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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한 성품 알고 나면 원인과 결과는 망상일 뿐

기자명 법보신문

향기로운 불국토 ‘향반’
모든 중생에게 먹여도
끝내 다 먹일 수 없어

 

 

▲법화경 화성유품(모사). 8세기 전반. 둔황연구원.

 


72. 모두 한마음의 뜻이니


夫成佛本理 但是一心者 云何更立 文殊普賢行位之因 釋迦彌勒名號之果 乃至 十方諸佛國土 神通變現 種種法門. 


문 : 부처가 되는 본디 이치가 다만 한마음일 뿐인데, 어찌 다시 문수나 보현의 행과 위치를 ‘인(因)’이라 하고 부처님 명호를 가진 석가나 미륵을 ‘과(果)’라 내세우며, 나아가 시방세계 모든 불국토에서 신통으로 온갖 법문을 드러내는 것입니까?


此是無名位之名位 無因果之因果. 是心作因 是心成果 是心標名 是心立位. 普賢觀經云 大乘因者 卽是實相 大乘果者 亦是實相 釋論云 初觀實相名因 觀竟名果. 故知 初後皆心 因果同證 只爲根機莫等 所見不同. 若以一法逗機 終不齊成解脫 須各各示現 引物歸心. 雖開種種之名 皆是一心之義 若違自心 取外佛相勝妙之境 則是顚倒.


답 : 이는 이름과 위치가 없는 데서 이름과 위치를 세우고, 인과(因果)가 없는 데서 인과를 내세운다. 마음이 ‘인(因)’이 되고 ‘과(果)’도 되면서 마음으로 이름도 드러내고 위치도 내세운 것이다. 이를 ‘보현관경’에서는 “대승의 인(因)은 그대로 진실한 모습이며 그 과(果)도 진실한 모습이다”라 하고, 이를 풀이한 논에서 “처음에 진실한 모습을 보는 것을 ‘인(因)’이라 하고 보고난 것을 ‘과(果)’라 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처음도 끝도 다 마음이어서 인과(因果)를 동시에 증득한 것인데 다만 근기가 달라서 보는 게 다를 뿐임을 알아야 한다. 만약 한 가지 법만을 가지고 다양한 중생의 근기에 맞춘다면 끝내는 모든 중생이 다함께 해탈할 수 없으니, 모름지기 저마다 근기에 맞추어 법을 펼쳐 중생을 이끌고 한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온갖 이름을 드러내더라도 모두 한마음의 뜻이니, 만약 자신의 마음을 떠나 바깥에서 수승하고 현묘한 부처님의 경계를 취한다면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所以 華嚴經 頌云 若以威德色種族 而見人中調御師 是爲病眼顚倒見 復不能知最勝法.


그러므로 ‘화엄경’ 게송에서 말한다.
위엄이나 덕을 갖춘 모습으로서
우리 스승 부처님을 보려 한다면
이야말로 눈이 멀어 잘못된 생각
으뜸가는 수승한 법 알 수 없다네.


강설) 부처님의 씨앗을 길러 부처님의 세상으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는 문수나 보현의 위치를 ‘인(因)’이라고 하든, 공부해서 깨달음을 완성한 석가모니 부처님이나 미륵 부처님의 세상을 ‘과(果)’라고 하든, 이 모든 경계는 다 ‘한마음’의 뜻에 있다. 그러니 자신의 마음을 떠나서 부처님을 찾는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다만 ‘한마음’의 바탕인 ‘공성(空性)’만 알면 중생의 알음알이에 의하여 세워진 ‘인(因)’이나 ‘과(果)’라는 분별된 망상에 얽매이지 않을 것이다.


만약 종경에 들어가면
견해 오롯이 하나되어
티끌경계도 부처님 일


73. 향기로운 불국토의 ‘향반(香飯)’


香積佛國之香飯 經云 無盡戒定慧解脫解脫知見功德具足者 所食之餘 終不可盡. 以一心眞如 無盡之理 五分法身 資熏之功 自體性空 無作妙用 豈有盡乎. 又云 食此飯者 發大乘意 乃至 一生補處然後 乃消 猶飮藥功毒 毒滅藥消耳.


향기로운 불국토의 ‘향반(香飯)’을 ‘유마경’에서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해탈지견(解脫知見)에서 끝이 없이 나오는 공덕을 다 갖춘 사람이 먹다 남긴 것을 모든 중생에게 먹이더라도 끝내 다 먹을 수 없다”라고 말하였다. 한마음의 진여에서 ‘끝없이 나오는 이치 오분법신(五分法身)’이 중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 공덕은, 자체의 성품이 공(空)이어서 인연 따라 저절로 드러나는 오묘한 쓰임새이니 어찌 그 쓰임새의 끝이 있을 수 있겠는가. 또 “이 향반을 먹는 사람은 부처님의 세상으로 가려는 마음을 내어 공부하다 그 공부가 성취된 뒤에야 이 향반이 소화된다. 이는 약이 몸의 독소를 제거해 독소가 다 없어져야 약효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諸大菩薩 雖復捨生受生 後身之中 識中有種子 種子遇緣 還生香飯 相續不斷 流至初地 發無漏心 斷惑證眞 名之爲消. 非是食滅名爲消也. 故知 食此飯者 何法不消也.


