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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영화처럼 지나온 부처님 성지

기자명 법보신문

부처님 자취 되짚어 ‘마음’ 닮아가는 여행

 

▲마하깔라 동굴사원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 부처님.

 

 

붓담 샤라남 갓차미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다르맘 샤라남 갓차미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합니다)
상감 샤라남 갓차미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전날처럼 보드가야 대탑을 돌고나서 보리수나무 뒤편에 마련된 법회장소로 가보았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보리수나무 앞 담장 안쪽에 마련된 불단을 향해 앉아 있었다. 한 시간 가량이 흘렀을까, 삼귀의가 산스크리트어로 조용하면서도 차분한 음색으로 울려 퍼진다. 까규파는 해마다 팔관재계(八關齋戒) 형식으로 일체 부처님들과 일체 스승들의 수행이 완성되기를, 지난 세월 베풀어 주신 법향에 감사를 올린다. 우주를 이루고 있는 일체 생명과 중생들의 행복을 서원하는 ‘기원법회’로 20년 전부터 봉행해 왔다. 법회는 묵은해를 보내야 하는 시점인 12월25일부터 31일까지 일주일동안 계속된다.


법회가 시작되기 전 나는 주변이 어둡기도 하고 누구에게 물어볼 수도 없어 법석의 중앙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법석 여기저기에는 티베트의 라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기 전 자리를 정리하던 티베트인이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한국 스님’이라고 했더니 한국에서 온 스님들의 지정석으로 나를 안내해 주었다. 보드가야에서 이틀 동안 한명의 한국 사람도 본적이 없었는데 10명이 넘는 한국의 스님들이 앉아 있으니 반갑기가 그지 없다.


한결같이 정성스런 칠일 법회

 

 

보드가야의 기원법회에서 설법 하고 있는 까르마파.

 


린포체가 삼귀의를 마치고 팔관재계를 설하면 함께 따라 외우면서 하루 동안 여덟 가지를 지킬 것을 약속한 뒤 비로소 법회가 시작된다. 팔관재계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어느 불자의 집에 들르셨을 때 설하셨다고 전해진다. 관(關)은 금지한다는 뜻이며 재(齋)는 오전에 한 끼만 먹고 오후에는 음식을 멀리한다는 의미이다.


그 하나하나의 계목을 보면 첫째 살생하지 말라, 둘째 도둑질하지 말라, 셋째 음행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 하지 말라, 다섯째 술 마시지 말라, 여섯째 꽃다발을 쓰거나 향을 바르고 노래하고 춤추며 가서 구경하지 말라, 일곱째 높고 넓고 크고 잘 꾸민 평상에 앉지 말라, 여덟째 때 아닌 때에 먹지 말라 등이다.


티베트의 어린 라마들이 아침 6시 반이 되자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티베트 빵인 ‘난’과 우유차를 불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오전 9시와 오후 3시에는 우유차 만 준다고 한다. 낮 12시 점심공양을 든 이후에는 음식을 먹지 않는다. 칠일의 법회기간 동안 매일 똑같이 아침마다 삼귀의를 염송하고 팔관재계를 수지하고 나자 그날의 행사가 시작됐다.


수많은 대중들이 모였는데도 법회는 고요히 진행됐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법을 설하실 때에도 이런 장엄한 분위기가 이어졌으리라. 한국인 스님들 외에도 한국의 불자들도 함께 법회에 동참했었는데 인도에서 수행이나 공부를 하는 스님들과 마음을 내 법회에 참석했단다. 법문 내용은 동시통역을 통해 경청할 수 있는데 단파 라디오를 켜 주파수를 맞추면 각 나라의 언어로 번역되는 방송을 들을 수 있다. 대개 통역은 7~8개국의 언어로 진행된다고 한다.


“스님, 조금 있다가 어디를 간다는 데요.”
법회 셋째 날 호주에서 함께 온 ‘알버트’가 쉬는 시간이 되자 나에게 일러 주었다. 그리고는 아침 8시께 시킴하우스로 이동해 다시 버스에 올랐다.
“린포체님은 안보이시네요.”
“지금은 린포체님이 빠져 나올 수 없나 봅니다.”


