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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아누룻다

기자명 법보신문

용맹정진으로 지혜의 눈을 얻은 천안제일〈天眼第一〉

석가족 왕족으로 태어나 데와닷타 등과 출가
50여년간 앉지도 눕지도 않고 수행에만 전념

 

 

▲삽화=김재일 화백

 


부처님의 명성이 고향 카필라왓투까지 전해지자, 부처님과 같은 종족인 석가족 젊은이들의 가슴은 두근거렸다.
“우리 종족으로부터 부처님이 나타나셨다니,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 무렵, 부처님의 사촌 동생인 마하나마·아누룻다 형제도 이 소식을 전해 들으며 출가의 뜻을 키우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부처님이 석가족의 영역 근처에 있던 아누피야라는 마을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접한 두 사람은 흥분하여 진지하게 의논했다.


“석가족으로부터 그렇게 훌륭한 분이 나오셨는데 우리 가문에서도 누군가 출가해야 하지 않겠는가. 만약 하지 않는다면 정말 부끄러운 일이네.”

하지만 둘 다 출가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 한 명은 대를 이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의논 끝에 결국 아누룻다가 출가하고 마하나마는 집에 남기로 했다.


아누룻다는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고자 서둘러 어머니를 찾아가 출가의 뜻을 전했다. 하지만 어머니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죽어도 사랑하는 아들과 헤어지고 싶지 않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아누룻다 역시 단념할 수는 없었다. 두 사람 간에 언쟁이 되풀이되던 어느 날, 아누룻다의 어머니는 한 가지 제안을 했다.

“만약 밧디야가 출가한다면,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석가족의 명문 귀족 출신이었던 밧디야는 아누룻다의 친구이자 이미 석가족의 왕이라 불리며 정치적 입지를 굳힌 자였다. 이런 밧디야가 모든 것을 버리고 출가의 길을 선택할 리 없다고 판단한 어머니의 묘안이었다. 아누룻다는 한 가닥 희망을 품고 그 길로 밧디야에게 달려가 함께 출가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부처님의 인격에 호의를 갖고 있던 밧디야는 출가에 대해 부정적이지 않았지만 이미 높은 지위에 있던 터라 신변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7년만 기다려 주게. 그러면 내 모든 것을 정리하고 함께 출가하겠네.”
“7년씩이나 어찌 기다리라는 말인가.”


이렇게 해서 7년이 6년, 5년, 4년이 되다 결국 밧디야의 입에서 일주일만 기다려 달라는 말이 나오기에 이르렀다. 아누룻다의 열렬한 의지가 밧디야를 움직인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 둘은 출가하게 되었다. 이때 소식을 들은 아난다와 데와닷타, 바구, 캄빌라 그리고 이발사였던 우파리가 합류하면서, 결국 7명의 석가족 청년이 출가하게 된다. 아누룻다의 열의가 석가족 명문가의 청년들, 그리고 이발사 우파리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 준 순간이었다.


평생 잠들지 않을 것 부처님께 맹세


이렇듯 강한 열망을 가지고 출가한 아누룻다였지만, 이상과 현실 사이에는 항상 채우기 어려운 부분이 있기 마련. 태어나서부터 줄곧 안락한 생활을 해왔던 그에게 있어 수행생활은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기원정사에서 설법을 하실 때의 일이었다. 많은 제자들이 부처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가운데 부처님의 말씀을 마치 자장가 삼아 고개를 꾸벅꾸벅하며 앉아 조는 한 수행승이 있었다. 바로 아누룻다였다. 코까지 살짝 골았던 것일까. 아니 어쩌면 평소에도 아누룻다는 정신이 깨어있지 못한 게으른 수행승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러자 부처님은 “법을 들으면서 기분 좋게 잘 수 있는 것, 이 또한 좋은 일 아니겠느냐”며 아누룻다를 감싸주셨다.

 

법회가 끝나자 부처님은 따로 아누룻다를 부르셨다. 그리고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냉기가 흐르는 목소리로 엄하게 꾸짖으셨다.

“아누룻다야, 너는 깨달음을 구하여 출가한 것이 아니더냐. 출가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설법을 들으며 꾸벅꾸벅 존다는 말이냐. 정신이 해이해졌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구나. 네가 출가할 때 지녔던 강한 의지를 한번 떠올려 보거라.”


부처님의 호된 꾸중에 아누룻다는 너무나도 부끄럽고 죄송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처님, 죄송합니다.” 몸을 가다듬고 합장한 후 조용히 꿇어앉은 그는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 오늘 이후로 저는 설사 몸이 문드러진다 할지라도, 또한 제 손발이 녹아내린다 할지라도 맹세코 부처님 앞에서 앉아 조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이후, 아누룻다와 수마(睡魔)와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는 눕지도 자지도 않았다. 눕는다는 것은 쉽게 수면으로 빠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므로 거부했다.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한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제어하며 고행의 시간을 보냈다. 아예 수면을 거부하는 아누룻다의 눈은 눈병을 앓았고 부어오르다 못해 드디어 문드러져 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부처님은 수면을 취하도록 권하셨다.


“아누룻다야, 고행은 좋지 않다. 게으름도 피해야 하지만, 고행 또한 피해야 하느니라. 내가 항상 말하는 중도야말로 최상이니라.”


