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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봉사자 정 거사님

기자명 법보신문

칠순나이에도 허드렛일 맡아 봉사
대장암 딛고 건강하게 다시 뵙기를

병원은 생로병사가 응축된 곳이다. 이곳엔 늘 태어나고 늙고 아프고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도 다양하다. 아픈 사람, 치료하고 간호하는 사람, 행정을 맡은 사람, 병문안 오는 사람 등등.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있다. 바로 자원봉사자다. 이들 봉사자들은 병원 안내에서부터 차트 전달, 병실 청소, 시트 교환 여러 일들을 담당한다.


우리 병원도 마찬가지다. 15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은 병원 곳곳에서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 분들이 안 계시면 당장 병원 업무에 큰 차질을 빚을 정도로 역할이 막중하다.


우리 법당에서는 이 분들을 위해 매월 생일법회, 산행, 명상법회를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그 분들이 금쪽같은 시간을 내주는 만큼 우리도 그 분들께 무언가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에서다. 병원에 있으면서 가끔 봉사가 보살의 길이란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말이나 생각을 넘어 온몸으로 나누고 자비를 실천하기 때문이다.


정대호 거사님도 그 중의 한 분이다. 정 거사님은 내가 이곳에 지도법사로 오기 전부터 봉사활동을 하셨다. 서울 성동에서 작은 인쇄업을 운영하시는 거사님은 칠순 가까운 나이에도 매주 수요일마다 병원을 찾았다. 꼬박 2시간 거리였지만 늦거나 빠지는 날이 없었다. 오히려 새벽같이 도착해 법당에 들른 뒤 침대를 나르거나 허드렛일을 도맡아했다. 얼굴 한 번 찡그리는 일이 없었고 늘 당신의 필요한 곳에 따사로운 손길을 내밀곤 했다.


정 거사님은 한때 큰 사업을 했다고 한다. 불심 깊었던 정 거사님은 당시에도 여러 군법당을 찾아가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다고 한다. 그러나 빚보증을 잘못서는 등 두세 번 사업 실패를 겪은 뒤엔 물질이 아닌 몸을 통한 보시로 방향을 바꾸셨다. 그런 정 거사님은 지난해 추석 건강검진 때 자신이 대장암에 걸렸음을 알았고 집과 인쇄소에서 가까운 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 받은 다음 주에도 어김없이 우리 병원을 찾아 자원봉사를 하셨다. 작고 왜소한 체격이지만 상대를 돕고 배려하는 마음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컸다. 지난해 동짓날이었다. 거사님은 봉사하는 날이 아님에도 나오셨다. 법당에서 동지 팥죽 2000명을 해 돌린다는데 혹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는 거였다. 한사코 말렸지만 거사님은 아픈 몸을 이끌고 묵묵히 병원 곳곳에 팥죽을 배달했다. 참다운 보살행이 바로 저런 것이 아닐까.


하지만 대장암은 그런 거사님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3개월 뒤 재검사에서 다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결과가 나왔다. 거사님은 이번엔 꼭 불교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싶다고 했다. 그러나 수술이 간단치 않았다. 일주일이면 퇴원할 줄 알았는데 3주나 입원해야 했다. 그 탓에 수술비도 만만찮았다. 더욱이 입원기간이 길어져 일에도 많은 차질이 빚어졌다.


우리는 거사님을 도우려 이리저리 궁리했고 어렵게 만든 돈을 전달했다. 그러나 거사님은 친척들에게서 이미 돈을 마련했다며 더 곤란한 분들을 위해 써달라고 사양했다. 그러면서 거사님은 한 달 뒤 건강도 되찾고 경제적인 손실도 만회하고 올테니 그 때 다시 봉사할 수 있도록 해달라며 환한 미소를 남긴 채 병원 문을 나섰다.


자원봉사도 수행의 길이다. 나는 떠나는 정 거사님의 뒷모습을 향해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합장하고 깊이 고개를 숙였다.          


대엽스님 동국대병원 지도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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