어
도움 요청하면 그날 바로 달려가야

 

 

▲청소년들이 스님에게 보내온 상담 편지.

 


상대방이 어른이든 아이든 상관없이 나는 항상 99프로의 의심(疑心)을 가지며 100프로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왠지 모순된 이야기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그 아이의 부모가 아니다.

 

만약 부모라면 무조건 100프로 믿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삼보의 거리’를 지키는‘후원자’다. 아이들에겐 아저씨이자 친구다. 핏줄은 달라도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나면 바로 달려가는 마음의 지주인 아저씨다.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부모한테 말 못하는 이야기도 할 수가 있을 것이고, 친구라면 남에게 하기 어려운 비밀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아이를 나에게 맡기는 부모에게는 나를 친족이라 생각하라고 말한다. 가족이나 가까운 이웃에게 말 못하는 이야기도 어떨 때는 작은아버지나 삼촌한테 말할 수 있듯이 나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하여튼 첫 만남의 악수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고 본다. 이 때 얼마나 상대방에게 나의 따스함을 건네줄 수 있을지가 문제다. 나를 찾아온 아이나 부모는 “이 사람은 얼마나 자기를 이해해 줄까?”라는 의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마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따스함을 느끼게 하면서 먼저 안심감을 심어주어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첫 만남에서 환한 얼굴을 하는 것이다.


심리 상담을 맡은 카운슬러는 항상 환자가 찾아오는 것을 기다리는데, 나는 곤경에 빠진 사람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바로 달려간다. 나는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인 행동으로 상담에 임하는 공세(攻勢)의 카운슬러이다. 물론 속도는 아주 중요하다. 전화나 팩스로 도움을 구하는 요청이 들어오면 바로 그날 연락을 해서 될 수 있는 한 그날 거기로 찾아간다.


곤경에 빠진 자는 기다릴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내가 빠른 시간내에 찾아감으로서 그들과 확고한 신뢰관계를 구축할 수가 있다. 그 사람을 위해 어떤 상황이든지 시간을 만들어 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얼마나 빨리 갈 수 있을까가 승부인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것이 바로 관용(寬容)의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모로서 해야 할 일 중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아이에게 많은 관심을 가지는 일이다. 그리고 아이의 작은 변화라도 무심코 넘기거나 빠뜨리지 말아야한다. 함께 식사하는 습관이 있다면 “평소 잘 먹는 아이가 오늘따라 왜 밥을 남겼을까”, “왜 학교 이야기를 안 할까” 등 사소한 궁금증을 가지고 살피는 것이다. 그러면 바로 아이의 마음을 잡을 수가 있을 것이다.


아침 시간 아무리 바빠도 등교하는 아이를 부모가 현관문에서 배웅하라. 도저히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없으면 아침식사 시간이라도 꼭 아이와 함께 식탁에 앉아라.


“아빠는 오늘도 열심히 일할께. 너도 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해라. 엄마도 집 잘 지켜주고!” 그런 아버지의 말이 아이의 아침을 활기차게 연다.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은 따뜻한 아침식사에 나타나고, 그 마음이 가족에게 꼭 전달된다. 부부가 사이좋게 서로 공경하면서 지내야만이 아이가 그 마음을 받아들여 원만한 가정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학교를 가기 싫어하는 불등교(不登校)나 비행(非行) 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해 한쪽 부모만 있는 가정일 경우, 육아와 일의 양립(兩立)이 힘들 수도 있다. 때문에 아이와 함께 식사할 시간조차 내기 힘든 형편일 수도 있다.


▲히로나카 스님
만약 아이가 혼자 식사할 경우 어머니나 아버지가 집을 나가기 전에 쪽지에다 간단히 한마디 적어서 식탁에 놓고 나가도록 하라. 아무리 짧은 말이라도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작은 쪽지 한 장에서도 아이들은 부모의 따스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번역=도서출판 토향 도다 이쿠코
자료제공=주식회사 日本標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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