하지만 아누룻다는 듣지 않았다. 이미 부처님 앞에서 세운 원을 번복하고 싶지 않았다. 부처님은 명의 지와카에게 아누룻다의 눈 치료를 의뢰했다. 지와카는 수면을 취하도록 그를 설득했지만, “이제 저는 수면을 취하는 것이 오히려 고통스럽습니다”라며 끝내 거부했다. 아무리 명의라 해도 수면을 거부하는 아누룻다를 치료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결국 아누룻다는 실명하게 되었다. 하지만 육체의 눈을 잃어버린 대신, 그는 법의 눈을 얻게 되었다. 천안제일(天眼第一)이라는 평가가 걸 맞는 혜안의 소유자가 된 것이었다.


한편, 실명한 채 수행 정진하는 아누룻다를 바라보는 부처님의 마음은 어떠하셨을까. 용맹 정진하는 모습이 대견하고 기쁘신 한편, 측은한 마음도 있었을 것이다. 부처님과 아누룻다 사이에는 너무나도 따뜻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해진다. 수행승들은 스스로 삼의를 기워 입어야 하는데, 실명한 아누룻다에게 있어 이 일은 가장 힘든 일 가운데 하나였다. 꿰매는 것은 손의 감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바늘구멍에 실을 넣는 것은 쉽지 않았다. 둔한 동작으로 몇 번이나 바늘구멍을 찾아 실을 넣으려 애쓰던 아누룻다는 결국 포기한 채,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려 했다.


“혹시 옆에 누구 있습니까. 있으면 저를 위해 바늘에 실 좀 끼워 주세요. 큰 공덕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누군가 다가오더니 바늘과 실을 받아 들며 “그럼 내가 그 공덕을 쌓을까요”라고 했다. 그 목소리는 틀림없는 부처님의 목소리였다. 아누룻다는 깜짝 놀랐다.
“부처님 아니십니까. 죄송합니다. 저는 누군가 다른 가 이 곁에 있는 줄 알고….”
“아누룻다야, 나라고 공덕을 쌓고 싶지 않겠느냐. 나 역시 그 누구보다 공덕을 쌓아 행복해지고 싶은 사람 가운데 한명이니라. 이리 주거라.”


부처님의 말씀에 당황한 아누룻다는 말했다.
“부처님, 부처님께서는 이미 생사의 대해를 건너 깨달음의 저 언덕에 도달하신 분입니다. 이미 충분히 공덕을 쌓아 행복하신 분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부처님은 따뜻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천녀 유혹마저 무상의 법으로 제압


“아누룻다야, 세간에서 공덕을 쌓은 자는 많지만 나를 능가할 자는 없다. 나는 보시나 설법 등에서 부족한 바가 없다. 하지만 여래는 여섯 가지 법에 있어 질리는 법이 없나니, 즉, 보시와 교계, 인욕, 설법, 중생 애호, 그리고 무상정등각의 추구이니라. 내가 쌓는 공덕은 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이니라.“


수행 정진하다 실명한 제자, 그리고 그 제자를 위해 바늘구멍에 실을 넣어주시며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제자에게 자신 역시 중생들의 행복을 위해 공덕을 쌓고 싶다고 말씀하시는 부처님. 이미 육신의 시력은 잃어 눈앞에 계신 부처님을 볼 수 없는 아누룻다였지만, 따뜻한 부처님의 목소리는 아마도 아누룻다의 온 몸에 잔잔하게 퍼지며 스며들었을 것이다.


출가 후 익숙지 않은 생활에 지쳐 수마에게 굴복 당했지만, 출가 당시 그가 보여주었던 강한 의지, 그리고 부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후 50여년의 세월 동안 항상 앉아 있었으며 눕지도 자지도 않았다는 사실로부터도 실은 그가 매우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음을 엿볼 수 있다.


불전에는 그가 훌륭한 외모 탓에 많은 여인들의 유혹에 시달렸지만, 결코 동요하지 않고 불법에 대한 깊은 이해와 믿음으로 수행을 지속해간 사실이 전해진다. 부처님을 비롯하여 석가족은 모두 뛰어난 외모를 지니고 있어 부처님의 이복형제인 난다도 시자였던 아난다도 여성들로부터 많은 구애를 받았다. 아누룻다도 타고난 미남이었는데 수행을 계속하면서 안색이 이전보다 더 좋아져 천녀까지 그의 환심을 사고자 찾아와 춤과 노래로 그를 현혹시키려 했다. 전생에 그의 처였으나 지금은 33천의 신들 가운데 한명이 된 잘리니라는 여신은 아누룻다존자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속삭였다.


“그 옛날 당신이 살고 있던 그 곳, 모든 욕락을 갖춘 33천에 다시 태어나겠다는 원을 일으키십시오. 그곳에서 당신은 천녀들에게 둘러싸여 공경 받으며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누룻다는 조금의 동요도 없이 대답했다.

“자신의 몸에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천녀들이야말로 재앙 덩어리이다. 천녀들을 원하는 사람들 역시 재앙 덩어리이다.”

이에 질세라 잘리니는 대꾸했다. “33천에 사는 사람들이나 신들의 주거인 난다나원을 보지 못한 사람들은 즐거움에 대해 모릅니다.”


“이 어리석은 것아, 너는 부처님의 말씀이 어떤 것인지 모를 것이다. 만들어진 것은 모두 무상하다. 태어나서 다시 멸해가는 성질의 것이다. 그것들은 생기해서는 멸한다. 그것이 가라앉은 평안함이야말로 안락이니라.”

 

▲이자랑 박사
어쩌면 아누룻다에게 있어 실명은 혜안을 얻기 위한 그만의 길이었을지 모른다. 그 누구보다 정열적이고 강한 의지의 소유자였기에 깨달음에 이르는 과정 역시 그 누구보다 치열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이자랑 박사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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