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는 가수다’와 공정사회

기자명 법보신문
  • 법보시론
  • 입력 2011.04.11 13:36
  • 수정 2011.04.11 13:41
  • 댓글 0

김영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지난달 모 방송사 가요 프로그램 때문에 시끄러웠다. 원래 이 프로그램은 가수 일곱 명이 나와 각각 노래를 부르고 심사자들이 그들을 평가해 최하위는 탈락시키고, 한 사람을 충원하여 다시 경쟁하는 방식이다. 요즘 좋아하는 서바이벌 게임이다. 제작진은 바로 이 긴장으로 가수들의 노력을 유도하고 그것이 무대에서 고스란히 드러나길 기대했다. 요즘 대중음악을 생각하면 고무적인 시도다.


최근 텔레비전 음악프로그램은 어떤가. 이른바 아이돌 스타가 점령한지 오래다. 짧게 소비되는 가수를 기획사에서 계속 찍어낸다. 민망한 노래실력으로 가수입네 하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심지어는 30대가 된 전직 아이돌이 예능프로에 나와 무슨 원로 가수인양 회고담으로 시간을 때운다. 채널은 많지만 채널 선택권을 일찌감치 박탈당했다. 투표권은 있지만 후보자는 늘 한 사람밖에 없을 때 느끼는 박탈감 같은 거다.


이런 차에 노래 잘하는 가수들이 한꺼번에 등장하는 이 프로그램이 꽤 반가웠다. 그래서 ‘나는 가수다’라고 외치는 가수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훌륭한 프로그램이 첫 방영이후 사달이 났다. 이유는 제작진이 스스로 정한 게임규칙을 어겼기 때문이다. 첫 경쟁에서 세상이 다 아는 실력파 가수가 가장 낮은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나는 가수다’의 자존심은 이 탈락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제작진은 당혹스러운 상황을 궁색하게 재도전 기회를 줌으로써 넘겼다. 그 순간 재깍 미끄러졌다.


함께 경쟁한 출연자들이 그의 재도전에 동의했다. 그럼 끝난 것인가? 물론 아니다. 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와 아사다 마오 선수가 경기를 치르고 나서 둘이 합의 하에 다시 하자고 하면 가능할까. 아마 둘 중 한 사람은 입국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게 불가능한 것은 그 규칙이 그들끼리만 공유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심사자와 시청자도 벌써 이 게임 속에 있다. 제작진은 불가능한 짓을 해버리고서 그것을 합의라고 한 것이다.


게임 룰을 어긴 데 대한 비난은 상상 이상이었다. 다소 분풀이 같은 이런 반응에서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이 보인다. 얼마 전 정부가 그렇게 떠든 공정사회. 지금은 쏙 들어가 버린 이 말은 사회가 공정한 기준이나 규칙에 의해서 작동해야 한다는 게 핵심이다. 허나 사회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쯤 다 알고 있다. 학교 입시는 공정한가. 취직은 공정한가. 승진은 공정한가. 세금은 공정한가. 주택마련은 공정한가. 재산증식은 공정한가.


간혹 있는 각료 청문회 때 우리사회의 불공정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아! 저분도 자제분을 외국인 특례입학 시켰구나. 아! 저분도 국방부 공권력이 미치지 않았구나. 아! 저분도 땅을 사랑하구나. 아! 저분도 세금 내기에는 재산이 부족하구나. 등등. 그런데도 저 자리에 앉아 있고 그 입으로 공정사회를 말한다는 게 놀랍다. 그야말로 ‘어메이징한 사회’다. 여기서 우리의 상식은 상처났다. 아픈 가슴을 쓸어내리며 겨우 버티고 있는데, 기분 달래려 노래 한 곡 들으려고 하는데 거기서도 불공정을 일삼으니 화가 안 나겠나.


뭐 큰 거 바라지도 않는다. 열심히 살려고 해도 예측가능성이 있어야 뭘 하지 않겠나. 사회뿐만 아니다. 불교계도 마찬가지지 않은가. 조만간 있을 부처님오신날 준비로 각급 사찰은 지금 무척 바쁘다. 거기 근무하는 이들. 그들이 “나는 종무원이다”라고 외칠 정도로 상식적이고 공정한 구조에서 정상적인 처우를 받고 있을까. “우리끼리는 신심으로 합의했으니깐 이 정도 처우도 괜찮은 거야.” 행여 이런 식으로 동의를 강요하는 건 아닐까.


▲김영진 HK연구교수
삼계의 도사이고, 사생의 자부이신 석가모니부처님도 가까이서 시작해 멀리 가셨다. 상식 있는 사회나 공정한 사회를 사찰 안에서 구현하자. 적어도 이것이 이 시대의 불국토다.

 

김영진 인하대 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