린포체는 법회 기간에 내내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까르마파와 불단 맨 앞줄에 앉은 린포체들, 까규파 스님들이 일주일 간 온 마음을 쏟아 법회를 진행한다. 숨이 막힐 것 같은 장엄한 그 모습은 보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짜릿하다. 시킴에서 일주일간 기도에 동참했을 때 받은 감동도 적지 않았는데 보드가야에서의 기원법회는 또 다른 감동이 다가왔다. 절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아하, 이것이 바로 부처님을 따르는 불심(佛心)의 힘이로구나.”
린포체의 배려로 한 시간 가량 달려서 도착한 곳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원숭이들로부터 공양을 받은 장소이다. 차에서 내리니 소똥을 손으로 반죽해서 벽에 붙여 말리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1000개의 계단을 올라가야 정상에 도달할 수 있는 곳으로, 천천히 포행하 듯 올라가 보니 맨 꼭대기에는 힌두교 건물이 있었다. 앞마당에는 ‘룽다’가 여러 겹으로 휘날리고 있었으며 힌두교 건물 뒤쪽으로 가보니 윗부분에는 앉을 수 있을 정도의 면적이 되는 장소가 눈에 띄었다. 그곳에 올라앉아 아랫마을을 내려다보면서 잠시 입정에 들었다. 영축산 만큼 아늑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곳인지라 편안한 기분에 취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일행이 참배한 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의 분노의 화신인 ‘마하깔라’와 연관된 ‘차툭파’(Cha Tukpa)라는 동굴로, 검은색 얼굴과 여섯 개의 팔을 지닌 분을 본존으로 모신 도량이었다. 산에 오르기 전 시킴에서 온 사람들은 누군가와 말을 하는가 싶더니 이윽고 손톱을 자르고 머리카락을 조금씩 잘라 돌로 된 화덕에 태우는 것을 보았다. 그런 행동이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다.
“안 좋은 기운을 물리치기 위한 정화의식입니다.”


손톱과 머리카락을 태운 사람들이 돌 위에 누우면 의식을 진행하는 사람이 작은 칼로 몸 전체를 자르는 시늉을 했다. 아마도 힌두교식 의식인 것 같았는데 그러한 행위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사뭇 진지해 보였다. 순간 숙연해졌다. 일행들의 의식도 모두 끝나고 드디어 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길가에 많은 인도 사람들이 앉아 있었는데 나를 보더니 우리말로 ‘스님’이라고 하면서 손을 내민다. 측은한 마음이 일었지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는 못했다. 2주전이라고 한다. 두 명의 티베트 비구니들이 이들에게 돈을 주다가 서로 돈을 받기 위해 갑자기 많은 인파가 덤벼들었고 인파에 깔려 몇몇 사람이 죽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좋지 않은 소식을 접하고 나니 그냥 무정하게 오를 뿐이다.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주는 인도 사람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영 편하지 않다. 나는 왜 사탕도 준비하지 못했나 하며 책망한다.


정상에 막 오르니 티베트 스님들이 관리하는 조그마한 절이 있었다. 그 절의 중심은 석굴이다. 석굴 근처에 가 보니 산스크리트어 독경소리가 들려왔다. 신기했다.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동굴에서 독경소리라니, 일행은 독경소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안으로 향했다. 길이라고 해 봐야 10m도 되지 않은 작은 동굴이었다. 나는 길가에 앉아 있던 가난한 인도인들이 자꾸 떠올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목에서도 “스님! 스님!”이라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미안해서였던가, 길로 내려오지 못하고 풀이 거의 자라지 않는 산등성이를 따라 내려왔다. 그들의 고통스런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한국식 불상에 우리말로 “스님”

 

 

부처님 고행성지를 지키고 있는 보리수.

 


산등성이에서 내려와 보니 주차장 옆에 ‘수자타 아카데미’란 간판이 있는 건물을 보고 쪽문 안쪽으로 들어가 보았다. 경비가 총을 들고 있는데 나에게 “한국에서 왔느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안으로 들어가라며 손으로 방향을 표시한다. 무슨 일인지 하고 올라가 보니 2층에 한국 불상을 모신 법당이 있었다. 오랜만에 뵙는 한국의 부처님께 정성스레 삼배를 올렸다. 아래층에 있던 한국 젊은이의 설명을 들어보니 ‘수자타 아카데미’는 정토회의 지도법사인 법륜 스님이 한국의 불자들과 함께 건립한 ‘학교’였다. 20여년 전 법륜 스님께서 인도성지순례를 위해 이곳에 왔을 때 구걸하는 불가촉천민 아이들을 보고 자비의 마음을 일으켜 학교를 지었다고 한다. 그러한 인연 공덕을 알고 있기에 다른 일행이 내려오는 것을 기다렸다가 학교에 데리고 가 소개했다. 그곳의 사람들이 ‘스님’이라는 말을 또렷하게 발음하는 연유를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수자타 아카데미’에 이어 일행이 들른 곳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고행을 하시던 성지로, 그곳엔 보리수나무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관리인들은 그곳에 명상센터를 지을 것이라며 보시를 하라고 권했다. 이마에 빨간 점을 칠한 것으로 보아 힌두교도인 듯하다. 그 옛날 이곳은 나무가 울창한 숲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황량한 벌판이라니, ‘수자타’라는 여인이 싯다르타 태자에게 우유죽을 공양 올린 장소가 건너편에 보인다. 예전엔 우리에게 ‘니련선하’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계곡물이 흘렀을 것이지만 주변이 황폐해진 까닭에 이젠 끊어질듯 끊어질듯 이어진 물줄기만 힘겹게 흐르고 있었다. 물가로 가보니 거기에도 보리수나무가 서 있었고 그 옆에는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기리기 위해 작은 건물을 조성해 놓았는데 공양하는 모습을 형상화 한 조형물도 있었다. 부처님의 수행 행적을 낱낱이 친견한 뒤 인도의 일몰을 바라보며 보드가야로 돌아왔다.