온갖 대보살은 금생을 버리고 다음 생에 몸을 받더라도, 마음에 향반의 종자가 있으므로 시절인연을 만나 다시 향반을 만든다. 향반의 종자는 계속 이어져 초지(初地)에 이르면 ‘번뇌 없는 무루심으로(無漏心)’으로 미혹을 끊고 진여를 증득하니 이를 일러 ‘향반이 소화된다.’고 하는 것이니, 단순히 음식물이 사라진 것을 ‘소화된다’고 말한 게 아니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향반을 먹은 사람이라면 어떤 법인들 소화시키지 못하겠는가.


강설) 향반은 한마음의 진여에서 끝이 없이 나오는 이치 ‘오분법신(五分法身)’을 상징적으로 쓴 말이다. 절에서 아침저녁으로 의식을 올릴 때 암송하는 예불문의 오분법신향(五分法身香)은 계향(戒香)·정향(定香)·혜향(慧香)·해탈향(解脫香)·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을 다섯 가지를 말한다. ‘계향’은 부처님의 맑고 고운 바른 삶으로서 험한 세상을 밝히는 ‘계율의 향기’를 말한다. ‘정향’은 맑고 고운 바른 삶으로부터 오는 참으로 고요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금빛하늘을 바라보는 ‘선정의 향기’이다.


‘혜향’은 이런 몸가짐 마음가짐으로 옳고 그름을 따지며 분별하는 세상 사람들의 온갖 다툼에 휩쓸리지 않고 슬기로운 삶을 살아가는 ‘지혜의 향기’이다. ‘해탈향’은 계정혜 삼학을 완성하여 온갖 번뇌를 벗어난 부처님께서 삶의 향기 연꽃으로 온 누리에 피어나 모든 중생에게 기쁨을 주는 ‘해탈의 향기’이다. ‘해탈지견향’은 부처님을 보고 기뻐하고 찬탄하는 모든 중생에게 부처님의 지견으로 못 삶들을 남김없이 제도하는 ‘해탈지견의 향기’이다.


74. 보이는 바가 다를 뿐


華嚴經中 具足優婆夷 得菩薩無盡福德藏解脫門 能於如是一小器中 隨諸衆生種種欲樂 出生種種美味飮食. 又 如明智居士 得隨意出生福德藏解脫門 爾時 居士知衆普集 須臾繫念 仰視虛空 如其所須 悉從空下 一切衆會 普皆滿足. 然後 復爲說種種法. 且如優婆夷器內 明智居士空中 隨意而出 無限珍羞 繫念而雨 衆多美食 凡來求者 皆赴所須. 得之者 盡證法門 食之者 咸成妙道. 可謂 無一塵而不具足佛事 無一法而不圓滿正宗.


‘화엄경’에서 구족(具足) 우바이는 ‘보살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덕을 지닌 해탈문’을 얻어 작은 그릇 하나에 모든 중생의 입맛에 맞는 온갖 맛있는 음식을 내놓을 수 있었다. 또 명지 거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복덕을 지닌 해탈문’을 얻었을 때, 모든 중생이 두루 모인 것을 알고 잠시 마음을 모아 허공을 쳐다보니, 구하는 대로 모든 것이 하늘에서 떨어져 그 자리에 모인 중생들이 다 만족하였다. 그런 뒤에 다시 온갖 법을 설하였다.


우바이는 그릇 안에서 명지 거사는 허공에서 마음대로 온갖 진수성찬을 내놓으니 음식을 구하려는 중생들은 모두 와서 원하는 음식을 구할 수 있었다. 이 음식을 얻어먹은 사람 모두가 법문의 참뜻을 증득하고 오묘한 도를 성취하니, 한 티끌도 부처님의 일을 다 갖추지 않음이 없고 한 법도 바른 종지가 오롯하지 않음이 없다 할 만하겠다.


但隨衆生心 應所知量 循業發現 所見不同. 外道見爲自然 凡夫見爲生死 聲聞見爲四諦 緣覺見爲因緣 小菩薩見爲但空 大菩薩見爲中道 諸佛見爲實相. 若入宗鏡 諸見並融 色塵爲佛事.


다만 중생의 마음에 따라 아는 것만큼 응하여 중생의 업대로 발현하니 보이는 바가 다를 뿐이다. 외도는 이를 ‘자연’이라 보고 범부는 ‘생사’라고 보며, 성문은 ‘사제(四諦)’라고 보고 연각은 ‘인연’으로 보며, 작은 보살은 단지 ‘공(空)’으로만 보고 대보살은 ‘중도’라고 보며, 모든 부처님께서는 ‘진실한 모습’으로 본다. 만약 종경에 들어간다면 온갖 견해가 오롯이 하나가 되어 온갖 티끌경계가 부처님의 일이 된다.


▲원순 스님
강설) ‘보살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덕을 지닌 해탈문’이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복덕을 지닌 해탈문’은 한마음의 진여에서 끝없이 나오는 이치 ‘오분법신(五分法身)’을 상징하는 용어인 ‘향반’과 같다. ‘종경’ 또한 향반의 다른 표현이라 볼 수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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