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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등치는 사회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3.14 14:38
  • 수정 2011.03.15 09:49
  • 댓글 0

누구나 꿈이 있었다. 그래 꿈이 있었다는 표현이 맞다. 많은 이들에게 꿈 얘기는 그저 추억이다. 멋모를 적 나는 뭐가 될 거라고 허풍을 떨었지. 선생님하고 대통령 가운데 뭐가 될까 고민도 했지. 그야말로 꿈을 꾸었다. 하지만 이제 아니다. 이 시대에 꿈은 매뉴얼이 있다. 대학 가는 게 꿈이고, 취직하는 게 꿈이다. 이 정도도 힘들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가치를 실현하는 게 아니라 취직해서 먹고 사는 게 꿈이다. 존재하는 게 꿈인 웃긴 현실이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장래 꿈이 뭐냐고 묻는 게 민망한 시대다. 다섯 살 배기 아이가 “제 꿈은 취직하는 거요” 해 버리면 어떻게 하나. 듣고 있는 부모나 어른들은 정말 미안할 것이다. 일찍 철이 들어서 좋긴 하다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아버지 앞에서 나는 어째 면목이 없다. 꿈도 없는 아이를 만들었냐고 나무라실 것 같다.


그래도 정신 못 차리고 고흐 같은 화가가 되겠다는 둥, 슈바이처 같은 위인이 되겠다는 둥 하면 미친다. 어른들에게는 그게 가난하게 살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서 이렇게 고쳐 준다. “미술 선생님이 되면 되겠네.” “그래 의사가 되면 되겠네.” 결국 “취직하면 되겠네”로 회귀한다. 아이들이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뛰어나길 바라면서 정작 꿈꾸기를 말린다. 이런 엉터리가 다 있나. 이게 바로 혼선이다. 자연을 벗 삼아 노는 아이가 좋아 보이다가도 녀석이 파브르 같은 곤충학자라도 되겠다고 하면 어쩌나 싶다. 생물학과 간다고 하면 어쩌지.


부모님 반대에도 불구하고 꿈을 꾸는 아이들이 있다. 그것을 실현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이 있다. 기특하지 않은가. 별로 보장은 없지만 오로지 그것을 이루면 세상을 다 가질 것 같은 그런 열정 같은 게 그들에게 있다. 프로야구 2군 선수는 1군 경기만 나갈 수 있으면 다 될 것 같다. 무보수로 몇 년째 연습생 생활하는 연예인 지망생은 텔레비전 한 번 나가면 무슨 가문의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허망하지만 그들에겐 절실하다. 일찌감치 꿈꾸기를 포기한 아이보다는 낫지 않은가.


하지만 세상은 무섭다. 젊은이의 꿈을 등치는 자들이 있다. 좀 많다. 요즘 세간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는 고(故) 장자연. 그녀는 딱 2년 전 자살을 했다. 그런데 자살이 아니라 거의 타살처럼 보였다. 그녀를 괴롭힌 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찰이나 검찰은 그 유명한 ‘무늬만 수사’를 하더니 종결했다. ‘무혐의’라는 감로수를 뿌리며. 누가 밀어 떨어져 죽었는데 범인은 중력이라고 하는 꼴이다. 민 사람은 죄 없단다.


최근 모 방송에서 그녀가 썼다고 추측되는 편지를 여러 통 공개했다. 그러자 다시 그 일이 불거졌다. 편지에는 그녀의 분노가 있었고, 슬픔이 있었다. 얼토당토않은 상황에서 저 앞에 있는 꿈을 이루려고 바보짓을 했다. 그녀는 ‘이게 최선인가?’ 하는 회한 속에서 계속 살았을 테다. 그녀 주위에는 그녀의 꿈을 이루게 해주겠다며 그녀를 유린한 자들이 여럿 있어 보인다.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열정 밖에 없는 젊은이들을 농락한다. 그들에게 그것은 일상이다. 당연히 누려야할 것으로 인식되는 모양이다. 슬픈 사실은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라는 데 있다. 답답하다.


▲김영진 연구교수
비단 세간사만 그런가. 불교계는 어떤가. 조계종만 하더라도 일 년에 수백 명씩 출가자를 배출한다. 사미나 사미니가 된 그들도 젊고 그들도 꿈이 있다. 주체 못할 열정 때문에 산사에 당도하지 않았나. 그리곤 계단(戒壇)에서 엄청난 서원도 세우지 않았나. 그게 바로 꿈꾸기 아닌가. 그런데 종단은 젊은 사미의 꿈이 이루어지는 구조인가. 젊은 사미는 너무 빨리 중년이 되지 않는가. 너무 빨리 생활인으로 전락하지 않는가. 꿈이 그저 기억으로만 있는. 열정을 얼른 소비시키고 마는 구조는 되지 말아야 한다.

 

김영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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