법회 마지막 날에는 몇 가지 특이한 행사가 진행됐다. 점심 공양시간이 되어 대탑에서 힘께 법회에 동참했던 출가자들이 줄을 서서 대탑의 옆에 있는 공원으로 향했다. 길가에 모여 있던 세계 각국의 불자들은 스님들이 들고 있던 발우에 과자와 음식 등 공양물을 보시해 탁발 공덕을 지었다. 티베트 스님들의 발우는 우리의 그것과 너무나도 비슷했다.


오후 5시경 마지막 기도문을 읽은 뒤 모든 대중들이 하얀 ‘카다’를 흔들면서 세상의 행복을 함께 기원 할 때가 되자 맑은 기도의 힘이 느껴졌다. 나라를 잃은 티베트 사람들이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일체 존재들의 행복을 염원하고 기도하고 마음을 정화해 가는 그들의 일행에 동참해 보니 자연스레 나의 마음도 그들과 동화되어 갔다.


나라 잃고도 세상의 행복 기원

 

 

부처님께서 수자타의 우유죽 공양을 받은 곳에 세워진 수자타사원.

 


다음 날에는 법회를 봉행했던 장소를 정리하는 일을 도왔다. 불단을 치우다 보니 그곳을 장식한 사람들은 다름 아닌 한국의 스님들이었다. 그들은 티베트의 망명정부가 있는 다람살라에서 달라이라마나 까르마파를 모시고 수행 정진하는 대중들이었다.


깨끗이 불단을 정리한 뒤 대탑 주변에 있는 작은 탑들을 둘러보았다. 무슨 연유로 조성했는지, 누구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위대하신 부처님의 가르침을 돌로 된 탑으로 표현하려 했던 선대 스님들과 불자들의 정성은 지극한 불심(佛心)의 표현이리라.


그날 저녁에는 까르마파 존자가 각본을 쓴 연극을 보러갔다. ‘밀라레빠’의 일대기를 그린 연극으로, 내가 가장 먼저 접했던 티베트 불교에 관한 책이 바로 ‘밀라레빠’의 일대기에 관한 것이었다. 줄거리를 알고 있어서 그런지 티베트어 연극이 그리 낯설지 않다. 눈으로만 이해를 하는데도 연극의 장면 장면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우리 일행은 다음날 린포체와 함께 초전법륜 성지인 ‘사르나트’로 향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다섯 비구에게 법을 설한 사슴동산인 녹야원이 있는 사르나트, 거리는 그리 만만치 않았지만 대자비의 발로로 초전법륜이란 법석을 펼친 것을 알고 있기에 먼 거리는 그리 부담스럽지 않다. 간이식당에 들러 공양을 하면서 사르나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해진 저녁이었다. 차에서 내리니 차가운 기운이 밀려왔다. 봄에서 갑자기 겨울로 되돌아 온 느낌이다. 저녁 공양을 하고 나서 숙소로 돌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었다. 인도의 호텔은 말만 호텔이지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아 대충 얼굴만 씻고 이불 속으로 몸을 숨겼다. 한참이 지나서야 이불에서 미지근한 온기가 풍겨 나온다. 자연스레 성지 곳곳의 풍경이 되새기며 홀로 미소를 짓는다.


‘법화경’을 설한 영축산과 불교 최고의 교육도량이었던 나란다 대학, 부처님의 고행성지인 전정각산, 초전법륜 성지인 녹야원…,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인도를 순례하는 것은 나만의 수행일기를 써 내려가는 ‘마음여행’이라는 사실이 새삼 다가온다.


시드니 보안 스님 boansuni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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